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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만성기침 뚝

단 단 2010. 11. 14. 06:52

 

 

 

 

 

녹차나 청차, 홍차를 꾸준히 마셔도 별 덕을 보지 못 하고 있던 터에 백차를 마시고 나서는 놀라운 일이. 약 한 달쯤 전 <포트넘 앤 메이슨>의 유칼립투스 잎 넣은 백모단White Peony을 큼직한 사진과 함께 소개한 적이 있다. 기억을 잘 더듬어 보시던가, 아니면 얼른 가서 그 ☞ 을 먼저 읽고 오시라. 영국에서 내 돈 주고 사본 차 중에서는 가장 비싼 차였다. 100g에 무려 17파운드가 넘었으니.

 

여기서 잠깐 백차에 대한 간략 설명을 해보기로 하자.
널리 알려진 백차에는 <백호은침><백모단><수미> 등이 있다. <백호은침>은 잎이 채 펴지지도 않은 심으로만, <백모단>은 심 하나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난 이파리 두 장, 즉, 일심이엽 혹은 일아이엽 혹은 일창이기로(다 같은 말), <수미>는 그 밑의 성장한 큰 잎들을 가지고 만든다. 셋 다 같은 '대백종' 차나무에서 나오는 것으로, 대백종이란 잎이 크고 흰 솜털이 많은 차나무의 한 종류를 일컫는다. 사진 보면 아시겠지만 심이라 해도 중국 차치고는 그 크기가 매우 크고 실하다.

 

단단은 본디 '음식은 약'이라는 개념, 당연한 소리이면서도 음식에 대한 참 멋대가리 없는 태도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무슨 음식이 우리 몸 어디어디에 좋다더라' 하면서 정력제와 보신음식 찾아 삼만리 여행길도 마다않는 우리 한국의 중장년 징그러운 아저씨들 말씀에는 하품이나 쩌억 갈겨드리기 일쑤였고 말이다. 짠 음식,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 해로운 음식을 입에 마구마구 쑤셔넣지 않는 한, 어떤 음식이든 소식하기만 하면 우리 몸에 이롭게 작용할 거라는 기본 생각이 있고, 음식이란 일차적으로는 먹는 즐거움을 위해 존재해야 된다는 게 단단의 지론이었다. 지금도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음식 먹으며 매사에 정력, 원기, 보신, 활기 운운하는 아저씨들, TV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음식이나 식재료 소개하면서 "동의보감에 따르면" 따위 운운하는 식품에 관해 한권위 한다는 전문가들을 볼 때마다 후진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떤 아저씨가 자기 블로그에 "중국 백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10년간 괴롭혀 왔던 만성기침이 사라졌다."는 글을 올린 걸 보았을 때도 '한국 아저씨들 또 시작이군.' 코웃음쳤었는데, 이 포트넘의 백모단을 마신 지 3일이 지나자 5년간 하루도 안 빼놓고 단단을 괴롭혀왔던 기침이 거짓말처럼 뚝.


어라?


엥이, 3일 만에 효과를 본다니, 지나치게 이르지 않느냐. 요 며칠 습도가 높았으니 순 우연의 일치다. 고작 이깟 차 몇 잔 마신 것 가지고 수년간 끈질기게 괴롭혀왔던 만성기침이 한방에 떨어지다니 말이 되느냐. 좀더 두고 살펴보자꾸나.


그렇게 의심에 의심을 거듭. 그러면서 꾸준히 한 달을 음용했다. 하루 한 번 유리 찻주전자에 찻잎을 소량 넣고 80ml 잔으로 네 탕 우려 마셨더니(즉, 하루 320ml) 차 한 통이 한 달만에 다 떨어지고 만성기침도 같이 뚝. 마시는 한달 내내 기침을 한 번도 안 했다. 이제 목이 가렵거나 따갑지가 않다. 매일 밤 자다가도 발작적으로 기침이 나와 벌떡벌떡 일어나게 되고 이 때문에 삶의 질이 말도 못 하게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아아,
털썩
이깟 차 좀 마셨다고 만성병이 다 떨어지다니, 옛날의 그 기세등등하고 팔팔했던 독한 단단은 어데 가고 그렇게 비웃어 마지않던 아저씨들과 똑같은 소리나 하고 앉았느냐. 늙었어 늙었어. 단단도 이제 늙은 게야. 흑흑...


가만. 뚝.
울긴 왜 울어?

만성기침이 멎었으면 좋아 길길이 날뛰어야지.

 

 


*  *  *

 

 


그러니 소식 없으신 야속한 불량소녀 님, 다른 차는 몰라도 보내드린 백모단 만은 절대 남에게 분양하지 말고 맛 없어도 불량소년 님과 두 분이 아껴 드셔야 합니다. 두 분도 이제 마흔이 넘으셨잖습니까. 백차는 여름에 마셔야 한다 어쩐다 하는데 그런 건 다 헛소리고 그냥 아무 때나 드시면 됩니다. 백차의 소염 항균 작용이 이 정도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효과를 보려면 티백보다는 제대로 된 실한 잎이 더 좋다고 하니 그 차 남 주지 말고 꼭 두 분이 드십시오. 생색은... ㅋㅋ

 

아참, 부재료로 같이 들어있는 유칼립투스도 백차와 같은 효능을 낸다고 하니, 이게 사실 백차 덕인지 유칼립투스 덕인지는 저도 헷갈립니다.;;


덧붙여, 역류성 식도염이나 만성기침 때문에 고생하시는 한국의 동포 여러분들께도 백모단이나 수미를 추천해드립니다. 백호은침은 값은 더 비싸고 고급이긴 하나 효능은 오히려 이 둘보다 좀 못하다고 합니다. 똑같이 중국에서 차를 수입해다 팔아도 한국에선 차 값이 말도 안 되게 비싸더군요. 한국도 차 생산국이라 우리 차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 차에 비싼 관세를 매겨 그렇다 변명들은 합니다만, 이런저런 사정을 다 고려한다 쳐도 장사하시는 분들 역시 값을 지나치게 높게 매기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차라리 영국이나 미국 싸이트에서 필요할 때마다 세금 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지혜롭게 주문해 드십시오. 물가 비싸다는 이 영국에서도 질 좋고 믿을 만한 중국 차들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이상합니다. 현재 외국에 나와 살고 계신 동포 여러분, 한국은 국민소득에 비해 차뿐 아니라 식품 값이 외산이건 국산이건 뭐든 기형적으로 비싸다는 생각 안 하십니까? 비싸야 맛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 바빠서 사진은 새로 못 찍고 옛날 사진 재활용합니다. 시간 날 때 새로 찍어 교체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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