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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닝 로얄 웨딩 블렌드 Twinings Royal Wedding Commemorative Blend 본문

차나 한 잔

트와이닝 로얄 웨딩 블렌드 Twinings Royal Wedding Commemorative Blend

단 단 2011. 4. 18. 00:58

 

 

 

 

영국에서 '쫌' 유명한 이 총각과

 

 

 

 

 

 

 

 

모델 뺨치는 패션 감각을 소유한 이 처녀가

 

 

 

 

 

 

 

 

오는 4월 29일에 결혼을 하겠다고 해

레고 세상이 다 떠들썩해졌습니다.

 

 

 

 

 

 

 

 

이때다 하고

 

 

 

 

 

 

 

다들

 

 

 

 

 

 

 

 

한몫 잡아 보겠다며

 

 

 

 

 

 

 

 

온갖 기념품들을 쏟아 내거나

 

 

 

 

 

 

 

 

온갖 잔재주를 다 부려 보지만

 

 

 

상술에 절대 놀아나는 법이 없는 꼿꼿한 단단은 1년 363일 쵸콜렛을 사 먹어도 발렌타인 데이 전날과 발렌타인 데이에만은 쵸콜렛을 절대 사지 않는다고 하지요. 그래, 남의 결혼식에 쓸데없이 흥분해서 돈 쓰는 짓 않기로 진작 마음 먹었다지요.


그런데 몇 주 전.
식품 관련 소식지를 보다가 이런 광고를 보게 된 겁니다.

 

 

 

 

 

 

 

 

으응?  매우 솔깃
단단은 영국의 대중적인 홍차 브랜드 중에서는 트와이닝을 좋아합니다. 딱히 여기 차가 맛있어서라기보다는 회사가 신제품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고 늘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죠. 그토록 저렴한 값에 그 정도 맛을 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겁니다. 그리고, 오래됐잖습니까. 오래된 회사 신기하지 않나요? 다른 기념품들은 다 필요 없어도 이 차는 영국 한정인 것 같으니 꼭 한번 사서 맛을 보아야 쓰것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두둥

 

 

 

 

 

 

 

 

 

성분으로 무엇무엇이 들었나 꼼꼼히 읽어 보십시오. 백차를 베이스로 웨딩 티를 블렌딩하는 건 업계의 관행입니다. 아마도 하얀 드레스 입은 순결한 신부를 상징하겠다는 의도이겠지요. 백차는 수색도 맑고 맛도 여리기 때문에 가향차 베이스로 안성맞춤이기도 합니다. 얼그레이 전문 회사답게 베르가못 향을 입히고 웨딩 티라 장미꽃잎을 넣었습니다. 웬만한 브랜드 차 죄다 드셔 보신 분들께는 새로울 게 없지요. 그래도 늘 보는 '웨딩 티'가 아니라 여러분, 이건 '로얄 웨딩 티'입니다. 단단은 영국에 와서야 비로소 공연장의 진정한 '로얄석'을 보았다지요.

 

깡통을 열면 종이 박스가 또 있고 그 안에 낱개 포장된 티백이 들어 있는데, 이 정도면 영국에서는 굉장한 과대포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세기의 결혼식"이니 특별한 날이라 이거죠. 영국인들은 단단과 마찬가지로 과대포장을 아주 싫어합니다. 수퍼마켓 선반에 과대포장 제품이 놓여 있으면 당장 소비자들과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BBC 뉴스 시간에 수퍼마켓 대표가 나와 해명을 하거나 시정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죠. 식품회사들에게 밤낮 당하면서 뒤에서만 푸념하는 우리 한국 소비자와 달리 영국 소비자는 실질적인 힘이 좀 있습니다.

 

영국 수퍼마켓에서 파는 티백 차들 중 하나씩 낱개 포장된 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심지어 티백에 끈도 달지 않는데, 다 쓴 티백은 모았다가 가드닝 할 때 비료로 써야 하기 때문이라네요. 투명하고 폼 나는 나일론 피라미드 티백 대신 멋 없는 종이 티백을 쓰는 것도 이해가 가지요. 예쁜 것 좋아하는 한국의 어여쁜 홍차인 언니들은 안 예쁜 영국 티백 짜증 날 겁니다. 제가 본 최고의 과대포장 차는 미국의 <레볼루션> 차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일론 티백을 하나씩(!) 종이상자에 넣고 비닐에 다시 한 번 싼 다음 나무상자에 넣은 제품 말예요.

