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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찬양 받아 마땅한 집밥

단 단 2019. 1. 11. 02:31

 

 

 

사무실 밀집한 서울 강남의 어느 한식당 밥상.

얼핏 일본 가정식처럼 깔끔한 1인상 모습을 하고 있으나

야이, 저렇게 많은 밥에 짠 불고기, 짠 국, 짠지 반찬만

두 개라니, 매일 점심 사 먹어야 하는 직장인들

건강은 어쩌라고.

 

 

2018년 한 해 동안 바쁘고 힘들어 하루 두 끼를 나가서 사 먹었더니 몸이 '훅 갔다'. 귀국한 해인 2017년에는 이삿짐이 늦게 도착한데다 짐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외식을 자주 했다. 그러니까 지난 2년 동안은 집밥보다 '집밖밥'을 훨씬 많이 먹은 것이다. 내 인생 통틀어 이렇게 외식을 많이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밥 안 해도 되니 이 얼마나 기쁜가, 콧노래 부르며 골라 먹는 재미를 만끽했으나, 곧 사 먹는 음식의 맛이란 게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 들면서 금세 물렸다. 한국의 식당 음식들은 종류cuisine 상관없이 너무 짜고 달고, 우마미가 지나치게 과하다. 한국인들은 흔히 기름기 많은 서양음식을 느끼하다고 여기는데, 나한테는 우마미 과한 음식이 느끼한 음식이다. 튀긴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외식 많이 할수록 튀김음식, 나트륨 더 많이 섭취

 

그간 사 먹은 음식들을 곰곰 되짚어 보니 과연 신문기사의 우려대로 돈카츠 먹고, 탕수육 먹고, 꿔바로우 먹고, 넴 먹고, 분식집이나 일식집에서 모둠튀김 먹고, 딤섬집 가서 가지튀김 먹고, 카레집에서 곁들이로 새우튀김이나 고로케 먹고, 텐동 먹고, 우동 국물이나 어묵탕 위에 흩뿌려진 튀김 부스러기 먹고, 햄버거에 딸려 나온 감자튀김 먹고, 이제는 조리법이 바뀌어 산패된 기름 잔뜩 머금은 튀김이나 다름없어진 녹두빈대떡 먹고... 튀긴 음식 참 많이도 먹고 살았다. 집밥에서는 여간해서 튀김 보기 힘들지 않나. (아크릴아마이드는 왜 이리 맛있는 것인가.)

 

지난 2년간 병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사실, 집에서 밥 해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사람이라면 운동할 시간도 부족할 게 뻔하고, 잘 쉬지도 못 할 확률이 높으므로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다음은 지난 2년간 얻은 병 목록:

 

 대상포진

 유방관내유두종

 이석증 세 번

 고콜레스테롤혈증 ('건강식의 나라' 한국에 와서 생겼다니 믿기지가 않음)

 손목 수근관 증후군

 식중독 세 번

 내림프수종 (귀 머는 병인 메니에르병 전 단계)

치아 문제  

 피부묘기증 (어제 진단)

 

이 중에서 마지막 네 개인 식중독, 내림프수종, 치아 문제, 피부묘기증은 음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식중독 세 번 중 한 번은 곰팡이 핀 쌀인 줄 모르고 밥 지어 먹고 나서, 두 번째는 밖에서 콩국수 사 먹고 나서, 다른 한 번은 밖에서 냉면 사 먹고 나서. 내림프수종은, 쉽게 말하면 짠 음식에 의한 '귀 고혈압'이고, 치아는 건어물, 수출 효자 상품인 맛아몬드, 단단한 반찬을 즐겨 먹다 그 지경이 된 것이며(한식에 질기고 단단한 음식 진짜 많다.), 피부묘기증은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우나 두드러기이므로 돼지고기나 등푸른생선 같은 히스타민이 많이 든 음식, 그리고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에 악화된다고 했다.

 

가만.

맵고 짠 음식이야 외식에서 피할 수 없으니 그렇다 치고, 돼지고기와 연어, 고등어, 청어, 멸치(안초비), 꽁치, 참치 같은 등푸른생선은 영국에서도 문제 없이 잘만 먹던 식품인데 왜?

아래의 기사를 보자.

