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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재즈 워킹 베이스의 선구 J. S. Bach's Walking Bass 본문

음악

바흐, 재즈 워킹 베이스의 선구 J. S. Bach's Walking Bass

단 단 2022. 10. 13. 23:07

 

 

 

10월 12일은 '(모든 종류의) 베이스 연주자 안아주기 날'입니다. 

내 주변의 베이스 연주자를 찾아서 꼬옥 안아주셨나요?

 

이번 가을에는 베이스가 근사한 음악들을 소개하기로 했었죠. 두 번째 시간입니다. 

 

재즈 베이스 연주법 중에 4분음표(♩)나 8분음표(♪)를 연속으로 사용해 마치 사람이 성큼성큼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양한 음가duration로 조합된 리듬을 쓰는 게 아니라 한 가지 음가만 연속해서 쓰니 유유자적 흐르거나 머무는 느낌보다는 전진하는 느낌을 주지요. 이를 'walking bass'라고 부릅니다.

 

워킹 베이스는 (1) 화음chord을 구성하는 음들에 (2) 화음 구성음이 아닌 음non-harmonic tone들을 적당히 섞어 도약과 순차 진행을 골고루 갖춘, 균형 있으면서도 흥미로운 선율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여기에 때로는 (3) 특정한 한 음을 고집스럽게 반복해pedal tone 인상적인 악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요. 워킹 베이스 악보는 대개 아래와 같이 생겼습니다. 4분음표 대신 8분음표가 쓰이기도 합니다. (이 글의 조각 악보 세 개는 다쓰베이더가 그렸습니다.)

 

 

 

 

설명은 이쯤 하고, 음악을 들려 드릴게요. 음악을 들으면 대번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요염한bluesy 재즈 스탠다드 '벅스 웍스Birks' Works'.

비밥 시대의 트럼펫 명연주자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의 1951년작으로, 벅스는 디지 길레스피의 중간 이름입니다. 'John Birks Gillespie'가 본명. 1957년의 오리지날 빅 밴드 연주 대신 베이스가 더 잘 들리는 2017년 <마시모 파라오 트리오Massimo Faraò Trio>와 필 하퍼 트럼펫의 깔끔한 하드 밥 스타일 연주로 걸어봅니다. 선율이 야하게 들리는 이유는 단조 블루스 음계F-minor blues scale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곡 앞부분은 뜸들이기 마련이므로 본격적으로 음악이 진행하는 47초부터 워킹 베이스가 시작됩니다. '뚬 뚬 뚬 뚬' 하며 같은 음가로 울리는 베이스에 귀 기울여보세요.

 

 

 

 

 

 

 

 

 

'모달 재즈modal jazz'의 대표 음반인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1959)의 수록곡 '쏘 왓So What'도 걸어봅니다. 이 곡도 베이스가 근사합니다. 앞부분 33초부터 들리는 반복되는 짧은 패턴의 베이스는 워킹 베이스가 아니라 '베이스 리프riff'입니다[아래 악보]. 워킹 베이스는 1분 30초부터 시작됩니다.

 

 

이 곡은 중세 음계를 활용한 20세기 대중음악의 예를 들 때 제가 수업 시간에 꼭 언급하는 곡입니다. 옛날 음계Dorian mode를 써서 오히려 '모던'하게 들린다니 아이러니하면서 재미있죠. 옛것을 많이 알고 있으면 창의적인 일을 도모할 때 유리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공부를 하는 거지요. '쿨'하고 '모달'하고 '모던'하고 지적이어서 제가 좋아하는 곡입니다. 

 

 

*  *  *

 

 

그런데 재즈나 대중음악에서의 이런 워킹 베이스는 저 옛날 바로크 시대(c.1600-c.1750)에 예술음악 쪽 작곡가들이 이미 고안해 썼던 겁니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과 이 시대를 대표하는 J. S. 바흐(1685-1750)의 음악에 워킹 베이스들이 수두룩 담겨 있죠. 대중음악을 전공하다가 좀 더 깊게 공부해보겠다며 예술음악 쪽으로 편입해 들어오는 학생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래의 악보들은 바흐가 작업한 루터교 찬송가chorale의 4성부 편곡입니다. 베이스를 보세요.

 

 

 

 

아이폰으로 종이 악보를 사진 찍어 AI한테 맡겼더니

몇 초만에 이런 잡티 없는 멀끔한 악보들을 뚝딱.

 

 

 

 

 

 

 

 

 

제가 바흐의 워킹 베이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 곡 -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The Well-Tempered Clavier> 제1권의 6번 D단조 '프렐류드와 푸가' 작품 851번BWV 851 중 앞곡인 '프렐류드'의 베이스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푸가는 제가 바흐의 수많은 푸가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고요.)

 

화성음과 비화성음, 그리고 고집스러운 페달음까지[16-21마디의 반복해서 울리는 왼손 D3음], 재즈와 대중음악에서 사용하는 워킹 베이스의 기본 요소들이 이 옛날 음악에 다 들어 있습니다. 독보 가능한 분은 연주를 틀어 놓고 아래의 악보에서 베이스만 따라 불러보세요. 매우 잘 만든 워킹 베이스입니다. 마침 리히터가 왼손 음표들을 특별히 짧게 끊어 더블 베이스처럼 들리게 연주합니다.  

 

 

 

저작권 만료된 옛날 악보.

컴퓨터 사보가 아닌 손사보engraving라서 훨씬 예쁘다.

 

 

근사한 워킹 베이스를 들으면 저는 멋지게 차려입고 세련된 도심을 활기차게 걷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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