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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야기

일주일도 안 남은 브렉시트 찬반 투표

단 단 2016. 6. 19. 10:55

 

 

 

 

(반말·욕설 주의)

 

 

영국에 사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피곤하다. 두 가지 때문에 몹시 피곤한데, (1) 이 나라가 이방인과 유학생에게 가해 대는 엄청난 지적, 예술적 자극 때문에 피곤하고, (2) 전세계 소식을 마치 자기네 지방 소식 전하듯 전하는 대영제국스러운 오지랖 때문에 피곤하다. 영국인들은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이라 경제 후진국의 빈곤층 아이들과 인권 후진국의 여자 아이들이 학교 못 가고 있는 걸 그렇게 속상해한다. 개마초 후진국들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도 밤낮 까발려 댄다. 뉴스에서 이런 것들을 매일 들으니 매일 가슴이 아프고 매일 힘들다. 전세계 고통 받는 사람들 이야기를 한국에 있을 때보다 열 배는 더 많이 듣고 사는 것 같다. '세계시민'이 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보태졌는데, 이눔의 영국 정치인들한테는 몹쓸 버릇이 하나 있어, 집안이 조금만 시끄러웠다 하면 "알았어, 알았다고, 그거 찬반 투표 할 수 있게 해줄 테니 그 때까지는 좀 참아 보라고." 공약을 남발해 댄다는 것이다. 지난 번 스코틀랜드 독립 찬반 투표도 그렇고, 이번 EU 탈퇴 문제도 그렇고, 찬반을 가르는 투표라는 건 그걸 치러야 할 사람들이 편갈려서 서로 반목해야 한다는 소린데, 나는 투표권이 없지만 소용돌이 속에서 이를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조용히 내 일 하다가 돌아갔으면 좋겠구만.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이민자와 난민 문제, EU의 지나친 간섭, 과도한 EU 분담금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수혜 등을 이유로 꼽는다. 나도 이들의 심정을 아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동유럽국들이 EU에 가입한 이후 영국 땅은 이제 이들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로 가득 차서 밖에 나가 어떤 서비스 업종을 이용하든 이들과 맞닥뜨리지 않는 경우가 없다. 제조업 쪽도 마찬가지. 그런데 거기다 인종, 종교, 문화,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다른 터키인들까지 EU에 가입해 들어오겠다고 하니 영국인들의 인내가 이젠 한계에 이른 것이다. 위 지도에서 하늘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터키다.
☞ 이 와중에 브렉시트 새 변수가 된 터키

 

영국은 ☞ 솅겐조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만일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과 국경이 닿아 있는 터키가 EU에 가입해 물꼬가 한 번 터지면 영국이든 어디든 유럽은 무슬림 천지가 될 게 뻔하다. 이민자든 난민이든 이들의 인기 있는 최종 목적지 중 하나가 영국이라는 게 문제다. '섬나라'라는 것은 바다 위에 혼자 뚝 떨어져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한정된 면적의 땅이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디 도망갈 데도 없는데, 거기 인종과 종교, 문화,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다고 생각해 보라. 남의 나라 일이라도 모골 송연해지지 않나. 영국인들 보고 이기적이라고 욕할 게 아니라 이건 이해를 좀 해줘야 한다.

 

영국에서 새로 태어나는 남자 아기 이름 중 가장 흔한 것은 이제 '무함마드'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얼마 전엔 런던 시장에 무슬림 이민자 아들이 당선되어 영국에서도 화제가 됐었다. 이민자도 엄연히 영국인이므로 그 후손이 정치인이 되는 것에는 아무 문제 없다. 오바마도 대통령 하는데. 이런 건 오히려 그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바람직한 예로 쓰일 수 있어 좋지. 영국 내 무슬림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 영국 내 무슬림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에 대한 예를 들고 싶어서 언급한 것뿐이니 나를 '무슬림 혐오자'로 오해하지는 말라.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이민자 문제와 난민 문제를 자꾸 들쑤셔 영국인들로 하여금 영국이 몹시 '오염'돼 가고 있고 곳간 거덜나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지상 과제인데, 여기에 <데일리 메일> 같은 황색 언론들이 이런 우려를 공고히 할 만한 사례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내보내고 있으니 신문에서 매일 이런 기사를 맞닥뜨리는 영국인들로서는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영국 가서 복지 단물 쪽쪽 빨아먹는 '비법'에 대해 다루고 있는 폴란드 어느 신문사의 20쪽짜리 특집 기사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How to get Britain's handouts

 

독일 다음으로 분담금을 많이 내고 있는 상황에, 몰려 와 일자리 차지한 EU 이주 노동자들의 고국에 있는 아이 양육 수당까지 챙겨 줘야 하고, 일자리 확보도 안 하고 무작정 건너온 사람들 실업 수당도 줘야 한다니, 영국인들은 뭐 보살이냐? 참고로, 작년 EU 최대 경제 수혜국은 폴란드, 그 다음은 헝가리, 그 다음은 그리스.

