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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죽는소리

단 단 2015. 11. 3. 00:00

 

 

 



'죽는소리하다'라는 단어가 우리말 사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두 가지 뜻으로 구별된다.

 

1. 몹시 고통스러워 내는 소리. ¶ 어린것이 어디가 아픈지 ~를 했다.

2. 엄살을 부리는 소리. ¶ 장사가 잘 안 된다고 ~를 했다.

 

정말 괴로워서 내는 소리인 1번 뜻은 '신음하다'라는 표현으로 대체가 된 듯하고, 오늘날에는 대부분 2번의 뜻으로 이 '죽는소리하다'라는 표현을 쓴다. 원래는 '죽는 소리(를) 하다'로 띄어 쓰던 것을, 사람들이 하도 많이 쓰니 어느덧 '죽는소리하다'로 한 단어가 되었고, 이것이 사전에 오른 것이다.


나는 영국 오기 전에는 1번 뜻이든 2번 뜻이든 입만 열면 죽는소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영국 와 살면서 가만히 관찰해 보니 여기선 죽는소리하는 사람은 인기가 없다. 죽는소리하는 건 '영국인의 자질Britishness'과는 거리가 한참 먼 것으로 생각들을 한다. 이들은 우리 영국인이라면 으레 'stiff upper lip'을 해야 한다고 여기며, 어려움은 대개 'understate'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Stiff upper lip'의 풀이는 '슬픔이나 두려움, 어려움 등의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것'쯤 되고, 'understate'는 '(수, 양, 정도 등을) 적게 [작게, 약하게, 줄잡아] 말하다, 삼가서 말하다'쯤 된다. 영국에서는 그래서 유족들이 오열하거나 누군가가 큰소리로 분노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죽는소리 잘 안 하는 의젓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래도 투덜거리는 건 계속 하기로 했다. 투덜거리기는 내 본질이고 나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이므로 이건 계속 해야 한다. (아, 죽는소리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영국인들도 다들 엄청난 투덜이들이다. 영국인들의 이 투덜거림은 영국 코미디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멋진 발음과 표현을 써서 '격조 있게' 투덜거릴수록 투덜거림의 효과는 배가 된다.

 

눈치 채신 분들 많겠지만, 나는 내 블로그에서 죽는소리 잘 안 한다.

왜?

일이 늘 순조롭고 사는 게 즐거워서?


주어진 삶을 살아 낸다는 건 야생동물에게든 인간에게든 으레 고단하기 마련이므로 고생이 '디폴트'로 설계된 우리 지구 위 생명체의 고단함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살아보겠다며 꼼지락대고 있는 푸른별 표면의 모든 생명들을 생각하면 그저 짠할 뿐이다. 너도, 나도, 추운 날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서 어이쿠 어이쿠 중심 잡아가며 용케 버티고 있는 산비둘기도, 짠하다.


거기서 끝이다. '우리 모두 딱한 존재로군.' 잠깐 생각하고 털어버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죽는소리 해대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연민에 빠지는 사람이 많은데, 자기연민 하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던 사람 다 떨어져 나가고 삽시간에 불행이 닥지닥지 들러붙는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거, 에잇, 운명에게 두 번이나 질 순 없다, 악착같이 살아 내야지 어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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