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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냉면 함부로 권하지 마라

단 단 2018. 7. 29. 22:57

 

 

여의도 유명 냉면집의 평양냉면. 1만원.

 

 

 

권여사님께 재미 삼아 ☞ 내 취향에 맞는 냉면집 찾기 인터랙티브 화면을 보여 드렸더니 신기해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고르셨습니다.


• 육수: 소육수
• 육수 염도: 슴슴
• 육수 당도: 단맛 약간
• 꾸미: 쇠고기, 삶은 달걀, 무절임, 배
• 면: 탄력 있는 쫄깃한 면
• 그릇: 놋그릇


이렇게 선택을 하고 나니 인터랙티브 화면이 여의도에 있는 유명 냉면집을 추천하네요. 하하, 더이상 적절할 수가 없죠. 여의도 사시는 분께 여의도 냉면집 추천이라니. 모임이 많아 외식 자주 하시는 분인데 이 집은 한 번도 가 보신 적이 없답니다.

 

권여사님을 모시고 가기 전 다쓰 부처가 사전 방문을 했습니다. 직장인들 몰리는 시간을 지나서 가면 또 얼음 관리 안 된 무미무취 맹탕 냉면을 받게 될까봐 영업 개시 시간인 11시에 맞춰 가 줄 안 서고 입장했습니다.

 

그런데, 인기 있는 집 가서 자리 차지하고는 수육이나 만두, 녹두전 등의 추가 주문 없이 달랑 냉면 2인분만 시킨 게 괘씸했는지 물과 숟가락은 주지도 않습니다. (육수 담긴 이중 벽의 이 무거운 금속 그릇을 손에 들고 벌컥벌컥 마시라고? 나는 기운 없어 그렇게는 못 하것소.) 무려 세 번이나 요청을 했는데도 반응이 없길래 제가 직접 가서 가져 왔더니 종업원이 숟가락 가져 간다고 눈을 흘깁니다. 가만 보면 한식당 중 줄 서서 먹는 특정 음식 전문점들이 특히 불친절한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름난 국밥집이라든가, 냉면집이라든가. 

 

메밀 제철을 한참 비켜 있으므로 순면 대신 일반면을 시켰습니다. 인터랙티브 화면에서 '놋그릇'을 선택해 이 집에 온 건데 음식을 받아 보니 스테인레스 스틸 그릇이네요. 면은 다소 굵고 거칠면서 힘이 있으나, 그럼에도 뚝뚝 잘 끊겨 권여사님 취향보다는 다쓰 부처 취향에 좀 더 잘 맞습니다. 그렇죠, 한 냉면집이 여러 사람의 취향을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는 거죠. 접객은 아쉽지만 다행히 육수도 면도 저희 취향에 잘 맞고, 냉면 위에 올린 편육도 양념을 따로 또 했는지 잡내 없이 맛있습니다. 맛만 놓고 보면 또 가고 싶은 집입니다.


먹고 있으니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날이 무덥다 보니 그 많은 대기자들이 밖에서 대기하질 않고 홀 안으로 전부 들어와, 먼저 앉아 먹고 있는 손님들 테이블 주변을 버글버글 에워쌉니다. 살다살다 이런 광경은 또 처음 봅니다.

 

우리 테이블에도 대기자들이 바짝 붙어 서서 우리 먹는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는데, 심지어 어떤 아저씨는 우리 테이블 위의 냅킨을 계속 집어 얼굴과 목덜미의 땀을 닦습니다. 으아악, 밥맛 떨어져. 제발 저쪽으로 물러서요. 그리고 남의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집어갈 때는 "실례합니다." 한마디라도 좀 하세요.

 

업소 측에서 왜 대기자들 통제를 안 하고 이런 어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계산대에 앉아 있던 분이 "대기하시는 분들! 밖에 나가서 기다려 주세요! 홀로 들어 오시면 안 됩니다!" 외쳤으나 이미 들어와 시원한 공기 맛을 본 사람들이 이 무더위에 꿈쩍할 리 없죠. 대기자 인파를 뚫고 멀리 돌아서 겨우 계산하고 나왔습니다. 휴...

 

설상가상, 이날 식중독으로 배탈까지 나 글 쓰고 있는 지금까지 3일을 꼬박 화장실 들락거리며 고생중입니다. 이 집 육수 탓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아침 굶고 가서 11시에 냉면 주문해 먹고는 아무것도 안 먹고 있다 저녁 6시부터 배앓이를 시작했으니 저로서는 냉면집 탓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영국 가기 전 식중독으로 신장이 손상됐었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영국 생활 11년 동안 식중독 한 번 안 걸리고 잘 지내다가 작년에 귀국해서는 백화점에서 콩국수 사 먹고 또 식중독. (Welcome to Korea!) 올해 또 식중독. 주변에는 생굴이나 게장, 젓갈 먹고 탈난 사람 수두룩.

 

저는 정말 한식과는 체질적으로 맞지가 않는 것 같아요. 한식에는 'health & safety'를 '개나 줘 버린' 음식이 너무 많아요. 지난 기사들을 찾아 보니 한국에서 콩국수와 냉면 식중독은 여름철이면 으레 발생하는 연례행사처럼 인식이 돼 있더군요. 위생 점검도 이 두 음식을 겨냥해 집중적으로 하기도 하고요. 고온다습한 날 찬 단백질 국물 음식을 사 먹는 게 이렇게 위험한 겁니다. 제가 이래서 냉면집 가면 '초딩 입맛이다' 소리 들으면서도 비빔냉면을 시키려는 거예요. 저 경향신문 기자들처럼 염도계와 당도계를 들고 다닐 게 아니라 식중독균이 얼마나 들었는지 즉석에서 잴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그걸 사서 들고 다니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해마다 식중독 걸렸다가는 장기가 다 손상돼 제 명대로 못 살 것 같아요. 저보다 좀 더 튼튼한 다쓰베이더는 하루 지나서 배앓이를 시작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되면 같은 집 냉면 먹고 탈난 사람은 또 없는지 영등포구 보건소에 문의해 봐야겠습니다.     


 

 

 

 

 

 

'이열치열' - 여름에 찬 단백질 국물 음식 먹고 크게 탈났던 사람이 만들어 낸 말 아닐까? 집 근처 라멘집의 돈코츠 라멘. 9,900원. 같은 값이면 냉면보다는 좀 더 안전한 라멘을 사 먹는 게 단단 신상에 이로울 듯. 보라, 손님한테 고기 내기 전 토치torch로 혹시 남았을지 모를 식중독균 한 번 더 확인사살 하는 거. 불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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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누리집 들어갔더니 식중독 예방 캠페인 글에 아예 냉면이 떠억.
여름철 날씨가 더워지면서 특히 냉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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