 

(그런데, 한국은 왜 '정론지'라는 것들이 영국 소식을 만날 이런 삼류 찌라시 것으로 인용하고 있냐. 데일리 메일은 그래도 자기들이 직접 기사라도 쓰지, 데일리 메일보다도 못한 한심한 것들 같으니.)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EU의 또 다른 문제는, 영국 경제에 해악이 될 만한 법안들을 독일 주도 프랑스 보조 하에 밀어부치는 것도 이가 갈릴 지경인데 생활의 사소한 부분까지 참 시시콜콜 간섭을 해 댄다는 것. 먹는 거 좋아하는 단단이니 먹는 걸로 예를 들자면, 영국의 오래된 제과 회사 중에 <캐드버리>라는 쵸콜렛 회사가 있다. 지금은 미국에 팔렸지만 역사성 때문에 브랜드는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이 회사의 상징은 아래와 같다.

 

 

 

 

 

 

 

 


쵸콜렛에 우유를 붓고 있는 그림이 들어 있다. 왜 이런 그림을 쓰게 됐냐면, 스위스가 고형 쵸콜렛에 우유를 첨가해 밀크 쵸콜렛 바를 만들어 내기 전에 영국에서는 이미 <캐드버리>가 쓰디쓴 쵸콜렛에 우유를 넣어 쓴맛을 완화시킨 부드러운 쵸콜렛 음료로 대박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19세기 중반의 일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 같은 똑똑 부러뜨려 먹을 수 있는 고형 쵸콜렛 바도 영국 발명품.) 이 회사는 그래서 15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포장에 'Dairy Milk'라는 문구를 넣고 우유 붓고 있는 그림을 쓰는데, 이걸 EU가 트집잡은 일이 있었다. "늬들, 쵸콜렛 바 하나에 우유를 두 컵이나 붓지는 않잖냐? 소비자가 헷갈려할 수 있으니 그런 그림은 쓰면 안 되지." "뭬야?!" 영국이 난리쳐 대서 없었던 일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이 이야기는 EU가 남의 나라 전통이고 역사고 맥락이고 무시한 채 얼마나 쓰잘데기 없는 일에 정력을 쏟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로 회자되곤 한다. 그래서 다른 EU국 사람들 중에도 EU의 이런 지나친 관료주의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영국이 본보기로 브렉시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니, 상식적으로, 작은 쵸콜렛 바 하나에 우유가 두 컵이나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지 않나? 그리고, 성분표는 뭐 폼으로 달아 놨냐? 밀크 쵸콜렛 포장에 젖소라도 그려 넣었다간 "늬들 쵸콜렛에 쇠고기 안 들어가는데 거기 소 그림은 왜 있어?" 따질 사람들일세.

 

아래의 기사는 제목과 본문의 단어들이 자극적이기는 하나 분석은 그럴 듯하므로 걸어 본다.

설마 했던 브렉시트, 현실화?

 

설마 여기 들어오는 사람 중 아직도 그리스가 복지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 비슷한 내용의 글을 하나 더 건다. 좀 더 구체적이다.

영국은 왜 유럽을 떠나려 하는가

 

기사에서는 영국인 특유의 우월주의, 이기주의, 특권의식 등을 운운하는데, 이런 것들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냥 유럽연합 각국이 종교, 문화, 가치관, 이해관계가 다른 데서 오는 문제라고 본다. 유럽 강대국치고 이런 자뻑 성향 없는 나라가 어딨간디. 프렌치들은 더하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가 되어 공동으로 일을 처리하겠다고 애초에 마음을 먹었는지부터가 나는 불가사리라고 여긴다. 영국과 프랑스가 너무나 다른 건 다들 잘 알 테고, 그나마 1,2차 대전 적성국이었던 독일하고 영국이 정서, 기질, 가치관 면에서 가장 비슷할 텐데, 그래도 여기 살아 보니 이 두 나라도 또 다르다. 위의 기사에서도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예를 들잖나. 교양으로라도 철학개론 들었던 사람들은 이거 무슨 말인지 잘 알 터. (참, 칸트의 조부는 영국인이었다는 사실.)


게다가, 무슨 일을 함께 하려면 수준이 좀 비슷한 나라들이 모여서 해야 하지 않니. 가치관이 너무 다르면 경제력이라도 좀 비슷해야 할 텐데, 가치관, 종교, 경제력까지 다른 나라들이 모여서 무슨 일이 되겠냐고. 그리고, 유럽 다른 나라들도 현재 이민자나 난민에 우호적인 정치인이나 당은 인기 없고 극우들이 활개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잖나.

 

그래서, 이번 사안에 대한 단단의 입장은 무어냐?
경제 관련해서는 언론에서 워낙 많이 다루고 있으니 따로 더 할 말은 없고 그저 '인적 교류' 차원에서 생각을 해 본다면, 이방인이고 예술인인 나로서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나라가 고립주의를 표방하면서 빗장을 걸어 잠그려 드는 건 결코 좋은 일이 될 수 없다. 안 그래도 여기 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은 브렉시트로 대륙과의 소통 통로가 막힐 상황을 우려한다. 내가 속한 학과에도 유럽 대륙에서 온 교수진과 학생들이 자국인 숫자만큼이나 많은데, 이 사람들이 다 EU 정책 때문에 편하게 왕래를 할 수 있었던 것. 마찬가지로 영국인 학자나 예술가도 대륙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예술가들한테 무대는 넓으면 넓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브렉시트를 반대한다. 브렉시트 부결되면 내 기념으로 찻상 한번 근사하게 차린다.

 

 

 

 

 

 

 


 얽히고설킨 유럽. 이 인포그래픽 만든 사람 누가 상 좀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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