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세상이 팽이처럼 돌다 - 이석증 BPPV 본문
▲ ☞ 영국 어지럼증 학회 상징. 디자인 기차다.
휴...
제가 말이죠,
어제 응급실을 다 다녀 왔습니다.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천장이 팽이처럼 팽팽 도는 거예요.
천천히 빙그을 빙그을도 아니고, 정말 팽이처럼 엄청난 속도로 돌더라고요. 꼭 '코끼리 코' 스무 바퀴 돌고 났을 때의 세상 같았달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이 돈다기보다 제 몸이 회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으아아아,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
토하고는 싶은데 제가 이 나이 될 때까지 토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토할 줄을 모릅니다. 불행 중 다행이죠. (근성이 있어 일단 꿀꺽 한 건 절대 안 내놓습니다. ㅋ)
서기는커녕 몸 가누고 앉는 것조차 할 수 없고 기절할 것만 같아 도로 풀썩 누워 버렸습니다. 눈 감고 누웠는데도 팽팽 돕니다. 땀 잘 안 흘리는 사람인데 식은땀이 그 잠깐새 엄청나게 쏟아져 이불을 다 적셨고, 손에 피가 안 통해 손바닥 전체가 핏기 없이 하얗게 변하면서 강렬한 전율이 시작, 음악으로 치면 손끝에 마치 포르테의 트릴이 연주되는 듯했습니다. 다쓰베이더의 목격에 의하면 입술도 다 하얘졌다 하고요. 머리에도 혈액 유입이 멈춘 듯 머리통 전체가 저릿저릿, 가슴 두근두근, 호흡도 가빠지고, 그렇게 한 20초간 극심한 이상 반응이 나타나다가 잠잠해졌습니다.
"여,영감, 이거 혹시 말로만 듣던 그 '저혈당 쇼크'가 아닐까? 열 다섯 시간째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다쓰베이더가 빠른 속도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말로 저혈당증 증세와 거의 맞아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집에 있던 조청을 한 큰술 먹었죠.
으윽, 아무리 단것 잘 먹는 단단이라지만 맨입에 조청만 먹는 건 너무 달구나. 그래도 살려면.
한 20분쯤 지나니 어쩐지 어지럼증이 다소 완화된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
나는 당뇨환자가 아닌데?
당뇨병도 없는 사람이 저혈당증을 겪을 수 있나?
극심한 이상 반응이 사라진 뒤로는 수 시간째 멀미 증상이 지속됐습니다. 고개를 단 15˚만 돌려도 어질어질, 아래나 위를 보는 건 엄두도 못 내고요.
누우면 왠지 다시 못 일어날 것 같아 의자에 몸을 파묻고 눈 감고 쉬었습니다. 다섯 시간쯤 지나 뭘 좀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일어서서 부엌엘 갔는데, 젠장, 아까와 같은 이상 반응이 또 시작되는 겁니다.
재빨리 부엌 의자에 앉은 뒤 딱딱한 바닥에 고꾸라져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작업대를 두 손으로 꽈악 붙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쓰베이더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나 좀, 나 좀!"
머리가 바닥으로 막 곤두박질치려 듭니다.
공포감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두 달쯤 전에도 같은 증상을 겪었거든요.
이렇게 계속 살 순 없죠. 이참에 원인을 알고 뿌리를 뽑아야 일상생활이 가능하겠다 싶어 응급실엘 갔습니다. 걷는 동안 넘어질까봐 다쓰베이더가 계속 부축을 해주었습니다. 엘레베이터 타고 내려가는데도 어지러워서 속이 울렁거립니다. 다쓰베이더가 운전하는 동안 덜 어지럽기를 바라며 눈을 감고 있었는데, 차가 계속해서 우회전을 합니다.
"지금 어딘데 끝없이 우회전이오?"
"우회전 한 번 하고는 계속 직진 중인데?"
아아, 내 뇌가 단단히 고장났구나.
응급실에 도착해서는 기본 절차인 문진, 피검사, 소변검사, 흉부 X-레이, 혈당, 혈압, 심전도 등을 확인하고, 혹 뇌에 문제는 없는지 보기 위해 제 동의를 얻어 CT 촬영을 했습니다. 전부 이상 무. 혈당도 정상이고요.
"조금 있으면 이비인후과 당직 선생님이 오실 텐데 이비인후과 진료도 한번 받아 봅시다." 하길래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았습니다.
어린 이비인후과 선생이 첨단 의료 기기나 도구 하나 쓰지 않고 매우 예스러워 보이는 수동 방식과 희한한 방식으로 진찰을 합니다. 제 눈꺼풀을 까뒤집고 눈동자 움직임을 한참 살펴보더니 제 검지로 제 코 끝과 계속해서 좌표를 바꾸며 움직이는 선생 검지를 빠른 속도로 왕복해 정확하게 짚어 보라고 합니다. 내 코, 니 손가락, 내 코, 니 손가락, 내 코, 니 손가락, 내 코, 니 손가락.
'이거 유치원생들 놀이 같잖나. ㅋ'
그런데, 한 손은 잘 되는데 다른 손은 희한하게도 그게 잘 안 되는 겁니다.
'어라?'
