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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목사 본문
일요일에 예배하러 교회에 모인 신자에는
• 극우 (이쪽에서는 '수구 꼴통'이라고 부르고 싶겠지만)
• 보수
• 진보
• 극좌 (저쪽에서는 '빨갱이'라고 부르고 싶겠지만)
가 섞여 있다.
나이와 학력도 제각각이다.
목사는 이들을 분반 없이 한데 모아 놓고 설교해야 하고 단합된 교회를 일궈 나가야 한다.
이거 너무 힘들 것 같지 않나?
나는 학부 강의 몇 번 해보고는 수준 차이 지나치게 많이 나는 학습자들 한데 모아 놓고 가르치는 게 하도 힘들어 '소수 정예' 대학원 강의로 옮겼다. 나야 지식과 노하우만 전하면 되지만, 아롱이다롱이들 한꺼번에 모아 놓고 지식과 노하우에 정신적·영적인 것까지 논하면서 그 많은 사람들 경조사 다 챙기고 상담과 중재까지 해야 하는 목사는, 어후, 너무 힘들 것 같다.
좌익과 우익, 양 날개가 있어야 균형 잡고 날 수 있다는 것쯤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나는 진보 성향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사회에 진보주의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경을 자주 읽지는 않지만 얼핏 보기에 성서에도 보수와 진보가 각각 자기들 입장의 근거로 삼을 만한 구절들이 있어 보인다. 목사도 사회에 속한 한 개인이고 나름의 신념이 있을 테니 보수나 진보 어느 한 쪽에 마음을 더 둘 수 있다.
교회 밖 진보주의자들은 '개신교' 하면 신천지(개신교 아님), 전광훈 집단, 세습을 당연히 여기는 대형교회 교인들과 태극기 부대 할배 할매를 떠올리며 개독개독 넌더리를 낸다. 개신교에 수구 꼴통들만 있는 건 아니라고 항변하면 그럼 나머지는 어디서 뭐 하느라 이 시국에 찍 소리도 않고 있냐며 아우성, 교회가 사회를 선도하기는커녕 해악과 근심만 끼치고 있다며 한탄들이다. 가톨릭교회는 사람들 모일 때마다 구호도 같이 외쳐주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실내 공간과 화장실 개방하는 예쁜 짓을 해 점수를 두둑이 따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순한지 사제들이 탄핵을 외쳐도 별 말이 없어 보인다.
개신교 신자들은 극성맞다. 목사가 설교 때 진보 성향을 내비치면 늙다리 남정들 위주로 구성된 회의(업계 용어로 '당회'라고 한다.)에 불려가 혼나거나 목 잘릴 수 있다. 보수 지지 발언을 하면 그 다음주부터 좌파 손님 발길이 뚝 끊긴다. 어쩌라고. 정치 얘기는 꺼내지 말고, 하더라도 최대한 에둘러 말해야지.
비신자들은 교회의 주인은 목사이고 목사한테 헌금을 바치는 줄 알던데, 목사는 면접과 심사를 거쳐 고용돼 일하는 사람이고(업계 용어로 '청빙'이라고 한다.) 대가로 임기 내에 살 집과 월급을 받는다. (간혹 목사가 자기 돈으로 교회를 차려 영업 개시하기도 하는데, 성업을 이룰 경우는 주인 티를 내기도 한다.) 개신교는 ☞ 장로들 힘이 세서 목사가 잘못하면 불러다 혼내거나 쫓아낸다. 장로는 월급도 못 받고 자기 돈과 시간 써서 교회 일을 해야 한다는 고충이 있기는 하나, 드물게 존재하는 웃기는 짬뽕 장로를 걸러내려면 나는 장로도 4,5년마다 재신임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본다.
비신자들의 통념과 달리 정상적인 교회에서는 목사가 힘이 별로 없고 교인들 눈치를 많이 본다. 목사 부인한테 향수를 선물했다가 '목사 부인이 향수나 뿌리고 다닌다'고 교인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뿌릴 수 없다고 해 깜짝 놀란 적 있다.
아무튼, 사정이 이러하므로 개신교 목사는 좌파 신자, 우파 신자가 골고루 있는 교회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기가 매우 힘들게 돼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다.
그리고, 개신교는 왜 특정 교회가 GR 떨고 있는 것을 나머지 교회들이 말리지 않고 보고만 있냐고 하는데, 식당으로 치면 가톨릭교회 같은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아니라 자영점 개념이라서 그렇다는 비유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개신교에는 수많은 개신교 분파인 '교파'를 아우르는 중앙 통제 기관이란 게 없다. GR 목사는 같은 '교단'(개신교의 가장 작은 연합체 단위) 내에서 회의와 표결을 통해 제명하는 것까지만 가능하고, 그 이상은 방법이 없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은 이미 제명돼서 독립 식당을 차린 자, 신천지 이만희는 교파란 게 없는 단일 거대 식당 사장. 이들에 대해서는 다른 개개의 식당들이 제제를 가할 방법이 없고, 사실 개신교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면 손님이 그 식당엘 가지 말아야 하는데, 제 발로 찾아가 단골이 되는 걸 다른 식당 주인과 손님은 막을 길이 없다. 개신교 내 좌파들은 각자 알아서 집회에 참석하거나 SNS상에서 견해를 표출하고 있다. 개신교 내 우파들이 자기 교회 이름 내걸고 맞불 집회 하는 게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저거, 교회 목사와 동료 교인들한테 허락받고 교회 이름 내거는 건가? 저 교회에도 좌파 신자들이 있을 텐데? 좌파 신자보다 우파 신자가 더 극성맞나? 아마도. ■








▲ 기독교 웹툰 플랫폼 <에끌툰>의 ☞ '로마서 뒷조사' (러스트 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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