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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2009 성탄절 본문

차나 한 잔

[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2009 성탄절

단 단 2009. 12. 24. 04:51

 

 

 

 

 

 

추석과 설, 연말연시를 모두 챙기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그저 크리스마스 하나에 집중합니다. 영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안 쇱니다. 부활절은 가볍게 기념합니다. 특이한 점은, 성탄절에는 누구든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므로 대중교통도 운행을 전면 중단한다는 것. 기관사나 운전사들도 각자 가족이 있을 테니 이날 다른 사람 때문에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저희처럼 차 없는 사람들은 성탄절에 교회도 못 갑니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어요. 새해 보신각종 타종식 본다고 종로에 몰려든 젊은 연인들 집에 실어다주느라 어느 집 가장들이 새해 첫 새벽에 지하철 몰고 택시 몰고 버스를 몰아야 하는 한국과는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을 앞두고 특별히 식탁보를 깔았습니다. 꼼꼼히 다림질하고 식탁 위에 펼쳤더니 방이 금세 화사해졌어요. 그쵸, 역시 티 테이블에는 식탁보를 깔아야 하죠. 벌써 분위기가 다르잖습니까. 금사 때문에 반짝반짝.

 

 

 

 

 

 

 

 


샌드위치는 간단하게 훈제연어와 오이 두 가지만 놓았는데, 놓고 보니 색상 대비가 괜찮았습니다. 훈제연어를 살 때는 색이 너무 진한 것은 사지 않아야 한다네요. 사람들이 자꾸 선명하고 진한 색을 찾으니 연어 사료에 살을 빨갛게 하는 염료를 넣기도 한답니다. 클래리지 호텔 티룸처럼 연어를 살짝 익혀서 쓸 수도 있겠지만 쫀득하고 부드러운 맛을 살리려면 역시 훈제연어를 사다 그대로 쓰는 것이 좋죠. 여기서 잠깐 단단식 훈제연어 핑거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소개하자면요,

 

식빵은 구운 지 얼마 안 된 촉촉한 것, 최대한 얇게 썬 것으로 사서,

식빵 두 쪽 중 한쪽엔 호스래디쉬horseradish 소스를,

다른 쪽엔 실온에 두어 부드럽게 만든 버터를 얇게 펴 발라줍니다.

(호스래디쉬 소스는 호스래디쉬와 마요네즈를 동량으로 섞어 만들면 됩니다.)

그 후 두 식빵 사이에 훈제연어를 얌전히 깔아주면 끝.

 

너무 쉬워 레서피라 할 것도 없어요. 호스래디쉬를 살 때는 호스래디쉬 함량이 높은 것으로 사시는 게 좋습니다. 함량이 높을수록 값이 비싸지는데, 알싸한 맛이 더 진하고 잡맛 없이 깔끔해 한층 풍미가 좋아요.



오이 핑거샌드위치
오이를 필러로 저며 소금과 식초를 살짝 뿌려 물기를 뺍니다.
오래 두어 물을 너무 많이 빼버리면 아삭한 맛이 떨어지니 적당히.
식빵 양쪽에 버터를 발라 사이에 오이를 얌전히 깔아주면 끝.
이것도 너무 쉬워 레서피라 하기도 민망하네요.


문제는, 만든 다음 촉촉하게 보관을 잘 해놓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키친 타월에 물을 좀 적셔 덮어주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키친 타월에 물이 흥건하면 닿는 곳의 빵이 죽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고요.

 

팁 하나 더.
칼로 썰었을 때 가장자리가 너덜너덜 지저분하다면 가위를 써서 예쁘게 다듬어주시면 됩니다.

 

 

 

 

 

 

 

 


쌉쌀한 호스래디쉬에 크리미한 버터, 연어의 훈향, 그리고 식빵의 촉촉한 식감이 어우러져 단순해 보이지만 맛은 기가 막힙니다. 삼각형보다는 길쭉하게 썬 것이 먹기에 더 편합니다. 한입 베물어보니 제 입 너비와 샌드위치 너비가 딱 맞아떨어져 나름 인체공학적입니다. 샌드위치 자를 때 이 점 염두에 두세요.


