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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초승달, 선교사, 테레민 Clair de Lune, Crescent, Missionary Position, Theremin 본문

음악

달빛, 초승달, 선교사, 테레민 Clair de Lune, Crescent, Missionary Position, Theremin

단 단 2022. 12. 9. 21:58

 

 

 

 

어젯밤과 오늘 새벽에 달이 참 예뻤잖습니까?

그래서 트위터 실트에도 "달이 너무"가 떴었고요.

다들 손에 쥔 스마트폰이나 집에 있는 사진기로 고군분투 촬영한 것들을 올려 결과물은 시답잖아도 탐스러운 달을 같이 즐기자며 공유했었죠.

저도 밖에 나가 달을 찍었습니다.

작심하고 사진기에 달만 담아 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멀리 있는 콘트라스트 심한 오브제를 허공에 대고 팔 뻗어 담으려니 사진기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아 날도 추운데 한 시간 넘게 씨름하다 낙심하고 집에 돌아와 사진 선생님께 SOS.

제시해 주신 다음의 조건으로 새벽 3시 20분에 다시 나가 여섯 장을 찍어 단 한 장도 망치지 않고 다 건졌습니다.

 

 캐논 EOS 700D + 캐논 EF 50mm [80mm] f/1.8 II 단렌즈 

 손각대 [집에 삼각대가 없어서]

 

 M모드
 ISO 100
 f/5.6 이상, 화질이 가장 우수한 구간으로 [단단 것은 f/5.6에서 f/11 구간이 우수]
 1/250 - 1/640 
 스폿 측광

 라이브 뷰 수동 초점

 갖고 있는 렌즈가 충분한 망원이 되지 못하니 촬영 후 크롭해서 달 크기를 키울 것

 

깜깜한 밤이라서 저는 저조도 환경으로 맞춰야 하는 줄 알고 처음에는 ISO 잔뜩 높이고 조리개를 활짝 열었었죠. 노출 시간도 늘리고요. 그런데 달 사진은 주광 촬영처럼 여기고 설정해야 한다는 뜻밖의 가르침을 주셔서 그대로 따랐더니 허옇기만 하고 번져 보였던 달을 토끼가 보이도록 선명하고 깔끔하게 잘 담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내 스승님. 

 

 

 

 

 

 

 

 

 

예쁜 달을 보면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Suite Bergamasque>(1905) 중 세 번째 곡인 '달빛Clair de Lune'을 떠올리는 분 많을 겁니다. 한숨 나오게 아름다운 곡이죠. 아련함과 회한의 감정이 들면서도 참 야하고요. 드뷔시의 특기인 '영롱함', '물결처럼 넘실대는 풍성한 음향의 아르페지오', '같은 선율을 맥락 달리해 제시하기'가 잘 드러난 곡입니다.

 

드뷔시의 피아노 곡은요, 동시대 다른 작곡가들의 피아노 작품들과는 벌써 악보 때깔부터가 다릅니다. 그의 피아노 곡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즐거워요. 제가 천재로 꼽는 작곡가 중에는 드뷔시도 들어 있죠. J. S. 바흐, 쇼팽, 드뷔시, 라벨 등등. 고등학교 3년 동안 드뷔시 곡 치는 데 온 정신을 다 팔았었습니다. 드뷔시풍으로 쓴 어설프고 귀여운 소품도 하나 있고요.

드뷔시 피아노 음악 전곡 다 들어 보기 [6시간 30분 소요]

 

 

 

 

 

 

 

 

 

저는 달을 보면 드뷔시의 음악과 함께 영국의 패션 모델 데이비드 간디David Gandy가 출연한 구두 광고가 자동적으로 떠오릅니다. 이 광고도 드뷔시의 '달빛'을 아주 '인상'적으로 잘 쓰고 있거든요. 예전에 써 두었던 글을 잠깐 보고 오십시오.

창의력 끝판왕 - 구두 광고를 어떻게 이렇게 찍는 사람들이 다 있나

 

얼마 전 한국 드라마 <서른, 아홉>을 보는데, 주인공 남녀가 레스토랑에서 제3자의 소개로 만나는 초반부 장면에 이 음악이 나오더군요. 다들 음악 들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나 봅니다.

