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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어려운 우리말 본문
▲ 분리주의자의 하루.
(차 블로그이지만 오늘은 우리말 이야기를 좀 해보련다.)
'미션 임파서블'이긴 하나 글 쓸 때마다 철자나 띄어쓰기 안 틀리려고 신경을 쓰는 편이다. 문제는, 제아무리 믿을 만한 사전을 들여다보고 참고를 해도 글쓰기 상의 어려움이 줄어들지를 않는다는 것.
특히 사이시옷 규정 항목에 이르러서는 나도 모르게 '버럭'하고야 말았는데, 법칙도 깐깐한데다 예외도 많고 학자들마다 의견도 분분하다 하니 일일이 다 외울 수도 없고 도대체 뭘 어떡하란 건지 대책이 안 서기 때문.
예를 들어, 회 파는 집은 '횟집'인데 만두 파는 집은 '만두 집'으로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아야 하며, 횟집보다는 덜 보편적인 음식점이기 때문에 '만두'와 '집'을 띄어서 '만두 집'으로 써야 한단다. 그런데 이 만두 집에서 파는 음식은 보편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만두 국'이라 쓰지 않고 '만둣국'이라 붙여 쓰면서 한자어와 순 우리말의 결합이니 사이에 시옷도 넣어야 한다고. 꽥이다 정말.
차茶와 관련해서는 사이시옷 규정도 무색해진다. 규정에 의하면 찻상, 찻잔, 찻종, 찻주전자는 원래 차상, 차잔, 차종, 차주전자로 써야 옳은데 이건 또 사이시옷 붙인 걸 허용한다고 한다. 남한 사정도 이렇게 복잡한데 북조선은 또 다르다고 한다. 글의 꼴이 날카롭고 사나워 보여 개인적으로는 사이시옷의 남발이 탐탁치가 않다. (등굣길, 하굣길, 북엇국, 장맛비... )
그런데 내게 있어 우리말 쓰기의 진짜 어려움은 철자보다 띄어쓰기에 있다. 내 글에서도 오류가 종종 보이겠지만 도대체가 누리터에서 띄어쓰기 제대로 한 글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얽히고 섥힌'이 아니라 '얽히고설킨'이 맞는 표기라는 거 다들 알았어? 난 얼마 전에야 알았어. 참고로, 나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인데도 이래. 한심하기 짝이 없어. 쯧쯧.)
글 쓸 때 철자만으로도 머리 아파 죽을 지경인데 띄어쓰기 법칙은 훨씬 더 복잡하다. 띄어쓰기를 잘 하려면 품사를 모두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단다. 활자로 떡 박혀 나온 책이라고 해서 꼭 공신력이 있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출판사마다 띄어쓰기도 다 다르다. '좀더'라고 붙여 쓸 때가 있는가 하면 '좀 더'라고 띄어 쓰기도 한다. 그 뒤의 띄어쓰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간혹 남이 쓴 글에 철자와 띄어쓰기가 엉망이라고 댓글로 핀잔 주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곤 하는데, 이건 띄어쓰기 개념이 없는 그 사람을 탓할 게 아니라 지나치게 어려운 우리말을 먼저 탓해야 할 일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집 '어이구내새끼1(맏조카)'은 급기야 띄어쓰기 없이 모든 단어를 줄줄 붙여 쓰기로 제 동무들과 합의를 본 모양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고등학교나 대학 교육까지 마친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오류 없이 구사할 수 있어야 진정한 모국어 아닌가? 우리말은 정말이지 맞춤법이 너무 어렵다. 거기다 아랫사람 움츠러들게 만드는 높임말 규정과 복잡한 가족 구성원간 호칭까지 생각하면. (시댁 친척들은 아무리 꼬맹이라도 아가씨 도련님 깍듯하게 불러줘야 한다니, 우리 결혼한 여자들이 무슨 하녀라도 된단 말이냐.)
