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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요리책과 레시피 저작권에 관하여

단 단 2013. 10. 14. 19:50

 

 

 지금까지 출판된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책. 미국 시장과 영국 시장을 위한 책 제목이 다르니 구매시 주의.

 



남의 블로그나 요리책에 있는 레서피를 가져다 자기 블로그에 공개하면 저작권을 위반한 게 될까요?

 

남의 레서피를 가져다 공개하는 방법에도 네 가지 형태가 있죠.

1. 나는 양심 있는 사람이니 그래도 남의 레서피를 갖다 쓸 때면 레서피 원작자와 출처를 꼬박꼬박 밝혀 준다. 나 착하지?

2. 그러면 좋긴 하겠다만, 나도 나름 이름난 요리 블로거인데 이게 남의 레서피라고 밝히게 되면 어렵게 쌓아올린 내 명성에 흠이 갈까 두렵고 왠지 쪽팔려. 그냥 쌩까고 내가 고안한 요리인 양 쓰련다.

3. 요리책 레서피 대로 만들어 봤더니 이러이러한 점이 부족한 것 같아 내가 재료와 공정 몇 군데를 좀 바꿔 봤어. 그러니 이건 내 레서피나 다름 없어진 거지. 고로, 출처를 밝힐 필요가 없어.

4. 무슨 소리. 그런 경우엔 "남의 레서피를 갖다가 내가 손을 좀 본 거야. 나의 공로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밝혀 주고 써야 하는 거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의 네 명 중 2번과 3번은 저작권을 위반한 걸까요? 
아니면, 
네 명 모두 어쨌거나 남의 레서피를 갖다 쓴 것이므로 
위법을 한 걸까요?

답을 미리 말씀 드리자면, '네 명 모두 법적으로 문제 없음.'이 되겠습니다. (영·미 법에 한해서입니다. 한국 저작권법을 살펴보았는데 이에 관한 똑부러진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봅니다.)

제가 며칠 전 헤스톤 블루멘쏠의 비스킷 레서피 하나를 공개하면서 잠시 저작권에 대해 고민을 했었습니다. '이거 이렇게 그람g 수까지 일일이 밝혀도 되는 걸까?' 뒷골이 좀 땡기더라고요. 답을 찾아 누리터를 뒤져보았지요. 그러다가 놀랍게도 요리책의 레서피는 저작권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서피란 원래 공유하고 널리 퍼뜨리는 데 의의가 있고, 또,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음식'
이라는 개념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는군요. 일리는 있어 보입니다.

만일 단단이 애써 고안한 맛있는 '오동통한 거미 육즙 비스킷' 레서피를 이 블로그에 공개했는데, 어마어마한 방문자 수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된 어느 요리 파워 블로거가 옳거니 하고 가져다 자기 블로그에 자기가 만든 것인 양 이름만 바꿔 공개를 한다면 어떨까요? 저로서는 화가 단단히 나겠지만 법적으로 응징할 방법은 없다고 하네요. 도의적으로 문제는 있지만요. 희한하죠. 

극단적인 예로, 누군가 헤스톤의 요리책에 담긴 레서피대로 조리한 음식만 파는 식당을 열었다고 칩시다. 우리 생각에는 부도덕한 사람이니 잡아서 배상을 하게 하거나 감옥에 가둬야 속이 후련할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 식당 주인은 헤스톤에게 돈 한푼 안 줘도 된다는군요. 대신 자신만의 '시그너처 디쉬signature dish' 하나 없이 남의 것만 죄 베끼는 식당이니 미슐랑 스타를 얻거나 명성을 얻을 생각은 꿈도 못 꾸겠지만요. 이런 일들이 요식업계에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한국 요식업계에서는 "며느리도 몰러"가 하나의 전략이 되었죠. 코쟁이들은 유명 레스토랑의 요리사일수록 부지런히 자기 레스토랑의 비법을 담은 요리책을 냅니다. 저는 처음엔 코쟁이들의 이런 관행이 낯설고 이해가 안 갔습니다. 이렇게 비법을 다 공개하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

 

그런데, 요리사로서의 명성에 대한 열망이 클수록, 라이벌 관계에 있을수록 더더욱 경쟁자의 요리를 안 베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군요. 자신만의 색채를 가미하지 않고 남의 레서피를 그냥 베낀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찬사에 해당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비법이 낱낱이 공개돼 있는 상황이니 베꼈을 경우 이제는 업계 사람들뿐 아니라 요리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까지 '빠삭하게' 다 알아본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테고요. 저도 이곳 유명 요리사들 레서피를 접하면서 누가 누구의 것을 참고했는지 알아차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또 하나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볼까요? 