 

발효식품도 많이 먹으면 탈난다

과메기나 자반고등어의 히스타민 함량 안심할 수 없다

방어도 조심

 

이 기사들을 보고는 가공 과정이나 조리 과정에서의 부주의한 취급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 중간쯤에 "히스타민은 고등어나 꽁치, 정어리 등의 어종을 비위생적으로 처리해 발생되는 부패의 지표물질"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장류나 젓갈 같은 단백질 발효식품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을 한다.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취급을 잘못하면 의도치 않은 유해물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식품이 좀 많아 보인다. 영국에서 멀쩡히 잘 먹던 식품들을 여기서는 먹고 몸이 가려워 벅벅 긁어야 한다니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일년간 살도 많이 쪘다. 한국도 이제는 외식 음식의 일인분 양이 서양 못지 않게 많아졌다. 외식을 하고 나면 늘 과식으로 배가 아프고, 짜고 단 음식 탓에 자면서도 갈증에 시달린다. 외식 후 번번이 후회해 앞으로는 아무리 바빠도 집밥을 해먹겠다는 다짐을 지난 2년 동안 안 해본 것은 아니나, 문제는,

 

한국의 마트들은 영국 수퍼마켓들처럼 식재료를 쓰기 좋게 손질해 팔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흙 덕지덕지 묻힌 채 내놓거나, 먹지 못 하는 부분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붙여 팔아 집에서 음식 해먹는 게 여간 시간 걸리고 성가신 것이 아니다. 간단한 음식 한 그릇 만드는 데 음식물 쓰레기도 산처럼 나오니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도 만만찮게 들여야 한다. 아니, 비용은 차치하고, 집집마다 농산물에 들러붙은 그놈의 '제주 흙' 떨어 하수구로 흘려 보내는 건 문제이지 않나. 부엌 여기저기에 흙먼지 날리는 것도 위생상 좋을 리가 없고. 그렇다고 흙 묻혀 판 그 농산물이 신선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늘 새들새들. "밭에서 갓 뽑은 싱싱한 제주 ○○ 사세요~" 농산물에 흙 묻혀 진열해 놓는 쇼는 이제 그만 두고 쓰기 좋게 다듬어 1인 가구, 2인 가구에 맞춰 적게 담아 팔아야 한다. 세척해 소량 포장한 농산물이 마트에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종류가 제한적이고 값이 너무 비싸 선뜻 이용하기가 어렵다.

 

집밥의 미덕을 읊어 보자.

 

일인분 양을 조절할 수 있다

 간을 조절할 수 있다

 위생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영양 균형을 따져 밥상을 구성할 수 있다

 거지 같은 그릇 안 보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예쁜 그릇에 담아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만인의 입 속에 들락거렸던 숟가락 안 쓰고 내 집 숟가락을 쓸 수 있다 (한국인의 높은 헬리코박터 감염률은 혹시 이 입 속에 넣기 좋은 한국식 얕은 숟가락 탓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는.)

 

집밥은 맛만 따져 만들지 않는다. 밖에서 사 먹는 떡볶이 맛을 집에서 내기 어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맨 정신에 내가 먹을 음식 간을 그토록 세게 할 수는 없다. 음식에 소금이나 간장을 넣을 때는 맛이 아니라 내 몸 속에 넣을 총량 허용치를 따져 넣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혀는 다소 서운할지 몰라도 속은 편하다. 마음이 원하는 음식과 머리가 원하는 음식이 다르다는 데서 인간의 비극은 시작된다.

 

좌우간, 올 한 해는 아무리 바빠도 집밥을 해먹기로, 외식은 일주일 스물 한 끼 중 두 번으로 제한하기로, 살 도로 다 빼기로 결심했으니, 이 글 읽는 여러분이 증인이 돼 주시길 바란다.

 

 

 

 

 

 

 

 

영국 살 때 가장 자주 해먹었던 집밥인 훈제고등어 샐러드.

영국 집밥은 준비하기도 쉽다. 세척 포장된 알감자, 세척 포장된 로켓잎,

뜯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훈제고등어, 성분 좋은 시판 허니 머스타드 소스.

 

 

 

 

 

 

 

 

영국에서 즐겨 먹던 고등어가 한국 와서 느닷없이 피부묘기증 진단 받고

금기식품으로 전락. 먹고 나면 몸이 가려워 지옥문 열림.

좋아하는 고등어도 못 먹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님.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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