이건 결혼한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막내 오라버니는 우리 집 다쓰베이더보다 나이가 적어 결혼 전까지 무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형형 하며 따르던 사이였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우리 집 양반이 반대로 '형님' 하게 생겼으니 먼저 말을 붙이려 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사회의 경직이 소통을 위해 주어진 언어에서 비롯된다는 건 모순이다.
그런데, 오늘 차 한 잔 홀짝이며 그동안 블로그에 쓴 글들을 죽 읽어 보니 띄어쓰기나 맞춤법 문제말고도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눈에 띄는 것이었다. 별생각 없이 영어 단어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티폿'이니 '바디감'이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건 다른 차동무들의 공간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빈도수 높은 것들을 생각 나는 대로 나열해 보자면
티폿(티팟)
티타임
티테이블
티푸드
티틴
티숍
티룸
바디감
프루티함
밀크
'바디감'만 빼면 죄다 멀쩡한 우리말이 있는 것들이다. 'Body + 感'이라니 이것도 생각할수록 우습다. (저 '바디감'은 어떤 말로 대체하는 게 좋을까? 농도? 밀도감? 무게감?)
비교적 젊은 층으로 구성된 홍차 블로거들이 이런 영어 단어를 별생각 없이 쓰고 있는 동안 연세 지긋하신 분들로 구성된 녹차나 보이차 애호가들은 한자어를 남발하고들 계셨다. '다관'이란 말. 이거 좀 근엄하다는 생각 안 드는가. 나도 몇 번 쓴 적이 있다만, 역시 티폿과 다관에 해당하는 말로는 '찻주전자'가 으뜸이지 싶다. 끓는 물을 '탕수'라 하는 것도 그렇다. 차라리 '보일링 워터'가 낫다. 멀쩡한 우리말 두고 영어를 쓰는 것은 '밥맛이다' 소리라도 듣고 고칠 수 있지만 '탕수'라고 할 경우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좀 더 진지한 우리말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으므로 말 하는 이에게 개선의 가능성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숙우'라 하면 짧아서 좋긴 하지만 우리들 열 명 중 아홉은 "그게 뭐예요?" 할 게 분명하다. '물식힘그릇'은 길긴 하지만 그게 뭐냐는 질문을 아낄 수 있다.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세대에 속하는 나로서는 차 관련 용어를 한자로 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어로 접하는 게 더 쉽고 쏙쏙 잘 들어오긴 한다만 양측 다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한다. <한글학회>라는 곳이 있다. 그 곳 누리집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인용문 하나 -
"아기가 태어나면 캐시밀론 포대기 속에서 플라스틱 젖꼭지를 빨다가 크래커나 스마일 쿠키를 먹고 사람 죽이는 컴퓨터 게임이나 복싱 타이틀 매치를 보며 자란다. 입시 지옥을 거쳐 대학에 합격하면 스쿨버스 타고 캠퍼스에 가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여친과 데이트를 하면서 포카리스웨트를 스트로로 빨아 마신다. 점심은 주로 셀프 서비스로 오무라이스를 먹으면서 포크로 다꽝을 찍어 먹는다. 맘모스 홀에 샤프한 엘리트들이 모여 심포지엄을 가지기도 하는데, 테마는 '민족 주체성의 확립 방안'이다."
낄낄. 비록 풍자를 위해 급조한 티가 나긴 하나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사이비 유학자들은 가짜인 게 들통날까봐 더욱 힘써 '아린쥐 아린쥐' 한다고 한다.
가능하면 영어 단어를 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홈페이지'나 '웹사이트'는 '누리집'으로 쓰겠다. 소리가 예쁘다. '인터넷'은 '누리터'로 쓰겠다. '체인점'은 '연쇄점' 대신 '사슬점'이라고 하면 된단다. 이것도 소리가 예쁘게 나서 좋다. 간혹 억지스럽게 바꾼 것들도 있긴 하나 예쁘게 바꾼 것들도 많으니 참고하면 좋다. 살벌한 말인 줄도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쓰던 '파이팅'은 '어기여차'라고 하면 된단다. 오, 이거 정말 괜찮지 않은가? '어기여차'라니, 힘이 절로 솟지 않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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