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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2) A Bowl of Rice 본문
▲ 2017년 런던 워털루역 부근 어느 허름한 판-아시아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다는 밥.
텐동에서 덴푸라를 걷어 낸 모습.
밥 얘기 또.
외식할 때마다 느끼는 게 뭐냐면요,
쌀밥 의존도가 이토록 높은 식문화에서 맛있는 쌀밥 먹기는 왜 이리 힘든가, 하는 겁니다. 이런 말 하는 사람 정말 많죠?
"에이, 싼 집에서 드셔서 그렇죠. 그거 다 중국에서 찐 쌀 들여와 내는 거라서 그래요. 가격대 좀 높은 집 가 보세요."
▲ 2017년 서울. 미슐랑 1-스타 한식집 분점의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쌀떡.
가격대 높은 집 왔어요.
식객 한참 몰리는 시간을 피해 1시 반쯤 왔더니 밥이 거대한 한 덩어리의 떡이 돼 있었습니다. 젓가락으로 쿡 찍어 들어올리니, 어맛, 전체가 다 딸려 올라오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밥그릇 가장자리에 물방울 송글송글 맺힌 것 좀 보세요. 떡을 아주 잘 쪘어요. 물 냄새가 그냥 풀풀 나요. 본점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판>에서 2년간 별을 받은 뒤 2019년판에서는 빠졌습니다. 어디서 감점을 받아 별을 박탈 당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분점 관리도 못해 한식집이 한식의 근본인 밥을 저렇게 내고 있으니 수긍이 가죠.
▲ 일식집풍 카운터석을 한 어느 한식 백반집의 불고기 반상.
보온통에 켜켜이 쌓아 둔 스뎅밥 안 주고 솥에서 바로바로 퍼서 내주는 깔끔한 밥집이 있다고 해서 와 봤습니다. 그런데 주방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밥을 공기에 퍼 담은 뒤 반찬과 고기를 준비합니다. 아아, 아주머니, 내 밥 다 말라요. 일행 세 명의 음식이 모두 준비된 다음에야 쟁반을 하나씩 건네 받았는데, 밥 표면이 바싹 말라 밥알이 버적버적 씹힙니다. 국물에 말아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말라 버렸죠. 그런데 일식집 깔끔한 상차림 흉내 내느라 국도 저렇게 입구 좁은 작은 그릇에 찔끔 담아 내니 마음껏 밥숟가락을 담글 수도 없어요.
▲ 한정식집의 즉석 솥밥. 공기에 덜어 담은 1인분.
캬, 주방에서 갓 지어 내준 윤기 잘잘 흐르는 솥밥입니다.
잘 지었든 못 지었든, 갓 지은 밥이 주는 기본 점수란 게 있으니 맛있게 먹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밥이 왜 이렇게 무르고 찐득거려요. 게다가, 이게 코스로 요리를 잔뜩 낸 뒤 마지막에 낸 밥상이라 배가 불러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겁니다. 꽈당 아니, 요리를 그렇게 많이 먹고 반찬 무려 열 세 가지와 찌개와 생선구이를 곁들인 밥상 한 상을 또 먹으라니, 이거 가능한 분 계세요? 고스란히 남기고 온 그때 그 밥과 된장찌개가 아직도 삼삼합니다.
단단은 쌀밥을 자주 먹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집에 쌀을 사 둘 수가 없죠. 잘못 보관해 곰팡이 핀 쌀 먹고 혼난 적이 있어 집에 쌀을 오래 두게 되는 상황을 매우 꺼립니다. (곰팡이가 눈에 잘 안 띄게 끼기도 하니 밥 짓기 전에 유심히 살펴보세요. 쌀 씻을 때 회색 '땟국물'이 나오면 수상한 겁니다. 독소는 끓여도 안 없어집니다. 아플라톡신은 소리 없이 간肝을 망가뜨립니다.)
게다가, 밥을 먹더라도 찔끔 먹어 밥 지을 때 여간 고민되는 게 아녜요. 한줌밖에 안 되는 밥 먹자고 압력솥이나 전기밥솥 쓰자니 가스비와 전기세가 너무 아까운 겁니다. 그리고 쌀 양이 너무 적으면 밥 맛있게 짓기 힘들잖아요. 고심 끝에 전자 레인지에 데워 먹는 즉석밥을 사 두었는데, 즉석밥도 일인분으로 나온 한 개를 부부가 둘이 나눠 먹으니 쌀 소비가 정말 미미한 집이죠. (반찬은 많이 먹어요. 그래서 한식 먹으면 본의 아니게 고염식을 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칭송하듯 과연 웬만한 식당 공깃밥이나 부주의하게 막 지은 집밥보다는 공장제 즉석밥이 낫기는 합니다. 그런데 즉석밥도 한계가 있지요. 특히, 물 냄새요.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라 집에서는 그냥 이렇게 먹고 있습니다.
참,
이 글 바로 전에 썼던 ☞ 돈부리 쌀밥 찬양글 말입니다, 딱 두 집 가 봤는데 하필 두 집 다 밥맛이 좋길래저는 돈부리에 든 쌀밥은 다 그렇게 맛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글 올린 뒤 다른 돈부리 집 가서 먹어 보니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인기 있는 집이라서 무려 40분을 대기한 뒤 먹었는데, 밥통에 오래 담겨 있던 지친 밥을 먹었더니 생기가 다 빠져 밥맛이 제대로 안 납니다. 짓기는 잘 지었을 텐데 보관을 오래 해서 그렇지요. 쌀밥이란 게 이렇게 예민한 겁니다. 그렇다고 밥이 최상의 상태일 땐 7천원, 맛없을 땐 6천원, 식당들이 이렇게 밥 상태에 따라 값을 깎아 주기라도 하냔 말이죠. 밥 잘 먹기 어려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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