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화이트 쵸콜렛 재발견 본문

차나 한 잔

화이트 쵸콜렛 재발견

단 단 2011. 4. 29. 21:37

 

 

 

 


어느 작가께서 저 이태리 <까페 플로리안Caffe Florian>의 '베니션 모제익 티Venetian Mosaic Tea'를 금테 두른 뽀얀 찻잔과 함께 근사하게 세팅해 놓은 걸 보고는 부러움과 호기심이 불일듯 일었었지요. 어디서 비슷한 느낌의 찻잔을 살 수 있을꼬 뒤지다가 뜻밖에도 동네 채리티 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찻잔이 아니라 작은 크기의 커피 캔입니다. 원기둥 형태로 곧게 뻗은 커피잔을 '커피 캔can'이라 부른다는 것도 이걸 사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에스프레소 잔으로 쓰라고 나온 제품이지만 찻잔으로 써도 문제될 건 없겠지요. 런던의 유명 차이나 숍 <토마스 구드Thomas Goode>가 독점으로 공급했던 <해머슬리Hammersley& Co.>의 커피 캔이라 합니다. 그래서 두 곳의 백 스탬프가 한 찻잔 안에 같이 인쇄돼 있는 모양입니다. 6인조를 7파운드에 샀으니 한 조당 2천원 꼴. 금테 두른 고급 본차이나 커피잔 1조를 이 정도에 샀으면 꽤 성공적인 구매인 거죠?


희한하게도 우리 인간은 안 사서 아끼게 된 큰돈보다는 남들보다 싸게 사서 아끼게 된 푼돈에 더 열광하는 경향이 있지요. 역시 저 같은 가난뱅이한테는 채리티 숍이 백화점입니다. 백 스탬프 추적을 해보니 아무리 늦어도 1932년에 생산한 물건이라 하네요. 아르 데코 시절 멋쟁이 여인들이 쓰던 잔이라 생각하니 짜릿해집니다.

 

 

 

 

 

 

 



찻주전자의 재질에 따라 차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이 블로그를 통해 누차 말씀 드렸지요. 잠깐 동안 찻물이 담기는 공간인 찻잔의 재질과 형태도 차맛을 많이 좌우한다는 걸 이 커피 캔을 사용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다쓰 부처가 좋아하는
향기로운 '베니션 모제익 티'를 사진에 있는 작은 커피 캔에 마시면 차맛과 향이 훨씬 또렷해지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 커피 캔이 아마도 대만 사람들이 차 향을 음미할 때 쓴다는 문향배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그러고 보니, 좁고 길죽한 형태가 문향배를 닮지 않았나요?

 

보통 홍찻잔은 커피잔보다 납작하고 지름이 넓지요. 뜨거운 찻물을 빨리 식히고 향을 마음껏 들이마시기 위해서라는데, 작은 원통형 커피 캔에 마시는 편이 훨씬 향이 좋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앞으로 향차들은 좁고 긴 원통형 잔에 마셔야겠는걸요. 차를 마시려 들면 찻잔 안 좁은 공간에 코가 잠깐동안 갇히게 되는데, 이 때 찻잔에 남아 있는 열기에 차향이 실려 코에 전해지므로 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집니다. 홍차를 커피 캔에 담아 마시면서 문향배를 고안해낸 대만 사람들의 지혜를 찬양하게 될 줄이야.

 

 

 

 

 

 

 



이 차는 화이트 쵸콜렛과 함께 할 때 궁합이 가장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영국 <그린 앤드 블랙Green & Black's> 사의 까뭇까뭇한 바닐라 빈이 보이는 화이트 쵸콜렛입니다.


"허여멀건 게 무슨 쵸콜렛이야?"

 

그간 이 화이트 쵸콜렛을 우습게 여겼었는데 질 좋은 것들은 상당히 맛있더라고요. 입 안에서 기름 덩어리가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안 되고, 이 쵸콜렛처럼 상처 받은 영혼을 어루만지며 치유하듯 사르르 입 속 전체에 부드럽게 퍼져야만 훌륭한 화이트 쵸콜렛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화이트 쵸콜렛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쵸콜렛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마는, 영국인들은 쵸콜렛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채소와 과일 사는 데 들이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쵸콜렛 사는 데 쓰고 있다는 통계도 다 봅니다. 무슨 날만 되면 다들 쵸콜렛 선물하기 바쁜데, 발렌타인스 데이에 쵸콜렛을 선물하는 것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쵸콜렛은 어쩌다 먹는 럭셔리 기호식품이었지, 지금처럼 가격과 함께 품질도 대폭 내린 쵸콜렛들이 만연하지는 않았다는 분석도 보았습니다. 코코 트리 재배 면적 늘리느라 산지에서 숲을 마구 훼손하고 있고 아이들의 노동력도 서슴지 않고 동원한다 하니, 싸게 많이 먹는 것보다는 제값 주고 제대로 된 맛있는 걸 적게 사 먹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안 먹겠다는 소린 죽어도 안 하고. )

 

 

 

 

 

 

 



그런데, 단단의 책상 위에는 어찌된 일인지 쵸콜렛이 끊이질 않는군요. 쵸콜렛 좀 그만 먹어야 할 텐데 다쓰베이더가 기운 내서 작업하라고 자꾸만 쵸콜렛을 사다 줍니다. 아아, 그렇습니다. 우리 여성 동지들이 커피나 홍차나 쵸콜렛 없이 어떻게 인생의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겠습니까. 다쓰베이더가 잘 알고 있는 거죠.

 

 

 

 

 

 

 


 오늘 결혼한 어느 부부.

 


이보오, 젊은이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법이니 모쪼록 서로 배려하며 잘 살기를 바라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