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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네토네 - 이태리 사람들의 (럭셔리) 크리스마스 식빵 본문
당분간 빵·과자 이야기를 계속 올릴 예정입니다. 크리스마스 식품 땡처리 하는 걸 잔뜩 사다 쟁였거든요. ㅋ 제가 이용하는 수퍼마켓은 영국에서도 중상류층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고급 수퍼마켓입니다. 빵과자들도 하나 같이 다 맛난 것들만 갖다 놓습니다. 빠듯한 유학 생활에 웬 사치냐 하실 분 계실 텐데요, 차도 없고 교통비도 비싸 걸어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수퍼마켓을 이용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럭셔리 식품들을 즐기게 된 겁니다. 제값 다 주고 살 형편은 안 돼 반드시 할인 시간에만 갑니다. 명절 식품들은 이렇게 명절 지난 다음 가면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단단은 먹고 마시는 걸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믿고 실천하는 소위 '푸디 패밀리' 출신이기 때문에 식품과 식재료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비싼 음식을 먹는다는 뜻이 아님.) 단단의 막내 오라버니는 식품공학과 출신이기도 합니다. 온갖 기괴한 음식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먹기로 유명합니다. 몬도카네가 따로 없어요. 까타리노 둘째 오라버니는 버거킹 햄버거 따위를 사 와도 전자렌지에 그냥 윙- 돌려 먹지 않고 반드시 빵 따로 패티 따로 번철에 지져 제대로 풍미를 회복시킨 뒤 먹습니다. 큰 오라버니는 식은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가족이 다같이 모여 식사를 하면 먹고 마시는 데 기본 세 시간은 걸립니다.
빵 하나 소개하는 데 웬 잡설이 이리 길어요?
오늘은 이태리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때 먹는다는 파네토네를 소개하려고요. 남들 이미 다 알고 있는 빵을 이제야 먹고 호들갑 떱니다. 제목에 '(럭셔리)'라고 괄호를 친 이유는, 파네토네가 원래 이런 고급스러운 맛이 나는 건지, 단단이 고급 수퍼마켓에서 비싼 제품을 샀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맛이 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포장에 '클래식 레서피' 대로 만들었다고 써 놓았으니 원래가 좀 고급스러운 건가 봅니다.
겉은 약간 마른 듯 뻣뻣하나 안은 촉촉하고 폭신합니다. 다쓰 부처는 한입 먹고 나서 그 깊은 맛 때문에 브랜디나 쵸콜렛향 리큐어가 든 줄로 잠시 착각했었습니다. 베이킹 파우더 쓴 케이크만 먹다가 이스트 넣고 제대로 발효시킨 빵을 먹었기 때문이지요. 맛과 향이 아주 깊습니다. 원래는 불리지 않은 건과일 같은 게 들어가는데, 크리스마스에 이런 걸 먹는 데는 이제 진저리가 나 쵸콜렛 박힌 것으로 사 보았습니다. 꼭 이런 모양으로 잘라 먹어야 제맛이라고 하네요.
파네토네는 패션 도시 밀라노 출신의 멋쟁이 빵입니다. 20세기 들어와 밀라노의 빵쟁이들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지만 기원을 멀게는 저 로마 제국으로 보는 견해들도 있습니다. 이 파네토네에 얽힌 전설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로맨틱한 버전으로 ☞ 링크를 걸어 봅니다. 요즘은 백과사전들도 하도 헛소리들을 잘 해 과연 믿을 만한 건지는 자신이 없지만요. 링크를 건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토니'라는 이름의 사내가 만들었다 하고, <위키피디아>에서는 어느 귀족이 고귀한 자신의 신분도 잊고 '토니'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빵쟁이의 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니, 둘 중 하나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죠. 서양 빵과자에 관한 한은 그간의 전력을 보건대 한국의 백과사전들이 좀 덜 믿음직한 구석이 있긴 합니다.
포장에 쓰여 있는 성분표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홈베이킹 하시는 분들은 각자의 레서피와 한번 비교해 보세요. 사실 재료보다는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발효하는 기술이 맛을 내는 데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깊은 맛이 바로 여기서 나오나 봅니다.
<Borsari> Classic Panetonne 성분:
Wheat flour, plain chocolate chips(13%) [sugar, cocoa mass, cocoa butter, emulsifier: soya lethithin, flavouring: vanillin, plain chocolate contains cocoa solids 45% minimum] pasteurised whole egg, butter, sugar, whole milk, pasteurised egg yolk, yeast, emulsifiers: mono and diglycerides of fatty acids, wheat glucose syrup, flavourings: cocoa, vanilla, cocoa butter, salt. 끝.
차 상자에서 곁들일 만한 차를 찾아 뒤적거리다가 불량소녀 님이 보내 주신 <하니 앤 선스Harney & Sons>의 '플로렌스Florence'를 골라 우려 봅니다.
이럴수가.
며칠 전에 먹었던 이태리 과자 <바치 디 다마> 맛과 똑같잖습니까. 털썩
그 때 같이 마셨어야 하는 건데 말입니다.
봉투를 열었을 때와 막 우리고 났을 때는 쵸콜렛향이 지배적이었는데 사진 찍느라 식혔더니 헤이즐넛향만 남았네요. 헤이즐넛이 주원료인 <바치 디 다마> 맛과 정말 똑같습니다. 티백이 아니라 산차loose leaf였는데도 찻물은 티백 마냥 까슬까슬 약간 텁텁하면서 홍차 맛은 아주 연하게 납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구수한 맛이 많이 나는데다 떫거나 쓰지 않고 연하니 홍차에 막 입문하신 분들께도 좋겠습니다. 색다르고 아주 맛있었습니다. 제가 원래 헤이즐넛향 커피는 좀 우습게 여기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홍차로는 썩 괜찮게 느껴지네요. 이태리 과자들 때문에라도 한 통 사서 집에 두어야 할까 봐요. 이 글을 보시는 홍차인들 중 혹시 이런 헤이즐넛향이 나는 텁텁하고 구수한 홍차를 또 알고 계신 분들은 이름 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빵을 가르고 난 뒤 예쁘게 모아 두질 않았더니 파네토네 조각들이 그야말로 널브러졌습니다.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우리 인류는 정말 이태리 사람들한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걸 먹기 전 식사로는 파스타를 먹었거든요. 게다가, 전세계 어디를 가도 피짜 (배달) 집은 꼭 있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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