 

영국인들이 과대포장을 싫어한다는 건 이들의 외모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다들 느끼시겠지만, 영국(뿐 아니라 유럽) 배우들은 대체로 미국 배우들처럼 외모가 멋지지 않지요. 잡티 없이 매끈해 보이려고 피부 갈아부치거나 얼굴에 보톡스 주사질 해대거나 안젤리나 졸리 입술 만드느라 입술 까뒤집는 성형수술 받거나 유방확대술 받거나 하는 따위 일을 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삐쩍소녀 키이라 나이틀리가 영화 포스터 속 자신의 가슴을 '뽀샵질'로 한층 부풀려 놓은 걸 보고 '버럭'했다는 일화도 있지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아 젊은 나이에 벌써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윌리엄 왕자도 머리카락을 심거나 가발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 있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저 다른 사람보다 탈모가 일찍 시작됐다는 것만으로 전세계 수많은 여성 팬들을 잃었으니 우리 여자들 참 나쁩니다. 윌리엄 왕자의 약혼녀 캐써린 미들턴이 웬만한 미국의 연예인들보다 예쁘게 보이는 이유도 그가 바로 평범한 집 자연미인이기 때문이라고 단단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 차는 과대포장 혐의가 짙으니 소비자와 언론의 뭇매를 맞기 전 시정을 하거나, '한정판'이라니 얼른 팔아 치우거나, 둘 중 하나를 빨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주변분들 생각해서 여유 있게 몇 통 더 사두긴 했지만 국제소포 부치는 값이 너무 들어 고민 중에 있습니다. 영국은 식품 값도 싸고 공원도 많고 사람도 친절하고 다 좋은데 이놈의 교통비와 우편비가 너무 비싸 짜증이 좀 납니다. 어쨌든, 수집가의 나라 영국에서 이런 왕실 관련 기념품들은 잘 간직하고 있으면 훗날 돈이 좀 될 수 있으니 잘 갖고 있어 봐야겠습니다.

 

 

 

 

 

 

 

 


캐써린 미들턴 닮게 그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초상권 관련해 복잡한 절차가 있나 봅니다.

 

 

 

 

 

 

 

 

 

종이 티백입니다. 보세요, 비료로 쓰기 위해 스테이플러 대신 실로 꿰매 봉했지요.

 

 

 

 

 

 

 

 

 

백차인데도 펄펄 끓는 물을 쓰라고 돼있습니다. 너무 가혹한 것 같아 찻잔 예열을 하지 않고 찻물을 바로 부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온도가 85˚C도에서 90˚C 정도로 떨어지니 좀 낫지요. 1분 이상 우리면 급격히 떫어지므로 시간을 엄수해야 합니다. 저한테는 1분도 좀 쓰게 느껴져요.


확실히 집에 갖고 있는 백차들보다는 등급이 낮은 티백용 백차라 색이 짙게 나옵니다. 베르가못 향이 향긋합니다. 트와이닝 <얼그레이>나 <레이디 그레이>에서 홍차 맛을 뺀 맛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식은 찻물을 들이켜면 백차와 장미향이 어우러진 '우디woody'한 느낌도 살짝 나고요. 오랜 만에 티백차 마시니 정말 편하고 좋네요. 매일 쏟아져 나오는 설거지에 진이 좀 빠져 있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포트넘>이나 <티 팔레스><위타드> 같은 곳에서도 기념 차를 낼 법도 한데 여태 소식이 없네요. <해로즈> 백화점은 다이애나와 도디 알 파예드 사망 사고 이후 왕실과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으니 해로즈에서 로얄 웨딩 티를 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참, 캐써린 미들턴 양에게는 역대 왕비들과 다른 '특별한' 점이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역대 영국 왕비들 중 결혼할 당시의 나이가 가장 많고 (29세)
둘째, 학사 학위 소지자이며 (귀족, 부자일수록 대학을 안 가는 경향이 있음)
셋째, 귀족집 딸이 아닌 평민의 딸이라는 점.

 

우리는 남의 나라 일이라 감각이 없어 잘 모르지만 영국의 역사가들이나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이게 또 대단한 일이라고 하는군요. 질시와 원통함이 하늘에 사무쳐 있을 귀족집 과년한 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감히 평민의 딸이 우리들의 윌리엄 왕자와 결혼을.

 

 

 

 

 

 

 

나였어야 했어

 

 

 

저는 이 아가씨가 썩 마음에 드는데, 인물도 좋거니와 평민인데도 왕실과 언론 앞에 당당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대중의 시선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것 같더군요. 성격도 좋은가 봅니다. 모쪼록 복잡한 왕실 규범에 주눅들지 말고 꿋꿋이 잘 살아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이 결혼해서 낳은 아이는 남녀 성별에 상관 없이 첫째가 무조건 왕위를 물려받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첫째가 딸, 둘째가 아들일 경우 왕위를 첫째인 딸이 물려받게 된다는 소리입니다. 투닥투닥 과격한 쌈박질 안 하고 시대에 맞게 알아서 법 잘 고치고 잘 따르는 사람들이 또 이 영국인들이니 기대가 됩니다. 하여튼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나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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