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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소리, 백파이프 - 캔디캔디, 여왕 장례식 본문

음악

천상의 소리, 백파이프 - 캔디캔디, 여왕 장례식

단 단 2022. 9. 24. 09:34

 

 

 

 

 

단단이 아끼고 사랑하는 만화 <캔디캔디>(1975-79)의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집에 갖고 있는 여섯 권짜리 '흑백 애장본'에서 오늘의 글 주제에 맞는 백파이프 장면들만 사진기에 담아 봅니다.

 

여섯 살의 캔디 모습, 한숨 나오게 귀엽죠. 제가 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아기나 꼬마를 보면 신비로워서 넋을 놓고 봅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교한 미니어처 사람이 다 있죠? 작은데 꼼꼼히 살펴보면 있을 게 다 있어요. 손톱, 발톱, 속눈썹, 머리카락 등이 섬세하게 붙어 있고 심지어 손가락 같이 주름이 있어야 할 곳에 주름도 벌써 다 있어 볼 때마다 많이 놀랍니다.

 

성인이 돼서 이 만화를 다시 보니 인물들이 다들 동글동글, 앳되고 사랑스럽습니다. 순정만화에서는 길죽하게 뻗은 신체가 기본 설정인데 <캔디캔디>는 다르죠. 어릴 때 그렇게 멋져 보였던 테리우스도 지금 보니 젖살 덜 빠진 얼라.;; 

 

이 장면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킬트kilt 복장과 백파이프 악기 고증도 잘했습니다. (오른쪽 장부터 읽게 돼 있는 일본어판을 왼쪽부터 읽는 한글판으로 만들면서 좌우 위상을 반전시킨 것 같으니 감안하고 보세요. 악기의 파이프들이 인물의 왼쪽 어깨에 와야 합니다.)  

 

시청각 자료가 범람하는 오늘날에는 "달팽이가 많이 든 것 같은" 백파이프 소리를 누구나 쉽게 찾아서 들어 볼 수 있지만 제가 어릴 때는 이 대목을 보면서 소리를 상상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궁금했지요. 다행히도 유학을 영국으로 가서 실컷 보고 듣다 왔습니다. 백파이프 소리는 제가 좋아하는 영국의 소리 중 하나입니다. 일단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쉼표 없이 계속 울려야만 해 다른 취주악기wind instruments 소리들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지속저음drone 위에 펼쳐지는 장식음 붙은 자유로운 선율이 듣는 이에게 최면 효과를 일으키고 때로는 현기증도 일으킵니다. 고래古來로 전해진 멋진 악기입니다.

 

 

 

 

 

 

 

 

 

백파이프는 전세계에 수많은 종류가 존재하지만 일반인들 눈과 귀에 가장 익숙한 것은 스코틀랜드식으로, 타탄tartan 무늬의 킬트 정장 차림을 한 연주자가 높은 언덕에 홀로 서서 백파이프를 부는 모습은 오늘날 '스코틀랜드스러움'의 굳건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식 백파이프는 이렇게 만듭니다. 공장제 대량생산 저가품에 밀려 수작업으로 만드는 공방은 스코틀랜드 수도인 에딘버러에 이제 단 하나만 남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모두 안타까워하고 조바심을 내게 되지요. 부디 잘 버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언제 백파이프를 연주하는가 - 

이렇게 마을의 축제나 결혼식 같은 기쁜 일에도 연주되지만,

 

 

 

 

 

 

 

 

 

 

이별의 순간에도,

 

 

 

 

 

 

 

 

 

죽음을 애도할 때에도 울립니다. 즉, 삶의 모든 국면에 함께 합니다. 1,2차 대전 영화들을 보면 심지어 전장에도 백파이프를 들고 가죠.

 

저는 아홉 시간이 넘는 장례식 생중계에서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슬퍼서 눈물이 난다기보다는 장엄한 광경에 북받쳐 눈물이 났어요. 이렇게 많은 인원이 연주하는 백파이프 소리는 처음 들어 보았는데, 대북과 스네어 드럼이 받쳐 주니 여간 근사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 구성의 군악대에는 "pipes and drums"라는 용어를 씁니다.

 

다음 영국 군주의 장례식 때나 이런 근사한 장면을 다시 보게 되겠지요. 윌리엄은 저보다 젊으니 현 군주인 찰스 3세의 서거 때 듣는 게 아마 제 인생의 마지막 근사한 장례식 백파이프 합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왕은 어머니가 스코틀랜드인이었으므로 피가 섞여 있으니 백파이프로 죽음을 기릴 명분이 충분합니다.

 

곡 제목은 'Mist Covered Mountains'.

유튜브에서 백파이프 독주곡으로 따로 찾아 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 영상의 소리만큼 웅장하고 감동스럽지가 않습니다.

 

 

 

  

 

 

 

 

 

 

이번에는 독주로 죽음을 애도합니다.

아치Archibald 혼자 남아 언덕 위에서 백파이프를 부는 외롭고 쓸쓸한 장면...

(앤써니Anthony 죽었을 때보다 스테아Alistair 죽었을 때가 더 슬펐던 분 손들어 보세요.)

 

이때 아치가 불었던 음악으로는,

 

 

 

 

 

 

 

 

이 곡을 떠올려 주세요. 죽은 자를 기리는 애가lament로, 장례 때 많이 연주되는 곡입니다. 

곡명은 'Sleep, Dearie, Sleep'.

 

 

 

 

 

 

 

 

 

이 곡은 이번 장례 예배 때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안에서도 연주됐었습니다. 연주자가 한 악구phrase를 마친 뒤 돌아서서 천천히 퇴장하도록 해 백파이프 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지게끔 연출했는데, 매일 아침 여왕의 침실 창 아래에서 자명종 대신 성장盛粧한 전속 파이퍼Queen's Piper가 15분간 연주하다 떠나던 관습을 재연한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자명종이 아닐까 싶은데, 여왕이 자기 장례식에 이 순서를 꼭 넣어 달라고 생전에 요청한 걸로 보아 신세 진 이에게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고마움을 표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음량이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정적만 남아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기사] 여왕 침실 창가 아침마다 백파이프 불던 그, 마지막 배웅하다

 

 

 

 

 

 

 

 

<캔디캔디> 맨 마지막 장 '동산 위의 왕자님.'

반전反轉 스토리 중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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