그런 다음에는 저를 진찰대에 눕히더니 "저쪽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세요." 합니다. '이건 또 오지 민간요법 같잖나. ㅋ' 생각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데, 어라? 벽이 계속 움직여대 눈동자가 멈춰 있질 못 하고 계속 따라서 움직입니다. 반대쪽은 괜찮았는데요. 그러더니 제 머리통을 허공에서 부여잡고 이렇게저렇게 움직입니다. 이 작업을 시간 차를 두고 두 번째 반복했을 때는 좀전에 움직여 보였던 벽이 안정되게 보입니다. 눈동자도 고정시킬 수 있었고요. 그 사이에 뭔가 교정이 되었다는 소리죠. 허, 그 의사 참 용할세.
"오른쪽 귀의 이석증 같습니다. 방금 교정을 해 드렸으니 좀 나아지실 거예요. 2~3주간 과격한 자세를 취하거나 고개 너무 휙휙 돌리지 마시고 안정을 취하세요. 멀미약 처방해 드릴 테니 또 심한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 드시고요. 치료약은 아닙니다. 많이 불편해지시면 다시 오세요. 이석증 완화 운동법을 담은 인쇄물도 같이 드릴 테니 집에서 꾸준히 해보세요."
그리하여 단단은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이석증'을 실제로 경험해 보았다는 오늘의 이야기.
이석증에 대한 것은 이 글을 참고하세요. ☞ 귓속의 돌이 떨어졌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좀 어질어질 합니다. 특히 페이지 스크롤 할 때 눈이 빨리 쫓아가질 못해 두통과 멀미가 납니다. 그래도 교정을 받고 나서는 증상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재발 안 되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이석이 떨어져 나오는 이유는 학계에서도 모른다고 합니다. 나이 들수록 빈발하고, 인구 두 명중 한 명 꼴로 겪을 수 있다 하니 여러분도 조심하세요. 그런데 원인을 모른다니 조심할 수가 있냔 말이죠. ㅋ
제가 머리 감을 때 잘 헹구려고 대야에 물 받아 놓고 고개를 숙이는데요, 그 방식도 이젠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굽실거리지 말고 소신껏, 단단하게 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렵니다. ㅋ 낮은 베개를 선호하는데 지침대로 베개도 좀 높였습니다. 당분간은 잘 때도 천장 보면서 똑바로 눕지 않고 이석증 있는 귀를 천장으로 향한 채 옆으로 누워 자야 합니다.
혹 저처럼 어느 날 갑자기 극심한 어지럼증으로 당황해하실 분들 계실까봐 공익 차원에서 경험담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정리하자면: 누웠다 일어나거나 머리 위치가 급격히 바뀌었을 때 세상이 팽팽 돌면서 어지럽고, 메스꺼워서 토하고 싶고, 식은땀 나고, 저리고, 가슴 두근거리고, 숨차다, 그런데 그 증상이 1분 이내에 가라앉는다, 그리고 나서는 두통과 멀미가 지속된다. 이러면 먼저 이석증을 의심해 보시고 힘들겠지만 옷부터 챙겨 입으세요. '뇌에 큰 문제 생겨서 나 이대로 죽나 보다' 놀라거나 절망하지 마시고 주변 사람 부축 받아 일단 가까운 이비인후과부터 얼른 가세요. (혼자 걸으면 큰일 납니다.) 어지럼증 원인 중에 가장 흔한 것이 이 이석증이라고 합니다. 만약 이석증이 맞으면 비싼 검사비나 치료비, 약값 안 들이고 의사의 마법과 같은 손동작 몇 번으로 금방 완화시킬 수 있으니 무조건 이비인후과부터 가세요. 의식 없어지면 응급실 가야겠지만요.
모래알 같은 쬐끄만 알갱이chalk crystals가 큰 덩치의 인간을 이토록 괴롭힐 수 있다니 인체는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이석 공격 받으면 고생해서 딴 박사학위고 지성이고 의지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어집니다. 사고는커녕 자기 몸뚱이 하나 가누기도 힘들어지는걸요. 조물주 앞에 겸손해야겠습니다. 중요한 일 앞두고 전날이나 당일에 재발할까 두렵습니다. (시험 앞둔 수험생들과 연주 앞둔 연주자들 이석 습격 당하면 어쩝니까.) 멀미와 두통이 지속되니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집니다. 2~3주간 운전 금지 처방도 덤으로 받았습니다. 걸을 때도 발을 딛는 바닥 높이가 계속 달라져 구름 위를 걷는 듯합니다. ■
▲ 대략 이런 식으로 치료했던 것 같습니다
[Epley maneuvre].
너무 염려 마시고 어여 이비인후과 가세요.
단단은 세 달 후 또 재발했을 때 집에서 이걸로 자가 치료 해서 효과를 봤습니다.
▲ 이비인후과에서 권한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법.
이 운동은 평소에 하시고
이석증 습격 때는 위의 에플리 치료법을 쓰세요.
'잡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절 산만 후기 (8) | 2018.09.26 |
---|---|
자이글의 역사 (8) | 2018.07.13 |
[어버이날] (19금) 효녀 단단 (4) | 2018.06.01 |
웹툰 하나 보세요 (2) | 2018.04.23 |
먹는 순서가 중요하다고 한다 (2) | 2018.03.18 |
명절에 간식거리 선물 받으면 신난다 (4) | 2018.02.28 |
놀이의 인간 Homo Ludens (0) | 2018.02.10 |
블레이드 러너 2049 (줄거리 누설 없음) (4) | 2017.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