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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부활절

단 단 2011. 4. 23. 00:45

 

 

 

 

 

부활주일에는 교회를 가야하므로 이틀 전인 오늘 미리 찻상을 차려 봅니다. 이크,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남들 금식하며 기도한다는 성금요일 아닙니까.;;

 

 

 

 

 

 

 

 

 

오늘 찻상에는 스콘 대신 못생긴 홋 크로스 번hot cross buns이 올라왔습니다. 영국인들의 성 금요일과 부활절 전통 빵입니다. 원래 이 정도로 못생긴 빵은 아닌데 제가 특별히 못생긴 걸로 잘못 집어왔습니다. 

 

 

 

 

 

 

 



다쓰베이더의 차이브와 훈제연어를 올린 호밀빵

 

품퍼니클(Pumpernickel, 벽돌 모양의 호밀 함량 높은 독일빵), 크림치즈, 차이브, 훈제연어, 달걀피클, 레몬(먹어 보니 빵과 달걀피클이 시어서 필요 없었음), 후추. 끝.

 

조립식품의 진수입니다. 다쓰베이더가 조립했습니다. 품퍼니클 까나페는 유럽인들의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건데, 푸른 잔디 좋아하는 영국인들은 이렇게 품퍼니클 위에도 잔디를 깔곤 합니다. 만들기는 쉬우면서 눈은 즐겁고 맛도 좋으니 집에서 티타임용 샌드위치나 와인이나 맥주 파티용 까나페, 손님 초대상 전식starter 등으로 활용해 보세요. 품퍼니클은 맛이 강하면서 독특한 산미가 있어 웬만큼 성깔 있는 부재료를 올리지 않으면 맛이 안 삽니다. 시큼한 크림치즈와 훈제연어를 올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지요. 랍상수숑lapsang souchong 홍차에 곁들이셔도 좋겠네요.

 

 

 

 

 

 

 



홋 크로스 번 맛있게 먹는 방법을 소개해 드릴게요. 반을 갈라 각각을 토스터기에 넣고 바삭하게 구워 주세요.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버터 조각을 뜨거운 번 위에 올려 녹기 전에 "콰직콰직" 소리 내며 먹어 줍니다. 뜨겁고 바삭한 빵과 아이스크림처럼 차가운 버터의 조화가 절묘합니다. 꼭 이렇게 드시길 권합니다. 뜨겁게 구워야 번 속에 있는 각종 향신료와 유지의 향이 활성되거든요. 밖에서 사 온 식빵도 가급적 구워 먹는 게 좋다고 합니다. 각종 첨가물이 열기와 함께 꽤 휘발된다고 하니까요. 지금까지 영국에서 먹어 본 홋 크로스 번 중에서는 <더치 오리지날스Duchy Originals>것이 기품 있는 향이 나면서 가장 맛있었는데, 수퍼마켓을 갔더니 하필 사진 찍어야 할 오늘 똑 떨어졌지 뭡니까.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소규모 패밀리 비즈니스'의 '핸드 메이드' 제품입니다. 영국 수퍼마켓에서는 특화된 중소기업 제품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대기업이 돈 된다 싶으면 별 사소한 것까지 다 '찝쩍'대며 돈벌이하지 않습니다. 감자칩만 몇 대째 죽어라 만들어 내는 회사가 있고, 까나페용 심심한 비스킷만 죽어라 내는 회사도 있으며, 쇼트브레드 전문회사가 있는가 하면, 짭짤한 치즈 비스킷만 생산하는 회사, 커리 소스만 내는 회사, 잼만 만드는 회사, 쵸콜렛 회사,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요.

 

 

 

 

 

 

 

 

 

수퍼마켓에서 사 온 영국의 전통 과자 플랩잭스flapjacks 성분:

oats (40%), dark chocolate (20%), sugar, partially inverted sugar syrup, salted butter (16%). 끝.


귀리가 많이 들어 있어 얼핏 건강식품인 것 같으나 달고 기름지고 몹시 사악합니다. 묵직하니 꼭꼭 잘 씹어 먹어야 합니다. 전투식량이나 비상식량으로도 손색 없어요. 가격대별로 맛 차이가 많이 나니 가끔 먹더라도 돈 좀 더 주고 맛있는 걸로 사 드시길 권합니다. 재료도 단순하고 만들기 쉬우니 집에서 설탕 덜 넣고 만들어 드셔도 되고요.

플랩잭스 집에서 만들기

 

 

 

 

 

 

 

 

 

우리 집 부엌의 장미 찬조 출연.

 

 

 

 

 

 

 

 

단단이 만들어 본 심넬 케이크simnel cake 성분:

달걀, 잘게 분쇄된 설탕caster sugar, 소금, 버터넛 스쿼시, 오렌지 껍질, 레몬 껍질, 쌀가루, 생강가루, 아몬드 가루, 베이킹 파우더, 투명하게 당절임한 생강crystallised stem ginger, 혼합과일 당절임 껍질mixed peel, 살구잼, 마지판, 아이싱 슈가. 끝.

 

 

 

 

 

 

 

 


열한 개의 마지판 공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예수의 열한 제자를 상징합니다. 한국에는 이 심넬 케이크가 아직 안 알려진 것 같습니다.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영국인 친구 두신 분은 부활절에 이거 한번 만들어서 깜짝 선물로 줘 보십시오. 과묵한 그 영국인 친구가 아마 고향 생각과 정성에 눈물 콧물을 쏟을 겁니다. 
"이 심넬 케이크 어떻게 알았어?!"
하면서 말이죠.

 

 

 

 

 

 

 



이 케이크에는 버터도 안 들었고, 식용유도, 심지어 밀가루도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매우 맛있습니다. 원래는 밀가루에 향신료와 건포도 잔뜩 넣고 굽는 전형적인 영국의 '프룻 케이크' 반죽을 써야 하는데, 홋 크로스 번과 맛이 겹치므로 변형된 레서피를 찾아서 썼습니다. 마지판을 고르게 밀어 조심조심 꼼꼼하게 잘 씌워 줘야 뽀대가 납니다. 마지판과 함께 먹으려면 반죽에 설탕을 많이 넣지 않아야 하고요.

 

 

 

 

 

 

 

 


오늘 찻상은 부활절을 기념하며, 그리고 4월에 생일을 맞은 가족들을 생각하며 준비해 보았습니다. 찻상에 단것들이 그득 올라왔지만 사실 위장 크기를 줄여 놔서 저거 절대로 다 못 먹습니다. 거창한 3단 접시 갖다 놓고 한 개씩만 올려 놓자니 사진발이 영 안 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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