제이미 올리버의 새 요리책이 나왔는데, 어느 공명심 가득찬 요리 블로거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그 책의 레서피, 즉, '재료와 공정'을 자기 블로그에 일일이 자판 두들겨서 모두 옮겨 적어 공개를 했다고 합시다. (미친 사람이죠. 쿨럭;;) 그런데, 이 사람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군요. 허허, 겁나서 어디 요리책 내겠습니까.

어느 요거트 회사가 자사 제품 판매 촉진을 위해 요거트를 활용한 간단한 레서피 50개를 고안해 요리책을 냈습니다. 그런데 한 출판사에서 그 책의 레서피 몇 개를 가져다 출판물 여기저기에 신나게 활용을 해서 돈을 번 예가 있었지요. 이에 발끈한 요거트 회사가 소송을 걸었지만 결국 지고 말았습니다. 판결문은 이랬습니다. "어, 베낀 것은 맞아. 그래도 위법이라고 할 수는 없어. 음식이란 원래 그런 거야." 

그런데 또, 레서피는 저작권을 갖지 못하지만 요리책 자체는 저작물이므로 저작권을 갖는다고 하네요. 헷갈리죠? 요리책에 담긴 사진, 편집, 요리 소개 글 등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표현'에 해당하므로 저작권이 부여되는 거라고 합니다. 꼬맹이가 흰 종이에 괴발개발 낙서를 마친 순간 그 낙서에 자동적으로 저작권이 부여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꼬맹이가 그 낙서에 서명을 했는가 안 했는가, 그 낙서가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요리책의 어느 한 부분을 복사하거나 스캔해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위법이 되는 겁니다. 복사해서 자기 혼자 보려고 몰래 갖고 있는 건 누가 뭐라고 안 합니다. 음반이나 음원의 경우와 마찬가지이지요. 

다시 정리를 해 드리자면 - 
요리책에서 레서피, 즉, 재료와 공정은 저작권을 갖지 못하므로 갖다 써도 되지만 요리책 안에 담긴 사진과 저자 고유의 표현을 담은 글들은 저작권을 갖기 때문에 갖다 쓰면 안 됩니다.

서양의 요리 블로거들 글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레서피에 아무리 저작권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저자의 노고를 생각해 대개 레서피 밑에 출처를 밝혀 주고, 심지어 그 요리책 판매처로 직접 링크까지 걸어 주는 수고를 하고 있더군요. 강제성은 없지만 이렇게 하는 것을 원작자에 대한 도리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참 좋은 습관이죠. 그래서 저도 이전 게시물인 <헤스톤 블루멘쏠의 캐러웨이 비스킷>에 레서피를 그람g 수까지 꼼꼼히 적는 대신 헤스톤의 어느 요리책에서 가져온 것인지를 밝히고 그 요리책의 온라인 판매처 링크까지 걸어 주었습니다. 사실, 캐러웨이 케이크와 캐러웨이 비스킷은 영국 전통 음식입니다. 그러니 헤스톤이 저작권을 온전히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레서피에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도 가끔 요리책에 담긴 사진을 갖다 올린 적이 있었는데요, 이건 앞으로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깐에는 요리책 홍보가 될 수도 있으니 사진 한 장쯤이야 뭐, 하고 올렸는데, 출판사나 사진 원작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곤란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출판사가 자사 출판 요리책을 홍보해 주려는, 상업적 의도가 전혀 없는 갸륵한 독자를 고소하는 일은 매우 드물겠지만요. 어쨌거나 위법에 해당됩니다. 

잠깐.  
그럼 요리책 구매자가 요리책의 일부분을 사진 찍어 아마존 '요리책 독자 사진 공유customer images'에 올리는 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똑같이 홍보가 목적인데 자기 블로그에 올리는 건 안 되고 요리책 판매 싸이트에 올리는 건 되는 겁니까? 헷갈려;; 

자, 이제 제가 예전에 쓴 글을 하나 읽어 보시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 천부적 감각, 제이미 올리버의 김치. 레서피 저작권에 관한 오늘의 글을 잘 이해하셨나 점검해 보는 겁니다. 좀 애매한 구석이 있을 겁니다. 

 

 

 

[기사] 사실 확인 - 레시피는 특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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