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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 코니쉬 야그 Cornish Yarg 본문

영국 치즈

영국 치즈 ◆ 코니쉬 야그 Cornish Yarg

단 단 2014. 3. 3. 19:29

 

 

 

치즈 사진이 잔뜩 밀렸습니다. 2년 전에 찍은 것도 아직 못 올렸어요. 당분간 재미없는 치즈 이야기가 계속 올라올 테니 너른 이해를 바랍니다.

 

독자: 이봐, 치즈 얘기 아니어도 그간 재미 없었다고.
단단: 그,그런가요?;; 긁적긁적

 

 

 

 

 

 

 



오늘 소개해드릴 치즈는 '코니쉬 야그'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영국 치즈입니다. 이 치즈를 사게 된 사연이 좀 웃깁니다. 푸른곰팡이 치즈 좋아하는 단단, 수퍼마켓 치즈 진열장을 들여다보다가 겉모습만 얼핏 보고는 푸른곰팡이 심하게 핀 치즈인 줄 알고 신나서 사 왔습니다. 사 와서 보니, 엥? 푸른곰팡이가 아니고 웬 이파리가 덕지덕지 발린 치즈였네요. 꽈당 잎맥이 선명히 보이죠? 이 잎이 뭐냐면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쐐기풀nettle입니다. 깻잎 비스무리하게 생겼는데, 영국에서는 이 쐐기풀을 향초차로도 많이 우려 마십니다. 영국의 숲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치즈 포장 재료들이 귀했던 옛 시절에는 치즈가 마르지 않도록 이런저런 천연 재료들을 써서 치즈를 감쌌다는데, 이 쐐기풀도 고육책 중 하나로 보입니다. 방부 효과도 좀 있다고 하네요. 치즈 저장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보존 목적보다는 맛에 미묘한 색채를 더하기 위해, 그리고 미적인 요소를 위해 쓰이지만요.

 

 

 

 

 

 

 



원래는 이렇게 큰 원반wheel 모양으로 만듭니다. 치즈 가게에서는 원반째로 공급받아 소비자에게 조각 케이크처럼 잘라 파는 것이지요.

 

 

 

 

 

 

 



반 자른 모습입니다.

 

 

 

 

 

 

 

 



지름이 좀더 작은 것도 있네요. 손님 치를 때는 작은 걸 통째로 사다 올려 놓아도 좋겠습니다.

 

단단이 곰팡이 치즈인 줄 착각하고 잘못 사 왔다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곰팡이가 소량 첨가되기는 했습니다. 치즈 표면을 쐐기풀로 도배한 뒤 흰곰팡이 중 한 종류인 '페니실리움 칸디다Penicillium Candida'를 가볍게 분사해준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이파리의 짙은 녹색과 흰곰팡이의 하얀 색이 동시에 보이는 거지요. 외형이 정말 멋있죠. 잎 가장자리의 톱니선과 흰곰팡이 때문에 레이스 느낌이 좀 납니다. 머리 좋아요.

 

 

 

 

 

 

 



이름에서 벌써 알 수 있듯, 이 치즈는 영국 남서부 콘월 지역에서 만듭니다. 대규모 치즈 공장이 아닌 직원 25명의 작은 농장에서 일일이 수작업해 만든다는데, 그나마 이 25명 직원이 전부 치즈를 만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는 들에 나가 소에서 젖 짜오고, 어떤 이는 치즈 만들고, 어떤 이는 이파리 붙이고, 어떤 이는 시간 맞춰 저장고의 치즈들 뒤집어주고, 어떤 이는 완성된 치즈 포장하느라 대량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답니다. 뭔가 가족적이면서 재미있죠. 대량 생산이 안 되니 영국 안에서도 보기가 좀 힘듭니다. 고급 수퍼마켓 치즈 카운터나 치즈 전문 가게에 가야만 볼 수 있어요. 사실, 기계화 자동화 된 큰 공장일수록 사람이 덜 필요하지요. 일일이 수작업하는 작은 농장이니 사람이 25명이나 필요한 겁니다. '겨우 직원 25명'이 아니라 '무려 직원 25명'이라 해야 맞겠네요.