 

 

 

 

 

 

 

 

간송미술관 해설

 

 

 

많은 이들이 동그랗고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좋아하지만 저는 초승달[손등이 보이게 하고 손가락을 폈을 때 왼손 엄지손톱 끝자락과 같은 방향의 달]과 그믐달[오른손 엄지손톱 방향 달]을 좀 더 애호합니다. 제가 가느다란 달을 좋아하는 이유는... 연상케 하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연결문서 중간쯤에 가는 달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밝혀 놓았으니 잠깐 보고 오세요.

스타워즈 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연결문서에서 'missionary position'에 대해 언급한 김에 이야기를 좀 더 풀어 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정만화의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실물 종이책으로 전권을 소장하고 있지만 사진 찍기 번거로우니 영어판 발췌로 올려 봅니다. 

 

저는 이 체위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이 장면을 처음 접했던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품었었습니다. (뭣?)  

 

여성은 'longing'과 신뢰의 눈빛으로 상대를 올려다보고,

오랫동안 연모하던 여인을 드디어 품에 안게 된 남성은 사랑스러워 죽을 것 같다는 눈빛으로 상대를 내려다보고.

너무 근사하지 않아요?

남성이 여성을 덮어 가린eclipse 모습이 마치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진 달 같아서 제가 초승달이나 그믐달을 보면 조용히 흥분합니다. 여성을 달에 비유하곤 하잖아요.

눈썰미 있는 분들은 알아차리셨겠지만 거의 모든 사교춤은 남성이 리드하게 돼 있는데,

이 운우지정을 나누는 일도 춤과 같아서 남성이 리드하는 이 체위는 제 눈엔 더없이 예술적이고 관능적이고 아름답게 보인단 말이죠. 

호기심이 많아 이런저런 체위를 다 해보았지만 이 'missionary position'이 친밀감 표현과 밀착도에 있어서는 단연 으뜸이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선교사 만세. (다쓰베이더 집안에 선교사가 세 분이나 있었음. 다들 곤궁한 자들 돕는 데 애를 많이 쓰신 훌륭한 분들. 고생하셨으니 남은 생애는 좀 더 편히 지내셨으면.) 

 

 

 

 

 

 

 

 

 

수업 진도가 <새로운 음향 - 전자음악> 시간에 다다라 전자기장을 이용해 만든 악기인 테레민theremin 연주를 학생들에게 소개했었습니다. 악기 이름이자 최초 개발자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1920년대에 소련에서 개발되었는데, 이를 본 레닌이 몹시 기뻐하며 '소련의 신기술' 프로파간다 차원에서 유럽에 소개하게 했고 개발자는 미국에 건너가서 특허까지 얻었습니다. 가정용 오락기구로서의 가능성을 간파한 RCA가 상품화했으나 연주하는 게 지나치게 어려웠는지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고 하죠. "당신도 오페라 가수처럼 연주할 수 있습니다."를 광고문구로 내세웠었다는데, 일반 악기 연주자들 못지 않은 노력,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연습해야만 하니 상업적 실패가 이해 가고도 남습니다. 두 안테나 사이의 막연한 3차원 공간을 '음 좌표'로 여겨야 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닐 듯합니다. 길죽한 안테나 쪽 손으로는 음높이pitch 및 비브라토(이것도 결국 음높이)를 조절하고 고리loop 모양 안테나 쪽 손으로는 셈여림volume을 조절합니다 사람 목소리 같기도 하고 바이올린 소리 같기도 해 작곡가들에게는 각광을 받아 실험음악과 영화음악에 많이 쓰였고, 저도 대학 시절 음대 전자음악실에서 잠깐 다뤄 본 적이 있습니다.      

 

 

 

 

 

 

 

 

 

아까의 그 소년이 자라서 수염을 기른 청년이 되었네요. 연주도 많이 섬세해졌고요. 앞의 연주가 인성人聲 같았다면 무그Moog 사의 이 테레민은 좀 더 바이올린 같은 소리를 냅니다. 드뷔시가 살아 있었다면 테레민으로 자기 음악이 연주되는 걸 보며 놀라워하고, 호기심 많은 사람이니 즐거워했을 게 분명합니다.

 

보름 후 달이 가느다란 그믐달과 초승달이 되었을 때 다시 사진 찍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지 없이 날이 맑아야 할 텐데요. 기껏 사진 공부를 시켜 놨더니 19금 글에 써먹은 불초 제자 때문에 우리 스승님 앓아 누우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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