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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한식 반찬의 명과 암

단 단 2019. 10. 21. 02:00

 

 

 

 

다쓰 부처는 고기구이보다는 생선구이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고기구이든 생선구이든 조리 시 미세먼지와 유해물질이 많이 발생해 집에서는 여간해서 이런 음식들을 해먹지 않고 밖에 나가 사 먹고 들어옵니다. '오픈 키친' 식당이나 손님상 위에서 조리해야 하는 음식점도 잘 안 갑니다. 이런 데서 밥 먹고 나면 호흡기를 다쳐 며칠 고생합니다. 담배도 안 피우는 '절친'이 젊은 나이에 벌써 폐암에 걸려 저도 이전보다 환기에 더 신경 쓰고 몸을 사리게 되었습니다.

맛본 지 오래돼 삼치맛을 까먹은 단단은 과연 삼치가 기름지고 고소한 고등어를 대신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삼치를 내는 생선구이 전문점을 찾았습니다. 여의도에 있는 <구이구이>라는 생선구이 전문점이 일본풍 인테리어를 하고 있길래 생선을 잘 다룰 것 같아 선택했습니다. 식당 이름부터가 벌써 생선 잘 굽는 집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반찬이 무려 열 가지나 깔립니다. 
음식값이 아주 저렴하지는 않은 집이라서 확실히 반찬 때깔이 다르죠. 그런데 가만히 상 위에 올라온 것들을 보니 생선구이 반찬으로 어묵과 멸치는 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치도 열무와 총각무 중 하나만 선택해 내면 되겠고요. 어쨌든, 주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반찬들을 집어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생선구이 등장.
간 하나도 안 된,

젓가락이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하고 질긴 삼치구이. 음냐.
12,000원. 
보기에도 흉측. 

 

 

 

 

 

 

 


간 하나도 안 된,

과하게 익혀 촉촉함이라곤 전혀 없는 뻐득거리는 연어구이. 
15,000원. 
오렌지핑크빛의 어여쁜 연어가 이렇게 안 예쁘게 변할 수도 있구나.

 

 

 

 

 

 

 


간 하나도 안 된,

질척거리고 흐물거리는 맹탕 갈치구이. 
30,000원.
찌글찌글,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구운 줄. 


때깔 좋은 반찬에 들떴던 일행 모두 자기 생선을 맛보고 나서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분위기가 싸해졌죠. 

삼치구이가 먹고 싶어서,
연어구이가 먹고 싶어서,
갈치구이가 먹고 싶어서 전문점을 찾았는데 
반찬에 전력이 분산돼 정작 주요리는 형편없는 상황.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이 맞닥뜨리지 않습니까? 그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전용 설비와 숙련을 갖췄을 전문점이 반찬 내는 데 정신이 팔려 여염집만도 못한 솜씨로 음식을 냅니다. 
나, 생선 이렇게 구워 주는 사람을 남편으로 둔 사람이란 말이다 

조리솜씨는 둘째 치고, 종류와 맛 특성이 다 다른 생선을 전부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으라니요. 간장 날내와 와사비맛이 하도 강해 몇 번 찍어 먹다가 다들 포기하고 그냥 반찬 간에 힘입어 식사를 마쳤습니다.

 

 

 

 

 

 

 


한식당들이 반찬을 줄이거나 없애고 주요리에 공을 쏟기란 정녕 불가능할까요? 집에서도 늘 해먹거나 사다 먹을 수 있는 게 반찬인데요. 주재료에 어울리는 소스와 곁들이를 연구해 완성도 있는 한 접시로 내는 외국의 생선요리들, 맛있고 합리적이고 좋아 보이지 않나요? 잘 보면 접시만 한 개일 뿐이지 들어간 정성은 반찬 여러 개 나열한 한식상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소스 따로, 소스 위에 뿌리는 향오일 따로, 곁들이 따로, 가니쉬 따로 만들어서는 한 접시에 담았을 뿐이죠. 바닥에 깐 소스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바탕이 되는 육수나 채수는 또 얼마나 공들여 내는데요.  

 

 

 

 

 

 

 


게다가 한 상에 앉은 손님이 모두 다른 요리로 주문하면 각기 다른 생선에 맞춰 소스, 향오일, 곁들이, 가니쉬도 전부 달리해 냅니다. 공유반찬 가운데 놓고 '알아서들 나눠 드슈' 하는 한식 생선구이 상보다 서양식 생선구이 상이 품이 훨씬 많이 들 때도 있죠. '정성' 타령하며 한식 상차림 옹호하는 것도 늘 맞지는 않다는 겁니다. 다 집어치고, 생선구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알맞게 익히기인데, 한식당들은 이걸 참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삼치는 과연 고등어를 대체할 만큼 맛있었는가.

아니오.  
단단에게 삼치는 고등어만 못한 생선이었습니다. 등푸른생선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이 심심합니다. '담백'이 아니라 '심심'이요. 고소한 맛도 적고 풍미도 한참 약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삼치맛을 북돋우거나 부족한 풍미를 보완해 줄 삼치 전용 소스와 가니쉬가 필요했죠. 제철 최상의 상태일 때 솜씨 있게 잘 구운 '큰' 삼치로 다시 맛봐야겠습니다.    

 


[기사] 어제 먹은 그 삼치, 삼치가 아니라오

그래 이 맛이야 - 신라호텔 <라연>의 대삼치구이

☞ 한정식은 생선 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 한식 먹을 때 불편한 점

☞ [영국음식] 훈제고등어

흰살 생선을 뽀얗고 맛나게 조리해 봅시다

☞ 흰살 생선을 지져 향기로운 소스를 곁들여 봅시다

☞ 내 연어구이에 기차게 잘 어울리는 소스 하나 갈쳐 드리께

☞ 여염집 필부도 생선을 조리할 땐 최선을 다 하건만

넙치류를 집에서 간지나게 조리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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