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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쌀밥 (2) A Bowl of Rice

단 단 2019. 4. 18. 01:30

 

 

2017년 런던 워털루역 부근 어느 허름한 판-아시아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다는 밥.

텐동에서 덴푸라를 걷어 낸 모습.

 


밥 얘기 또.

외식할 때마다 느끼는 게 뭐냐면요,
쌀밥 의존도가 이토록 높은 식문화에서 맛있는 쌀밥 먹기는 왜 이리 힘든가, 하는 겁니다. 이런 말 하는 사람 정말 많죠?


"에이, 싼 집에서 드셔서 그렇죠. 그거 다 중국에서 찐 쌀 들여와 내는 거라서 그래요. 가격대 좀 높은 집 가 보세요."

 

 

 

 

 

 

2017년 서울. 미슐랑 1-스타 한식집 분점의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쌀떡.



가격대 높은 집 왔어요.
식객 한참 몰리는 시간을 피해 1시 반쯤 왔더니 밥이 거대한 한 덩어리의 떡이 돼 있었습니다. 젓가락으로 쿡 찍어 들어올리니, 어맛, 전체가 다 딸려 올라오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됩니다. 밥그릇 가장자리에 물방울 송글송글 맺힌 것 좀 보세요. 떡을 아주 잘 쪘어요. 물 냄새가 그냥 풀풀 나요. 본점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판>에서 2년간 별을 받은 뒤 2019년판에서는 빠졌습니다. 어디서 감점을 받아 별을 박탈 당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분점 관리도 못해 한식집이 한식의 근본인 밥을 저렇게 내고 있으니 수긍이 가죠. 

 

 

 

 

 

 

 

일식집풍 카운터석을 한 어느 한식 백반집의 불고기 반상.

 

 

보온통에 켜켜이 쌓아 둔 스뎅밥 안 주고 솥에서 바로바로 퍼서 내주는 깔끔한 밥집이 있다고 해서 와 봤습니다. 그런데 주방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밥을 공기에 퍼 담은 뒤 반찬과 고기를 준비합니다. 아아, 아주머니, 내 밥 다 말라요. 일행 세 명의 음식이 모두 준비된 다음에야 쟁반을 하나씩 건네 받았는데, 밥 표면이 바싹 말라 밥알이 버적버적 씹힙니다. 국물에 말아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말라 버렸죠. 그런데 일식집 깔끔한 상차림 흉내 내느라 국도 저렇게 입구 좁은 작은 그릇에 찔끔 담아 내니 마음껏 밥숟가락을 담글 수도 없어요. 

 

 

 

 

 

 

 한정식집의 즉석 솥밥. 공기에 덜어 담은 1인분.

 

 

캬, 주방에서 갓 지어 내준 윤기 잘잘 흐르는 솥밥입니다. 
잘 지었든 못 지었든, 갓 지은 밥이 주는 기본 점수란 게 있으니 맛있게 먹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밥이 왜 이렇게 무르고 찐득거려요. 게다가, 이게 코스로 요리를 잔뜩 낸 뒤 마지막에 낸 밥상이라 배가 불러 도저히 먹을 수가 없는 겁니다. 꽈당 아니, 요리를 그렇게 많이 먹고 반찬 무려 열 세 가지와 찌개와 생선구이를 곁들인 밥상 한 상을 또 먹으라니, 이거 가능한 분 계세요? 고스란히 남기고 온 그때 그 밥과 된장찌개가 아직도 삼삼합니다.

 

 

 

 

 

단단은 쌀밥을 자주 먹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집에 쌀을 사 둘 수가 없죠. 잘못 보관해 곰팡이 핀 쌀 먹고 혼난 적이 있어 집에 쌀을 오래 두게 되는 상황을 매우 꺼립니다. (곰팡이가 눈에 잘 안 띄게 끼기도 하니 밥 짓기 전에 유심히 살펴보세요. 쌀 씻을 때 회색 '땟국물'이 나오면 수상한 겁니다. 독소는 끓여도 안 없어집니다. 아플라톡신은 소리 없이 간을 망가뜨립니다.) 


게다가, 밥을 먹더라도 찔끔 먹어 밥 지을 때 여간 고민되는 게 아녜요. 한줌밖에 안 되는 밥 먹자고 압력솥이나 전기밥솥 쓰자니 가스비와 전기세가 너무 아까운 겁니다. 그리고 쌀 양이 너무 적으면 밥 맛있게 짓기 힘들잖아요. 고심 끝에 전자 레인지에 데워 먹는 즉석밥을 사 두었는데, 즉석밥도 일인분으로 나온 한 개를 부부가 둘이 나눠 먹으니 쌀 소비가 정말 미미한 집이죠. (반찬은 많이 먹어요. 그래서 한식 먹으면 본의 아니게 고염식을 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칭송하듯 과연 웬만한 식당 공깃밥이나 부주의하게 막 지은 집밥보다는 공장제 즉석밥이 낫기는 합니다. 그런데 즉석밥도 한계가 있지요. 특히, 물 냄새요.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라 집에서는 그냥 이렇게 먹고 있습니다.

 

 

 

 

 

 

 

 

 

참, 
이 글 바로 전에 썼던 ☞ 돈부리 쌀밥 찬양글 말입니다, 딱 두 집 가 봤는데 하필 두 집 다 밥맛이 좋길래저는 돈부리에 든 쌀밥은 다 그렇게 맛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글 올린 뒤 다른 돈부리 집 가서 먹어 보니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인기 있는 집이라서 무려 40분을 대기한 뒤 먹었는데, 밥통에 오래 담겨 있던 지친 밥을 먹었더니 생기가 다 빠져 밥맛이 제대로 안 납니다. 짓기는 잘 지었을 텐데 보관을 오래 해서 그렇지요. 쌀밥이란 게 이렇게 예민한 겁니다. 그렇다고 밥이 최상의 상태일 땐 7천원, 맛없을 땐 6천원, 식당들이 이렇게 밥 상태에 따라 값을 깎아 주기라도 하냔 말이죠. 밥 잘 먹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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