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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소세지에 칼집 내는 거, 나는 반댈세

단 단 2016. 1. 7. 00:30

 

 

 

옥스포드 커버드 마켓Covered Market의 영국 소세지 매대.

생소세지들이라 잘 익히기가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세상에는 제가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힘든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칼집 낸 소세지'입니다.


지금처럼 가공육의 첨가물 문제를 떠들기 전에는 모양 내는 차원에서 칼집들을 넣었지요. 저 어릴 땐 정말로 멋낸다고 '줄줄이 비엔나' 같은 데 칼집 내서 조리하는 엄마들 많았어요. 요즘은 모양보다는 첨가물 걱정 때문에 칼집들을 내지요. 물에 데칠 때 몸에 나쁜 무언가가 좀 더 많이 빠져 나가기를 염원하면서요.


그런데,

 

영국 와서 보니 여기서는 소세지에 칼집 내는 것을 대죄 중의 대죄로 여깁니다. 영국은 생소세지의 나라입니다. 저온살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익힐 때 칼집이 나 있거나 껍질에 손상이 있으면 절대 안 되고, 바늘 끝 크기만 한 구멍조차도 허용이 안 됩니다. 맛있는 즙과 향, 기름, 다 빠져 나와요. 부주의하게 다루거나 불 조절을 못 해 소세지 껍질 어딘가가 터져 버리면 손님한테 못 냅니다. 영국 생소세지들을 지질 때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세지 껍질 안쪽에서 즙과 기름이 자글자글 끓고 있는 게 보이는데, 껍질 밖으로 이 끓고 있는 맛있는 액체들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정말 조심해서 다뤄야 하죠.


영국은 생소세지를 먹는 나라이니 그렇다 치고, 주변의 다른 유럽 국가들은 어떨까요? 첨가물 빼낸다고 소세지에 칼집 내 데친다는 소리, 전 아직 못 들어 봤습니다. 유럽 소세지들에도 식중독 방지 첨가물이 다 들어갑니다. 생raw 소세지이든, 반조리scalded 소세지이든, 완전조리cooked 소세지이든, 건조dried 소세지이든, 상관없이 들어갑니다. 위 사진에서처럼 정육점 주인이 이른 아침에 직접 만든 걸 그날 오전 중에 동네 사람들한테 다 팔아 치울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이 아닌 다음에야 수퍼마켓이든 시장이든 선반에 놓일 것들은 첨가물을 넣을 수밖에 없어요. 이걸 안 넣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식중독의 위험이 넣었을 때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일으킬 수 있는 발암 위험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즉각적이므로 여기 사람들은 다들 소세지의 첨가물은 '필요악'이라 생각하고 그냥 먹습니다. 첨가물이 걱정되는 사람은 소세지를 안 먹고 맙니다. 소세지말고도 고기는 많으니까요. 아니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든가요.

 

"옛날엔 넣지 않던 것들이야!" 반박하는 한국인들도 있는데, 이런 첨가물이 없던 시절엔 고기 잘못 먹고 식중독으로 죽은 유럽인들 조상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곱게 갈거나 다진 고기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한국에서는 소세지에 첨가물 넣는 것을 무슨 식품 회사들이 부도덕하거나 쉬운 길을 택하려 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같으면 첨가물 안 넣었다고 자랑하는 소세지는 오히려 더 염려돼서 못 사 먹을 것 같은데요.


그래, 칼집 내 데치면 첨가물이 완벽하게 제거되느냐?
아니죠. 맛없어지는 건 확실해지지만요.


독일인들도 소세지를 많이 먹죠. 독일 사시는 블로그 이웃의 소세지 글들에서도 칼집 내 데친 소세지는 보기 힘듭니다. 영국인들과 같은 이유에서겠죠. 맛을 최대한 소세지 안에 간직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프랑스나 남유럽 소세지들은 잘 모르겠는데, 생소세지보다는 건조 소세지를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첨가물 뺀답시고 조리할 때 소세지에 칼집 잔뜩 내 물에 데치는 선작업은 안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첨가물만 빠지는 게 아니라 애써 낸 맛도 같이 빠지니 소세지 장인의 수고가 헛되죠. 길기 때문에 적당한 길이로 썰어 조리하는 것은 많이 봤습니다. 저도 스페인 초릿쏘 소세지 익힐 때 썰어서 씁니다. 그러나 조리할 때 빠져 나온 지방이나 즙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대개는 스튜나 소스에 고스란히 담기게 하거나, 하다못해 그 기름에 뭐라도 익혀 먹습니다. 육즙이나 고기 기름을 버린다는 것은 유럽인들에겐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고기 굽고 나서 휴지시킬 때 생긴 그 소량의 즙도 알뜰하게 모아 소스 만들 때 쓰는 사람들인데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소세지 전체에 칼집을 내서 물에 데치는 게 마치 소세지 조리법의 기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들을 합니다. 어떤 분은 심지어 두 번씩도 데치더라고요. 아니? 도대체 소세지는 왜 사 오신 겁니까? 맛 다 빠진 고기를 먹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첨가물이 걱정되면 안 사고 안 먹는 게 맞지 않나요? 게다가, 자기만 맛없게 먹는 걸로는 성에 안 차는지, 칼집 내 데치지 않고 곧바로 지져 맛있게 잘 먹고 있는 사람 글에다 훈계도 서슴지 않고 해댑니다. WHO 발표 이후 한국에서는 이 증상이 더욱 심해졌는데, 요리사가 나와 한다는 소리가, 첨가물과 염분을 줄이기 위해 "소시지를 1cm 길이로 썰어 끓는 물에 10분 데치기를 2회 하고, 마지막으로 뜨거운 물에 헹구"랍니다. 크아악! 당신, 요리사 맞아?!

 

심미적 이유에서 칼집을 낸다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깨물었을 때 껍질이 저항하다 저항하다 못 견뎌 '뽁' 터지면서 주는 그 짜릿한 치감이 소세지 먹는 기쁨의 절반은 차지할 텐데, 소세지 여기저기를 칼로 미리 터뜨려 놓다니요. 식감은 차치하고, 금방 식고 마르잖아요. 게다가, 만두 먹을 때처럼 그 속을 알 수 없어 궁금해하며 먹는 게 소세지인데, 먹기도 전에 낯 뜨겁게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으니 신비감도 느낄 수가 없지요.

 

 

 

 

 

 

 


 전형적인 영국 생소세지. 칼집을 내서는 절대 안 된다.

익힐 때 맛있는 즙 다 빠져 버린다.

 

 

 

 

 

 

 


영국음식 'bangers and mash'.

영국 소세지는 물에 데쳐서도 안 된다.

반드시 지짐판에 지지거나 그릴을 하거나 오븐에 구워야 한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독일 소세지. 칼집 없다.

내 이로 직접 '깍' 터뜨려 먹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물에 데쳐 먹는 독일 소세지.

이것도 칼집 내서 익히면 안 된다.

지금까지 사 먹어 본 소세지 중 가장 경쾌한 '깍' 소리를 냄.

 

 

 

 

 

 

 


스페인 초릿쏘.

길기 때문에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익혀야 하나,

이때 나온 기름은 버리지 않고 활용한다.

 

 


☞ 영국 수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냉장 생소세지들
☞ 영국 시판 소세지 평가 블로그 - Rate My Sausage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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