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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찻잔을 선물 받았습니다

단 단 2011. 4. 5. 09:39

 

 

 

 

한국에 있을 때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찻자리를 가진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찻잔을 수집한다는 말을 꺼냈었나 봅니다. 일행 중 한 분이 이 말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가 제 수집 조건에 맞는 찻잔을 구해 이곳 영국에까지 부쳐 주셨습니다. 깨지는 일이 빈번하니 다구가 먼길 여행을 한다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다행히도 금 하나 가지 않고 오늘 아침 무사히 잘 도착했습니다. 미일리어가 이때다 하고 잽싸게 등장했군요. 새 다구만 보면 흥분하는 경향이 좀 있어요. 오늘은 일이 없나 봅니다. 다리 뻗고 아주 푹 쉴 모양입니다. 슬쩍 보이는 허벅지가 뇌살적입니다.

 

 

 

 

 

 

 



제가 전에 말씀 드렸던가요? 미일리어와 이리나를 볼 때마다 살 마저 빼고 멋 좀 부리고 다녀야겠다는 의지가 불끈불끈 솟는다고요. 그래서 과자도 두 개 집어먹을 걸 마음 고쳐 하나만 집게 된다고요. 헌데, 찻자리에서 인형 만지작거리며 노는 사람은 이 단단뿐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차 즐기시는 우리 어르신들도 찻자리에서 인형을 갖고 노시더라고요. 차 우리시다 말고 자사 인형에 뜨거운 물 부으며 예쁘다 예쁘다 쓰담쓰담.
 그러니 찻자리에 미일리어가 끼게 된 것을 기이히 여기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이지요.

 

사진에 있는 과자 얘기 좀 해볼게요. 영국의 전통 '티 비스킷' 중에 무려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Rich Tea Biscuits'라는 게 있습니다. 사진에 있는 건 변형된 리치 티 비스킷인데, 미일리어의 베개로 쓰면 딱 맞겠습니다. 과자만 다시 찍어 봅니다.

 

 

 

 

 

 

 



영국 과자치고는 무늬가 꽤 정교하죠? 크림을 정말 깜찍하게도 짜 넣었습니다. 전통과자이기 때문에 이제는 특정 회사가 독점으로 내지 않고 어느 회사든 기본 제품으로 출시할 수 있나 봅니다. 오리지날 형태는 원형이고, 사진에 있는 핑거 크림 샌드위치는 현대에 와서 고안된 변주라고 보시면 됩니다. '리치'라는 이름과 달리 맛은 소박하기 그지 없네요. 쇼트브레드처럼 재료가 단순하나 버터는 들어 있지 않아 담백하면서 부담이 없습니다. 얼마나 담백한지 '다이제스티브'가 몇 배는 더 리치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제가 모으려는 찻잔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1. 본 차이나bone china여야 한다.
2. 찻잔, 받침, 티 플레이트tea plate로 구성된 트리오 1조여야 한다.
3. 젠Zen스럽거나 투박하면 안 되고 얇으면서 우아한 형태를 하고 있어야 한다.
4. 금테를 두르고 있어야 한다.
5. 푸른 꽃그림이어야 한다.

 

마지막 5번 때문에 수집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푸른' 꽃이어야 하고 푸른 '꽃'이어야 합니다. 푸른 색이기만 하면 안 되고 푸른 패턴이어도 안 되고 푸른 '꽃'이 그려져 있어야 하는 겁니다. 다른 색깔의 꽃이 섞여 있는 건 상관이 없는데 주 색상은 반드시 푸른색이 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찻잔 찾기가 힘듭니다. 후회는 좀 됩니다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수집 범위가 넓어져 잔뜩 사 모으게 되겠지요. 하여간, 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 누구든지 위의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찻잔을 어디 가서 보시거든 얼른 저에게 달려와 판매처나 찻잔 이름을 귀띔해 주셔야 합니다. 새 제품도 좋고 빈티지도 좋습니다.

 

오늘 이 찻잔을 보내 주신 '신분 밝히기를 꺼려하는 수줍은 지인' 님께는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트리오는 아니지만 부부잔으로 2조를 보내 주셨으니 사진에서처럼 트리오로 활용 가능합니다. 우리 집 식탁에 아주 잘 어울려 흐뭇해 죽겠습니다. 크어, 미일리어가 다리 꼬고 앉았군요. 매끈한 종아리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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