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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온갖 다질링

단 단 2010. 12. 3. 19:26

 

 

 

 

 

지난 겨울, 18년 만에 처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여간해선 큰 소리를 잘 내지 않는 점잖은 영국인들이 즐거운 비명을 잠깐 지른 적이 있다. 어제 또 눈이 그렇게 내렸다. 수십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함박눈 때문에 고가의 제설 장비를 갖춘다는 건 낭비니 잠깐 불편하고 말자는 결론을 내렸던 지자체들이 이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눈이 앞으로도 이렇게 잦아질 전망이라면 장비 구입을 고려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눈만 내렸다 하면 집집마다 넉가래(널빤지로 만든 눈삽) 하나씩 들고 나와 삽시간에 슥삭슥삭 말끔히 내 집 앞을 치우는 한국과 달리 영국인들은 아무리 내 집 앞이지만 개인이 국가에 그렇게 많은 세금을 내고도 길거리의 눈을 치워야 한다는 건 아예 상상도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추측컨대, 이들은 아마도 넉가래라는 것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눈이 귀한 나라이다 보니 이 정도 눈만 내려도 모든 업무가 정지. 학교도 직장도 상점도 전부 폐쇄. 눈길을 헤치고 예약해뒀던 미장원에 머리 자르러 갔다 허탕치고 돌아온 우리 집 다쓰베이더에게 데런 쯧쯧, 차나 한 잔 뜨겁게 우려주었다. 영국인들, 아주 웃기는구나.

 

어쨌거나 이 나이에도 눈 때문에 학교 안 가게 되어 신난 단단. 오늘 '설상가상'으로 뜻밖의 소포까지 다 받았으니.

 

 

 

 

 

 

 

 


이것이 무엇인고?
블로그 친구 경이로움 님께서 애써 보내주신 다질링 종합 선물 세트가 되시것다. 온갖 다원의 첫물차 두물차 우기차 가을차가 골고루 골고루 고루고루 바리바리. 꼬르륵.

 

다질링 마니아라고 깝죽대면서 지금까지 다질링이라고는 너댓 종류 마셔본 게 전부인데, 이렇게 한꺼번에 여러 다원의 차를 마셔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이지 인생의 몇 안 되는 행운 중 하나라는 생각 안 드는가. 그런데 보내주신 분은 도대체 어떤 비상한 능력이 있으시길래 이 많은 다원의 다질링들을 다 소장하고 계신단 말인가. 티백도 아닌 단일 다원의 제대로 된 잎들을.

 

 

 

 

 

 

 

 


다질링말고도 이런저런 차들이 함께 들어있었다. 점입가경이로세. 덩실덩실~

 

 

 

 

 

 

 

 


일단, 보내주신 타타리 메밀차를 스웨터 무늬 크리스마스 머그에 한가득 우려 보자. 역시 타타리 메밀이 최고다. 머그 앞에 서 있는 고운 빛깔의 벚꽃차도 좀 보게. 벚꽃차는 <맛의 달인>에서 읽기만 했지 보기는 처음 본다. 신기허다. 내년 봄, 이곳 영국에도 벚꽃이 필 무렵 필시 감동하며 마시게 되리라.

 

 

 

 

 

 

 

 

 

미술 전공 하셨다더니 편지지도 심상찮다. 정성 어린 손글씨의 편지를 보니 신나다가 한숨이 절로 난다. 다질링을 이렇게 다원별로 시즌별로 다 갖고 계신 분이니 홍차 고수임에 틀림없는데 웬만한 차는 다 드셔보았을 테니 차로 보답하기도 쉽지 않고, 미술 전공 하셨다 하니 미천한 취향의 단단이 다구를 함부로 골라 보내드릴 수도 없고, 복수할 방법이 마땅찮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많은 소분 봉투에 불량소녀 님처럼 일일이 손글씨를 쓰셨다는 것. 큰일났고나. 천하의 악필 단단은 이런 정성을 보이는 것도 불가능하니. 덩실덩실 춤추며 시작했던 글이 태산 같은 걱정으로 끝맺게 생겼네그려.

 

 

 

 

 

 

 

 

 <Darjeeling Tea Exclusive> Tumsong Estate SFTGFOP1 Autumnal Organic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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