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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통과 스팸 문제 본문
한국의 밀폐용기 회사들 중에는 "우리 제품은 여느 밀폐용기와 달리 외관이 아름다우므로 냉장고에서 꺼내 식탁에 바로 올릴 수 있어 편합니다."라고 광고를 하는 데가 다 있더군요. 저는 이 광고를 보고 처음에는 좀 놀랐습니다. '아니? 아무리 밀폐용기가 예뻐도 그렇지, 반찬통을 식탁 위에 올리는 집이 어디 있나?' 싶었죠. 여러 사람이 젓가락 댄 반찬통을 냉장고에 반복해서 넣었다 꺼냈다 하는 건 미관상으로도, 위생상으로도, 음식 맛에 있어서도 좋을 리가 없잖아요? 식탁 위에서 반찬통이 땀 흥건히 흘리고 있는 것도 보기 안좋고요. 가뜩이나 짠 한국 반찬, 접시에 덜어 먹는 것에 비해 부지불식간 양도 더 많이 먹게 될 게 분명하죠.
그런데...
누리터를 뒤져보니 그런 집이 꽤 많습니다.;; 단단의 본가나 시가에서는 반찬통을 식탁 위에 바로 올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몰랐습니다. 무려 셋이나 되는 단단의 새언니들도 반찬통째로 식탁에 올리는 일은 없거든요. 다쓰베이더가 곰곰 생각하더니 이렇게 분석을 합니다.
"한식은 반찬 가짓수가 많으니 일일이 덜어 옮겨 담는 게 귀찮을 법도 하고, 또, 한국 반찬들 중에는 짠것들이 많으니 냉장과 실온을 왔다갔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들을 하나 보지. 격은 좀 없어 보인다만."
문제는, 어떤 가정에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다른 가정에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냉장고 반찬통을 그대로 식탁 위에 올리는 가정에서 자란 딸내미가 시집을 갔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단순히 양가의 문화 차이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좀 더 복잡한 요소가 작용하는 것 같거든요.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격 없는 집'으로 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이 글을 한번 읽어보세요.
그러니 자녀가 있는 집은 귀찮더라도 훗날 자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반찬통에서 덜어 담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게 만일 아들이 있어 며느리를 보게 되었는데 (시부모 앞에서야 절대 그럴 리가 없겠지만) 저희들끼리 밥 먹을 때 반찬통 그대로 올려 놓고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으음... 우선은 며느리가 무안해하지 않게끔 잘 에둘러 가르쳐주기는 하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속으로는 '엄마한테 제대로 배우질 못 했구나.' 사돈댁을 살짝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백번 양보해서, 보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다 쳐요, 위생상 좋지 않으므로 이 습관은 어쨌거나 버리는 게 맞습니다. 설거지 하기가 정 귀찮으면 서양인들처럼 넉넉한 크기의 디너 플레이트를 써서 반찬들을 먹을 만큼만 보기 좋게 덜어 담아도 되지요. 반찬통째 꺼내 먹고 다시 넣다니, 아니, 어떻게 상온에 한참 나와 있던 음식, 침 묻혀 놓은 음식을 다음 끼에 또 먹을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까.
아이들한테 탄산음료나 스팸 먹이는 집도 저는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스팸 맛있는 거야 저도 잘 알죠. 갓 지은 흰 쌀밥 위에 잘 지진 짭쪼름한 스팸 한 조각. 이거 정말 맛있죠. 그래도 어른들끼리나 몰래 가끔씩 먹으면 몰라도 엄마가 아이들한테 평소 밥 반찬으로 주는 건 좀 그래요. 여기 영국에서는 스팸이 저 2차대전 때 미군 원조로 먹던 비상식량으로나 추억되지, 여염집에서 애들한테 스팸 먹이는 일은 여간해선 보기 힘듭니다. 캠프나 오지 탐험 갈 때라면 몰라도. 스팸을 집어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 것부터가 좀 머쓱한 분위기입니다. 이 글도 한번 읽어보십시오.
오늘 제 글 보고 많은 분들이 못마땅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는 집도 있다는 걸 아시고 특히 딸내미 둔 엄마나 아빠는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남이 흉 안 보더라도 자식이 커서 어릴 때 아무거나 막 멕였다고 부모 흉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불량식품은 부모가 챙겨 먹이지 않아도 친구들하고 밖에 쏘다니며 알아서 다 먹게 돼 있어요. ㅋ
돌아가신 우리 영감님이 정말 꼬장꼬장한 분이셨습니다. 목욕하고 나서 개수구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남기고 나오면 나중에 시집 가서 흉 잡힌다며 득달같이 잔소리 해대시고, 심지어 엄마가 설거지 좀 줄여보려고 칸 나뉜 접시에 반찬 여러 개 나눠 담아도 딸내미 보고 배운다며 잔소리 하셨더랬죠. '참 피곤한 아빠로군.' 생각했었는데, 몇 년 전 신문에서 욕실 머리카락 문제로 외국인 남자친구와 심하게 다투다 살해된 한국인 여학생 기사를 보고 우리 영감님 얼굴 떠올리며 가슴을 다 쓸어내렸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욕조에 검은 머리카락 모여 엉켜 있는 거, 보기 좀 그렇지 않나요? 혼자 있을 때 보면 내 머리카락이라도 섬뜩할 때가 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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