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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영감 생일 본문
졸업 축하 찻상을 차려 준 게 엊그제 같은데 이번엔 생일이라고 합니다. 다쓰베이더 요즘 신나겠습니다. 다쓰베이더 생일은 대개 추석과 겹칠 때가 많아 어영부영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도 올해는 10월에 가서야 추석이 있다고 하죠. 선물 사줄 돈이 없으니 간단하게나마 찻상이라도 차려 줘야지요.
세상에나, 제가 생일 케이크를 다 구웠습니다. 브리티쉬 클래식인 커피 월넛 케이크입니다. 난생 처음 만들어 본 케이크였습니다. 혹시 돈 좀 아끼겠다고 집에서 베이킹 하는 분 계세요? 집에서 케이크와 과자 좀 구워 먹으려고 보니 재료비는 그렇다 쳐도 베이킹 도구 값이 만만찮게 들겠더군요. 언제 또 케이크 구워 먹겠나 싶어 스패츌라를 안 샀더니 크림 바를 때 난감했습니다. 부침개 뒤집개로 발라 줬는데, 크림 바른 모양새를 보니 성격 그대로 나옵니다. ㅋㅋㅋㅋ 하고 많은 영국 케이크 중에 왜 하필 호두 케이크냐? 한국에서 호두를 산더미처럼 보내 주셨거든요.
질 좋은 버터와 밀가루에 국산 호두가 듬뿍 들어가니 확실히 사 먹는 케이크보다는 맛있습니다. 제 입맛에는 한국산 호두가 알은 작아도 고소한 맛도 더 진해 맛있는 것 같습니다. 헝가리산 호두도 작고 고소하고 바삭거리면서 묘한 쌉쌀한 맛이 있어 괜찮았습니다. 미국산 호두는 덩치는 큰데 무르고 싱겁고 달기만 하더라고요.
그런데 레서피를 보고 따라 하자니 회의가 듭니다. 꼭 이렇게 설탕을 많이 넣어야만 케이크가 성립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설탕 양을 반으로 줄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베이킹에 식견 있으신 분들 계시면 좀 알려 주십시오. 절대량이 모자라면 혹시 케이크가 주저앉거나 폭발하기라도 하는 건지요? 단순히 단맛과 식감 때문에라면 다음 번엔 설탕 양을 반으로 줄여 봐야겠습니다.
윗면과 달리 옆구리는 매끈하게 크림을 발라 줘야 할 텐데 적당한 도구도 없거니와 저 같은 초보는 엄두도 안 납니다. 옆은 그냥 헐벗은 채로 놔 두었습니다.
오늘의 야심작 '니모 샌드위치'입니다. 훈제연어 또 나왔어요. 니모가 연어였다는 사실을 아는 분이 많지가 않더군요.ㅋ 통밀 식빵 두 장을 버터 발라 포개 준 후 훈제연어와 오이를 위에 올려 줬습니다. 모양 내느라 손으로 하도 조물락거렸더니 샌드위치가 어째 더 짭짤해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솜씨 좋은 엄마들처럼 여기 영국의 엄마들 중에도 아이들 도시락을 저런 식으로 모양 내서 싸 주는 이들이 있는 모양인데, 누가 당근으로 해 놓은 걸 보고 힌트를 얻었지요. 그런데 당근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아이들이 과연 먹을지는 의문이죠. 어른들이 먹기엔 짭짤한 훈제연어가 훨씬 낫겠네요. 원래 아프터눈 티 테이블에는 오이와 훈제연어로 만든 샌드위치가 나오는 법이니 오늘의 니모 샌드위치는 아프터눈 티를 위한 정통 요소인 셈입니다. (자화자찬)
얼굴 접사.
눈과 버블은 또띠야로, 눈동자와 입술은 오이 껍질로 표현했습니다.
섬세한 결이 살아 있는 니모의 지느러미. ㅋ
몸통의 띠는 필러로 오이를 저며 쓰시면 됩니다.
수초는 우리 집 코리안더 화분에서 뜯어 온 잎들로 표현한 겁니다. 부엌 창가에 향초herb를 키우면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좋긴 하지만 그보다는 장식할 때 좀더 싱싱하고 온전한 모양의 잎으로 쓸 수 있어 좋지요. 코리안더 대신 로켓(루꼴라)을 쓰면 더욱 수초처럼 보일 겁니다.
다 먹고 눈알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꽥) 저것도 마저 먹을까 하다가 재미를 위해 그냥 남겨 두었습니다.
그렇게 달던 케이크도 쌉쌀한 홍차와 함께 하니 그런 대로 즐길 만합니다. 오늘의 홍차는 웨지우드의 '피크닉' 티. 이름과는 달리 점잖고 순한 실론티입니다. 귀한 찻잎 보내 주신 두 분 쭉빵미인竹芳美人 님과 불량소녀 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 다쓰베이더의 조촐한 생일 찻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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