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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를 자사호에 우려 보자 본문
홍차는 고온으로 우리기 때문에 자사호의 보온성이 좋아야 차의 맛과 향이 제대로 살아납니다. 그래서 형태는 열손실이 가장 적은 구형에 가까운 호가 적합하고, 자사 니료 측면에서는 기공층이 많아 투기성과 보온성이 좋은 자니 계통, 본산녹니 계통의 호들이 좋습니다.
라는 ☞ 전문가의 글을 보았습니다. 앗싸 가오리. 단단이 옳았던 거죠. 저 쵸콜렛색 자니 자사호를 얼 그레이 홍차용으로 쓰기로 결정한 것은 지극히 옳은 판단이었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도자기집 딸의 본능이라고나 할까요? 크허허 흐뭇해 죽는구나
오늘은 자사호로 얼 그레이를 우려 보겠습니다. 최근 재미 삼아 중국 공부차 우리듯 홍차를 짧게 짧게 여러 탕 우려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꽤 괜찮습니다. 홍차인 여러분들도 집에서 한번 해보세요. 찻주전자는 꼭 자사호가 아니어도 되고 크기만 작다면 어떤 것이든 다 가능합니다.
자사호로 우리려면 자사호 외에 뜨거운 물 담은 주전자가 하나 더 필요합니다. 고로, 오늘은 지난 번에 소개해 드렸던 단단의 애장품 '키세스Kisses'호와, 사진발을 위해 우리 집에서 제일 폼나는 동銅 포트를 쓰기로 하겠습니다. 물줄기가 가는 게 흠이긴 하다만 인간은 때로 실용적인 것 대신 심미적인 게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석구석 섬세하게 물을 뿌려 주기엔 이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원래는 커피 도구입니다.
늘 얼 그레이만 마시는 게 아니라서 양호가 더디군요. 그래도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보다는 광이 좀 늘긴 했어요. 동글동글한데다 가지 꼭지를 달고 있어 아주 귀여워요. 표면이 너무 반들거리지 않고 적당히 우둘두둘한 것이 숨 잘 쉬게 생겼지요.
홍차를 우릴 것이기 때문에 100˚C에 가까운 펄펄 끓는 물을 채워 차호를 먼저 예열해줍니다. 어떤 재질의 차호로 우리든 홍차를 우릴 때는 이 과정이 꼭 들어가야 합니다.
호신 가득 물을 채우고 뚜껑을 덮은 뒤 바깥 부분에도 골고루 뜨거운 물을 부어 줍니다. 열 보존이 더욱 잘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때 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표면에 반짝반짝 광이 나기 시작하는데 이게 또 아주 예쁩니다. 손잡이와 물대 부분까지 꼼꼼히 부어 줍니다.
저 물받이 차판은 대나무로 만든 싸구려입니다. 차 맛에는 아무 영향 안 줍니다. ^^; 중국식으로 차를 우리는 일은 꽤나 축축한 일이어서 물받이가 꼭 필요합니다. 충분히 데웠으면 데웠던 물을 이번에는 공도배(나눔배)와 잔에 부어 차호를 비워 줍니다.
이제 원하는 차를 넣습니다. 얼 그레이입니다. 얼 그레이는 차의 성질과 향이 강하기 때문에 기공이 많아 차향을 많이 잡아먹는 자니 호에 우려도 끄떡 없습니다. 섬세한 봉황단총을 자니 호와 유리 호에 각각 우려 본 적이 있었는데, 같은 차라도 차호의 재질에 따라 맛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납니다. 당연히 유리 호에 우린 것이 차호에 향을 빼앗기지 않고 찻물에 고스란히 담겨 더 좋았지요. 향이 섬세할수록 소결도가 높은 차호에 우려야 합니다.
찻잎을 넣었으면 뜨거운 물을 붓고
에휴, 물줄기가 가늘어 다 채우는 데 시간 너무 걸리네.
뚜껑을 덮어 예열할 때와 같이 바깥에도 물을 골고루 적셔 줍니다. 세차는 필요 없고 중국차 우리듯 짧게 20초만 우립니다.
호 감상하는 데 정신 팔아 시간을 지체했더니 색이 진해졌습니다. 부랴부랴 공도배에 따라 냅니다. 호에 찻물을 조금이라도 남겨두면 그 다음 잔에서는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될 겁니다.
고급차도 아닌 차를 공부차 우리듯 20-30초씩 너댓 번 우려 보았는데, 의외로 어느 탕이건 맛과 향이 훌륭했습니다. 홍차 우리는 방법에 이렇게 가끔씩 변화를 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블렌딩도 가능하고 첨가물을 이것저것 바꿔가며 넣는 것도 가능하죠. 꽤 재미있습니다. 우유도 넣어보고, 향신료도 넣어 보고, 술도 넣어 보고, 딸기홍차 맛 낸답시고 딸기잼 넣어 저어 봤다가 망해보기도 하고, 그러다 언젠가는 맛있는 나만의 홍차를 발견할 때가 오겠지요. 참, 홍차에 유자청 타 보신 분 있나요? 여기서는 유자청 구하기가 쉽지 않아 실험을 못 해봤는데 궁금합니다. 홍차에 버터조각 넣어 드시는 분은 뵌 적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특히 제맛이라고 합니다.
차를 즐기고 나면 찻잎이 남지 않도록 뜨거운 물로 잘 헹궈 주시고 호신이 아직 뜨거울 때 조금 덜어 둔 찻물을 차수건에 묻혀 꼼꼼히 문질러 줍니다. 여러 날 반복하다 보면 어느 때부턴가 표면에 광택이 슬슬 나기 시작할 겁니다. 이를 '호를 기른다' 라고 합니다. 차 우리는 이와 차호 사이에 애정이 싹트는 시간으로, 씻어 주고 닦아 주고 문질러 주고, 정말 애틋하기 짝이 없는 행위죠. 반드시 젖은 수건으로 문질러 줘야 하는데, 열기에 의해 물기가 금방 마릅니다. 뚜껑을 열어 두어 속까지 잘 마를 수 있도록 해주시고 씻을 때는 세제를 쓰지 않도록 합니다. 애써 배게한 차향이 세제 향으로 뒤덮여 무효가 되거든요.
얼 그레이가 워낙 향이 강한 차이다 보니 양호를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도 차호에서 얼 그레이 향이 솔솔 납니다. 동 포트는 물기에 매우 약합니다. 사용 후에는 반드시 마른 수건으로 닦아 말려 주시되, 씻을 때는 역시 세제를 쓰지 않고, 수세미 사용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상, 자니 자사호로 홍차 우리는 방법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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