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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2010 성탄절 본문

차나 한 잔

[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2010 성탄절

단 단 2010. 12. 24. 03:07

 

 

 

 

 

솜씨 없는 단단이 용감무쌍하게도 그간 여러 차례 손님을 치렀습니다. 손님 초대해 놓고 주인이 자기가 만든 변변찮은 음식 사진이나 찍고 있기가 민망해 기록을 남겨 두지는 않았지만요. 손님들 가신 다음 남은 재료들 가지고 찻상을 재현해 봅니다.

 

샌드위치 대신 전채로 냈던 훈제연어 트리오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이 한 사람당 한 접시씩 냈었습니다. 가만히 관찰해 보니, 고급 식당에서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기술과 질감을 달리해 구성하는 '트리오'가 아주 보편적이더군요. 헤스톤 블루멘쏠의 가정식 레서피를 따라해 볼까 하다가, 재료 살 돈이 없어 집어치고 돈 안 드는 제 식으로 간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위스키 담았던 오크 배럴을 땔감으로 써서 연기 씌운 훈제연어입니다. 영국에 있을 때나 실컷 맛볼 수 있으니 무슨 날만 되면 기를 쓰고 사게 됩니다.
☞ 영국 훈제연어의 세계

 

 

 

 

 

 

 

 


크리스마스 홍차와 함께 즐겼던 단것들입니다. 체리가 마치 유리 공예품처럼 반짝입니다. 한겨울에 체리라니, 엉뚱하죠. 지구촌 세상이라 이제는 제철이고 뭐고 없어요. 영국은 농산물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라 이런 것들을 사철 볼 수 있습니다. 북반구가 제철이 아닐 땐 지구 반대편 나라들이 제철이니 나름 제철 재료들을 먹고 있는 겁니다. '비닐 하우스'나 '탄소 발자국'이나 결국 거기서 거기. 생과일을 올린 이유는, 아프터눈 티 테이블에는 생과일을 올리면 안 된다고 글을 쓰기 위해서입니다. 아래에서 자세히 이야기 할게요.

 

 

 

 

 

 

 

 


형식상 스콘도 빼놓지 않고 내 보았습니다. 손님 치를 때는 절대 단단표 못난이 스콘을 내지 않습니다. 사실 수퍼마켓들이 맛있는 스콘들을 잘 내고 있어 직접 구워 먹는 게 돈도 더 들고 힘들어요. 게다가, 저는 플레인 스콘 맛내기가 베이킹 중 가장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스콘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도 저와 같은 소릴 하는 미슐랑 스타 셰프들이 제법 있습니다. 스콘 우습게 보면 안 돼요.

 

 

 

 

 

 

 

 

 

영국에 있을 때나 쉽게 구해 맛볼 수 있는 클로티드 크림이니 틈만 나면 감사한 마음으로 퍼먹습니다.

 

 

 

 

 

 

 

 

 

다소 묵직한 스콘을 냈으니 날아갈 듯 파삭거리는 저 프렌치들의 팔미에Palmier도 같이 내봅니다. 프렌치들은 어찌 그리 경박 플러피fluffy한 식감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크화썽, 슈, 마카롱, 수플레...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이지요. 프랑스에서는 심지어 개도 플러피합니다.

 

 

 

 

 

 

 

 

 

이제는 부드러운 무스를 내 봅니다. 망고 무스입니다. 만들기는 간단해도 굳히느라 시간이 좀 걸리니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합니다.

 

 

 

 

 

 

 

 

 

쵸콜렛 쓴 제과도 꼭 들어가야 합니다만, 다소 묵직해 보입니다.

 

 

 

 

 

 

 

 

 

찻상에 생과일을 그냥 내는 건 참 손쉽고 성의 없는 거죠. 영국에서는 촌동네어설픈 티룸에서나 이런 일이 간혹 발생할까, 제대로 된 호텔 티룸이나 레스토랑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저는 생과일 잔뜩 얹고 글레이즈 떡칠한 한국식 생크림 과일 케이크는 절대 높이 쳐주지 않습니다. 보기에는 화려하고 예뻐 보여도 공예적 관점에서 보면 빵점이죠. 먹기에도 불편하고요. 그럴 거면 그냥 신선한 과일 한 접시를 따로 내면 되지 뭐 하러 어설프게 미리 껍질 벗기고 잘라 얹은 산화된 과일을 먹습니까?

 

케이크도 일종의 공예품이기 때문에 솜씨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공들여 만든 것들로 장식을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좀 촌스럽긴 해도 우리 어릴 적 동네 빵집의 설탕이나 버터크림 장미꽃 케이크가 요즘 유행하는 케이크 전문점들의 화려해 보이는 손쉬운 과일 케이크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과일을 쓰더라도 생과일 대신 손수 정성껏 맛 내고 조려 가공한 과일을 쓰면 환영이고요. 케이크 데코레이션의 세계도 제과제빵 못지 않게 심오한 세계라고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국인들이 크리스마스에 먹는다는 크리스마스 푸딩을 냈습니다. 크림을 좋아해 아주 그냥 들이 부었습니다. 원래는 위에 올린 홀리가 앙증맞아 보일 정도로 큼지막한 푸딩을 내서 일일이 잘라 먹는데, 저는 손님들이 드시기 좋도록 1인용 작은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게 아니고 수퍼마켓에서 사 온 겁니다. 오래 숙성시킨 것이 맛이 좋습니다. 이번에 낸 건 12개월 숙성 푸딩입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일년 뒤를 생각해 미리 만들어 두었다는 소리네요. 고급 브랜디인 레미 마르탱을 써서 향을 냈습니다. 좋은 브랜디로 맛낸 버터나 크림을 같이 내는 게 일반적이며, 홀리holly로 장식하는 것은 오랜 전통입니다. 말린 과일과 향신료 듬뿍 넣은 이런 류의 푸딩을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기대 이상으로 아주 맛있었습니다. 역시 돈 값을 합니다.

 

☞ 크리스마스 푸딩
☞ 크리스마스 푸딩에 곁들이는 브랜디 버터, 브랜디 크림, 브랜디 소스
☞ 영국의 크리스마스 식물

 

 

 

 

 

 

 

 

 

날이 날이니 만큼 이 날은 <포트넘 앤 메이슨>의 크리스마스 홍차로 냈습니다. 향차를 즐겨 드시는 분들이 거의 없었는데도 연하게 우려 드렸더니 다들 좋아하셨습니다. 그동안 모은 크리스마스 머그들을 주욱 늘어놓고 각자 취향 대로 고르게 했는데, 이것 참 재미있더라고요. 비싼 머그가 반드시 가장 인기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인장인 단단과 다쓰베이더가 각자 아끼는 것들을 손님들이 꼭 똑같이 좋아해 주시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타인의 취향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불량소녀 님이 이번 파티를 위해 보내 주신 저 크고 잘생긴 웨지우드 티포트(커피 포트) 좀 보세요. 우윳빛, 우아한 실루엣, 단순한 듯 정교한 성형, 정말 근사하지요.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불량소녀 님의 탁월한 안목에 늘 감탄합니다. 의외로 머그들하고도 잘 어울렸는데, 우아한 본 차이나 찻잔들하고는 훨씬 잘 어울리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파티도 기대가 됩니다.

 


☞ 영국 크리스마스 음식 총정리
☞ 영국음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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