사진이 노랗고 어둡죠? 음식 사진 찍을 때는 화이트 발란스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가끔은 찍을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희 집 조명 아래에서 본 색상 그대로를 담아보았습니다. 영국의 가정집들은 형광등을 쓰지 않습니다. 에너지 효율은 다소 떨어져도 따뜻한 노란 색 전구를 고집하는 이유, 영국 와 살아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왜 커피 대신 수시로 홍차를 마시는지, 왜 홍차에 설탕과 우유를 넣는지도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이 모두가 부슬부슬 비 오고 쌀쌀한 이곳의 날씨 탓인 거죠. 꼼지락거리면서 조잡하게 장식한 요리도 필요 없어요. 음식은 그저 '하티'하고 '컴포트'하기만 하면 됩니다.

 

 

 

 

 

 

 

 

 

클로티드 크림과 라스베리 잼.
이런 윤활제들 없이는 스콘 못 먹죠.

 

안개 낀 성탄절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보고 "안개"가 끼었다는 대목이 생각나 '엇, 이거 혹시 영국 노래 아니냐?' 싶어 찾아보았더니 대공황 시절 미국의 한 백화점에서 어린이용 마케팅 수단으로 만들어낸 시 형식의 동화였답니다. 발표 즉시 대히트. 일설에 의하면, 이야기를 만들어낸 ☞ 백화점 직원 자신이 어린 시절 동무들로부터 이런 따돌림 당했던 아픔이 있었다네요. 고용 산타도 미국의 백화점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미국인들은 정말 장사를 잘하는 것 같아요.

 

 

 

 

 

 

 

 


이런 섬세한 단것들은 손수 만들 실력이 아직 안 돼 수퍼마켓에서 사 왔습니다. 역시 영국이네요. 동네 수퍼마켓에서 티파티를 위한 이런 단것들을 아예 모둠으로 다 팔아요.

 

 

 

 

 

 

 

 


이때다 하고 찻주전자 자랑 좀 해봅니다. 일곱 개 중 무려 여섯 개가 불량소녀 님으로부터 온 선물로, 이 블로그는 이렇게 고마운 분들로부터 받은 선물들로만 꾸려가는 주인장의 빈대 근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곤 합니다. 선물을 받아야만 그제서야 게시물을 작성합니다. (선물 달라는 소리.) 작은 것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아야 하는 것들인데 집에 트리가 없으니 식탁 위에 놓아봅니다. 알록달록, 사진발 최고죠?

 

오늘의 홍차는 저기 저 찻주전자 뒤에 서 있는 윌리엄슨의 크리스마스 블렌드. 아, 속았어요. 크리스마스 블렌드라 하길래 향신료와 오렌지가 든 줄로 알고 샀더니 평범한 케냐 홍차 블렌드예요. 크리스마스 '블렌드'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틴'이라 해야 소비자가 헷갈려하지 않지요.


성탄절이나 연말에 혹시 집에서 티파티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말씀 드리자면,


 반드시 을 사서 테이블을 장식하셔야 한다는 점. 조화말고 생화로.
밝고 화사한 색의 식탁보
티 라이트 같은 양초도 필수라는 점.
티파티에는 보통 앞접시용 매트placemat를 깔지 않으며
러너 같은 것도 테이블을 복잡하게 보이게 하므로 생략한다는 것.
냅킨은 디너용 냅킨보다는 크기가 좀 작으면서 수를 놓은 티 냅킨을 쓰나 손님들이 부담스러워 하므로 그냥 화려한 색의 성탄용 종이 냅킨을 비치.
티 플레이트는 디너 플레이트보다 지름이 작고 찻잔 받침보다는 좀 큰 것을 쓰는데, 대개 직경 16~18cm 정도의 것을 씁니다.

 

중요한 것은, 손님들로부터 칭찬 듣고 싶어서 죽을 고생 하면서 손수 다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특히, 단것들은 손도 많이 가고 종류도 최소한 서너 개는 필요하므로 저처럼 샌드위치와 스콘 정도만 만들고 나머지는 사다 쓰는 것도 좋아요. 생기와 기운이 넘쳐 신나게 수다 떠는 파티 호스트가 피곤에 절은 우직한 호스트보다 손님들에게는 더 낫습니다. 손님이 간 뒤 남은 설거지까지 해야 하므로 에너지는 최대한 아껴두는 것이 좋아요. 티파티는 즐거운 마음으로 치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상 시답잖은 조언 끝.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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