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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튼 로릿슨, 모르텐 로리젠 <오 크나큰 신비여> (Morten Lauridsen, O magnum mysterium) (1994) 본문

음악

모튼 로릿슨, 모르텐 로리젠 <오 크나큰 신비여> (Morten Lauridsen, O magnum mysterium) (1994)

단 단 2010. 12. 26. 04:45

 

 

 

 

크리스마스가 되면 캐임브리지 킹스 컬리지 채플에서 매년 캐롤 서비스를 하고 BBC가 이를 전국에 중계합니다. 영국은 기독교가 국교이기 때문에 수많은 무슬림과 힌두, 시크들이 있어도 눈치 보지 않고 꿋꿋하게 국가의 대소사 때 이렇게 기념 예배와 합창을 중계하곤 합니다. 여왕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과 주요 정치인들이 참석해 앞줄에 앉기도 하고요. 이런 모습들을 TV에서 그대로 다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 땅을 떠난 저 신앙심 엄청 깊은 사람들이 세운 미국에서는 현재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죠. 크리스마스에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인사하는 것도 금기라면서요. 크리스마스에 왜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자기의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억눌려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오히려 "9월 11일에 코란을 태우겠다"는, 일그러진 형태의 표출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부처님 오신 날로 부르며 기념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어쨌든, 차가 없어 성탄절에 교회도 못 가는 단단과 다쓰베이더는 TV에서 내보내 주는 교회들의 합창이나 보면서 맛난 음식을 해먹습니다. 아래에 걸어 놓은 음악은 작년 캐롤 서비스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곡입니다.

 

소년 성가대인 코리스터chorister 제도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고 가장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영국이라는 말씀을 드린 적 있습니다. 이 남자 아이들의 목소리는 성인 여성들의 목소리보다는 좀 덜 펑퍼짐하고 야무진 소리가 납니다. "여자들 없이 남자들끼리만 노래를 하다니, 구시대적이다!" 괘씸하게 생각하실 여성들도 있을 텐데요, 그 점은 좀 섭섭하긴 해도, 대신 손자부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의 남자들이 한 합창단 안에서 화음을 이루어 내고 있는 걸 보면 그것도 참 흐뭇한 일이긴 합니다. 이 합창단은 대학 합창단이라 아저씨, 할아버지들은 없지만요.

 

서양의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기악음악이 가사에 의존하는 성악음악보다 더 순수하고 우월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특히 E. T. A 호프만 같은 독일쪽 문인들과 미학자들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저는 음악에서 '깊이'나 '우월' 따위를 논하는 이런 류의 담론들은 흥미로울 수는 있어도 경계하는 편입니다. 작곡가도 아닌 사람이 누가 감히 작곡가한테 이 음악이 우월하다, 저 음악이 우월하다, 가르치려 듭니까?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견해를 좀 옮겨봐야겠습니다. 말러는 오케스트라곡뿐 아니라 가곡도 많이 썼죠. 가사를 온전히 표현해 내느라 작곡가가 애초에 가졌던 음악적 판타지를 희생시키거나 덜 순수하게 만든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말러는 오히려 가사도 작곡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 이 선택을 통해 자기가 표현하고자 했던 음악적 견해들을 보다 더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교회 안에서 수많은 아마추어 음악 애호가들과 함께 열심히 연습해서 만들어 내는 합창 공연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엑스터시'의 순간들을 만들어 냅니다. 말하자면, 저 '미적 관조를 통한 구원'이 교회 안에서의 개인적 예술 체험들을 통해서도 일어난다는 거죠. 다같이 합창하는 즐거움. 이런 건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여간, 정성껏 차 우려 마시는 즐거움과 (잘 하든 못 하든) 연주에 참여함으로써 느끼는 즐거움, 이 두 가지 즐거움만 알아도 인생의 반은 이미 성공했다고 봅니다. 훗날 한국에 돌아갔을 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음의 곡이나 다같이 부를 수 있었으면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습니다. 기왕이면 다쓰베이더의 지휘 아래요. (우리가 무슨 스톰 트루퍼들이냐, 흰 가운까정 입고.)

 

저는 코리스터 꼬마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습니다. 저렇게 병아리들처럼 입 뻥긋뻥긋 예쁘게 노래하다가도 종 '땡' 치면 밖에 나가 축구하고 스케이트보드 타고 여느 머슴아들처럼 꽥꽥거리며 뛰어 놉니다. 즐거운 감상 되시길 빕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더욱 힘주어 인사해봅니다. 해피 크리스마스!

 

 

 

 

 

 

 

 

 

O magnum mysterium,

O great mystery,

오 크나큰 신비여,

 

et admirabile sacramentum,

and wonderful sacrament,

경이로운 성사여,

 

ut animalia viderent Dominum natum,

that animals should see the newborn Lord,

짐승들도 태어난 주님을 보네,

 

jacentem in praesepio!

lying in a manger!

구유에 누워 계신 이를!

 

Beata Virgo, cujus viscera 

Blessed is the virgin whose womb

meruerunt portare 

was worthy to bear

Dominum Christum.

the Lord, Jesus Christ.

복된 동정녀, 그리스도 주님을 태중에 모실 만한 분이시오니

 

Alleluia!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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