 

'야그Yarg'라는 이름은 이 치즈를 처음 만든 알란 그레이Alan Gray 씨의 성을 거꾸로 읽어 만든 거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영국인들마저도 이 '야그'가 콘월 지역 고어古語라 생각하고 감쪽같이 속는답니다. 왠지 '켈트Celt'스러운 어감이라나요. 치즈 농장주가 재미있지 않냐며 킬킬거리더라고요. 1983년에 시장에 첫 선을 보인 새내기 치즈이나, 실상 그 제조법은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코니쉬 야그에 쓰이는 우유는 100% 풀만 먹고 자란 소들로부터 오는데, 그 때문에 우유 품질이 매우 좋고 진하며 영양가가 높습니다. 풀에 함유된 베타카로틴 때문인지 치즈 색이 좀 노랗죠. 겉에 붙이는 쐐기풀은 일부러 심어 키운 게 아니라 농장 근처의 오래된 숲에서 채집해다 쓴다고 합니다.

 

 

 

 

 

 

 



이 쐐기풀과 흰곰팡이가 맛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칩니다. 치즈 자체에서는 신선한 우유맛과 고소한 버터맛이 풍기면서 약간의 기분 좋은 산미가 나는데다, 겉껍질의 쐐기풀과 흰곰팡이가 어우러져 묘한 버섯향이 더해집니다. 유럽 시금치 맛과 아스파라거스 맛이 희미하게 난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5주간 숙성시키는 반경성semi-hard 치즈로, 너무 단단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촉촉하고 쫀득해 씹는 맛이 좋아요. 숙성 과정에서 단단해진 쐐기풀 껍질이 제법 치감bite도 줍니다. 흰곰팡이를 소량 분무해 숙성시키기 때문에 곰팡이 맛이 많이 나지는 않습니다. 단언컨대, 곰팡이 덮인 치즈 중 가장 순한 맛 치즈라 할 수 있겠으니 곰팡이 치즈 꺼리는 분들도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아이들과 임산부에게도 안전한 치즈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는 곁들임 음식 없이 맨입에 치즈만 먹었으나 다음과 같이 활용해도 좋다고 합니다:


 녹는 점이 낮으니 토스트, 크로스티니crostinis, 바게뜨baguettes 등에 올려서
재킷 포테이토, 파스타, 그라탕 등에 얹어서
치즈 맛이 강하지 않으니 섬세한 생선요리에 곁들여서
베지테리안 파이 만들 때 고기 대신
사이더, 페리Perry, 순한 에일, 과일향 나는 화이트 와인, 디저트 와인 등과 함께

 

곰팡이가 덮인 쐐기풀 껍질이 특징인 치즈인데다 껍질째 먹어야 제맛이 나므로 저는 요리에 녹여서 쓰는 것은 별로 권하지 않습니다. 녹여 쓰기에는 좀 아까운 치즈 같아요.


값이 아주 비싸진 않습니다. 킬로그램당 18파운드, 200g에 3.6파운드, 우리돈으로 약 6,500원 정도 하니 한 번쯤은 먹어볼 만하죠. 영국에 계신 분들은 200g 작은 조각이라도 사서 꼭 드셔 보세요. 100g만 잘라 달라고 하기에는 좀 미안하더라고요. 200g도 양은 얼마 안돼요. 치즈가 맛이 순하고 고소해 순식간에 다 먹게 됩니다. 영국에 있을 때 아니면 만나보기 힘든 아티잔artisan 치즈인데다 치즈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았으니 꼭 드셔 보십시오. 일본과 호주에서는 이 치즈를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수입해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하여간 일본 사람들, 영국에서 좋다는 건 다 갖다가 즐기고 있어요. 신기한 사람들입니다.

 

 

 

 

 

 

 



짜잔~
이게 뭐냐면요, 각종 치즈로 쌓아 올린 치즈 탑입니다. 영국에서는 결혼식 피로연에 치즈를 이렇게 내는 관습이 있더라고요. 신기하죠. 이거야말로 진정한 '치즈케이크'가 아니겠습니까. 하객들에게 조금씩 잘라 제공한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코니쉬 야그가 밑에 깔려 있습니다. 치즈 구성은 주문자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코니쉬 야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 Lynher Dairies를 방문해 보십시오. 더 많은 사진과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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