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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스뎅차 - 옛 사람들이 옳았어

단 단 2011. 1. 10. 22:44

 

 

 

 

 

오늘은 '스뎅차'를 우려 보겠습니다. 스뎅차가 뭐요? 찻잎 안 넣고 스테인레스 스틸 차 거름망만 우려 보겠다 이 말씀입니다. 아니,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하오? 답은 조금 있다 드리기로 하고 일단 우려 봅니다. 찻잔 예열까지 꼼꼼히 다 하고 펄펄 끓는 물 부어 여느 때와 같이 3분을 우려 봅니다.

 

 

 

 

 

 

 

 


수색이 제법 나왔지요? 칫솔로 아무리 꼼꼼하게 문질러도 차때가 어딘가에는 달라붙어 있었다는 소리죠. 그런데, 이 차때에 의한 차 맛의 저하를 논하자는게 오늘의 목표는 아니고요, 오늘은 그야말로 스뎅 맛을 느껴 보고자 하는 겁니다. 잘 못 느끼고 있다가 최근 홍차를 연하게 우려 마시니 스뎅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테인레스 스틸 거름망이 들어있는 이런 류의 찻주전자는 바쁠 때 참 편리하고 고맙지요. 여린 맛의 백차는 유리 주전자에 거름망 없이 우려 마시기 버릇해 몰랐는데, 고온으로 우리는 홍차를 마실 때 주전자 안의 뜨겁게 달궈진 이런 스뎅 거름망들이 제법 제 맛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 깨달았습니다.

 

귀찮더라도 옛날 방식대로 우리는 게 옳았습니다. 찻잎이 넓고 둥근 찻주전자 속에서 자유롭게 춤추면서 맛을 내게끔 격려해 주고 찻잔에 따를 때만 스테인레스나 은제 거름망에 잠깐 닿도록 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다 아는 건데도 참 실천하기 어렵죠. 어려워서라기보다는, 귀찮아서죠. 산차loose leaf tea를 다시백이나 T-sac 같은 곳에 넣어 우리는 건 더 할 나위 없이 후진 방법입니다. 기껏 '느슨한 잎' 사 놓고서는 왜 꽁꽁 가둡니까. T-sac 맛, 제법 강합니다. 표백하지 않은 면 주머니도 맛 강합니다. 다 맛 봤어요. ^^;

 

 

 

 

 

 

 

 

 

티끌 적은 실한 잎을 쓰면 이렇게 촘촘하지 못한 옛날식 거름망으로도 잘만 걸러집니다. 이런 형태의 망이 오히려 촘촘하게 직조된 스테인레스 스틸 망보다 관리하기도 더 편하고요. 차때 낄 일이 없거든요. 사진 찍어 올려 놓고 보니 허헛, 왠지 마그리트의 곰방대 그림 삘이 좀 나네요. <이건 곰방대가 아니다> 하는 그림 있죠?

 

 

 

 

 

 

 

 


스테인레스 스틸 거름망을 굳이 써야 한다면, 튼튼해 보이고 혼자서도 잘 서있을 것 같은 b보다는 싸구려 a를 쓰는 게 오히려 더 낫습니다. 의외죠? 차때가 낄 만한 접합 부위가 더 적고 스뎅 면적도 적기 때문에 b보다는 차 맛에 영향을 덜 미치거든요.

 

 

 

 

 

 

 

 


옛 영국인들은 뜨겁게 예열된 두 개의 찻주전자, 별도의 거름망, 제대로 된 본 차이나 찻잔을 써야 한다고 조언들을 했습니다. 비록 비싼 다구들은 아닐지라도 사진에 있는 구성일 때가 차 맛이 가장 잘 난다는 거죠. 찻주전자는 작고 둥근 것으로(찻주전자 안에 빈 공간이 적을수록 향 손실이 적음), 찻잔은 강도 높고 얇은 본 차이나로 써야 차 맛이 좋습니다. 도기나 머그 같은 찻잔들은 입술 닿는 부분(입전)이 두껍죠. 이 부분이 두꺼울수록 차 맛을 잘 못 느끼게 됩니다. 열 보존은 잘 되겠지만요.

 

주전자 하나와 피처(pitcher. 우리말 용어가 따로 있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네요.)를 쓰면 안 되나요?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홍차는 녹차, 백차, 청차보다 뜨겁게 우리고 뜨겁게 마시기 때문에 피처에 담아 두었다가는 금방 식어 버리게 되지요. 그래서 '뜨겁게 데운 두 개의 티포트'를 운운하는 겁니다. 충분히 우린 다음 다른 주전자에 찻잎을 다 걸러 옮겨 담은 뒤 '티코지tea cosy'를 씌워 둡니다. 한 잔 마시는 동안 나머지 찻물을 보온하는 거죠. 사진에는 없지만 속을 두툼하게 잘 댄 티코지가 그래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두 개의 티포트 방식, 자꾸 해서 버릇 들이면 생각보다 귀찮지 않습니다.

 

 

 

 

 

 

 

 


스뎅이긴 해도 어쨌거나 무언가를 우렸으니 티푸드가 나가야지요. 크리스마스 식품 할인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길래 오늘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쵸콜렛을 사 보았습니다. 만원짜리를 이천원에 팔고 있었습니다. '벨기에 쵸콜렛'이라길래 얼씨구나 집어 왔더니, 으악 퉤퉤.

 

헤이즐넛 페이스트가 들어 맛은 길리안 쵸콜렛 비슷하게 나면서도 뭔가 느끼하고 싱거웠습니다. 성분표에서 유지 항목을 잘 살폈어야 했는데 5분의 1 값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흥분해서는 그만 깜빡했습니다. 유지를 코코 버터로만 쓴 것이 다른 식물성 유지를 섞은 것보다 맛이 월등히 낫습니다. 길리안은 유지를 전부 코코 버터로만 쓰거든요. 이 쵸콜렛은 코코 버터 외에도 팜유, 코코넛유, 콩기름, 유채씨유, 해바라기유가 별도로 들었습니다. 돈을 아끼려고 이런 복잡한 짓들을 하는 거지요. 벨기에 쵸콜렛이라고 다 같은 벨기에 쵸콜렛이 아니더란 말이지요. 가공식품의 세계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복잡하고 기만적이기도 합니다. 그냥 좋은 재료 쓰고 제값 받으면 속 편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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