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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 랭카셔, 랭커셔 치즈 Lancashire 본문

영국 치즈

영국 치즈 ◆ 랭카셔, 랭커셔 치즈 Lancashire

단 단 2014. 3. 5. 16:17

 

 

 

랭커셔 Lancashire

 



아, 랭커셔 치즈.
정말이지, 지극히 영국스러운 이름 아닙니까. 랭커셔는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카운티county 이름입니다. 카운티는 크기가 좀 작긴 하나 우리나라 '도' 개념과 비슷하다 보시면 됩니다. 지도의 빨간 부분입니다.

 

Q  잠깐! '랭커셔'는 알겠는데, '랭카스터Lancaster'는 또 뭔가요? 랭커셔와 랭카스터, 헷갈려요.

 

장미전쟁The Wars of Roses, 1455-1485 때 요크 가문과 왕위 쟁탈을 위해 무쟈게 싸워댔다는 랭카스터 가문이 떠오르죠? 랭카스터는 랭커셔에 속한 지역 이름입니다. 즉, 랭커셔는 강원도, 충청도, 할 때의 우리나라 도 비슷한 큰 개념, 랭카스터는 도에 있는 한 지역 이름이라 보시면 됩니다.

 

이 랭커셔 치즈는 설명을 하자면 좀 복잡합니다. 저도 수퍼마켓에서 랭커셔 치즈 보고 한참을 헷갈려했습니다. 여섯 가지로 세분이 가능하거든요. 네에, 다 먹어 봤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 아니면 제가 언제 영국 치즈를 이렇게 싼 값에 손쉽게 먹어 보겠습니까.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이, 7분 거리에 <세인즈버리즈> 수퍼마켓이 있습니다. 큰 수퍼마켓이 두 개나 있으면서도 동네는 조용하고 살기 좋아요. 복 받았죠. 둘 다 제법 고급 수퍼마켓이라 맛있는 치즈를 많이 갖다 놓고 팝니다. 떨이하는 걸 살 때도 많은데, 고급 치즈 한 덩이를 막 천오백원에도 사고 그럽니다.

 

제조법이 약간 독특합니다. 옛 시절 랭커셔 지역의 농가에서는 소에서 당일 짜낸 우유를 쓰다 남으면 치즈를 만들기 위해 굳혀 두었다는데, 하루 분량의 우유만 가지고 치즈를 만들기엔 양이 부족해 오늘 굳힌 우유, 그 이튿날 굳힌 우유, 다음다음 날 굳힌 우유, 즉, 3일에 걸쳐 굳혀둔 응유curd를 모아 치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엔 대량의 우유를 단번에 굳히는 방식으로 치즈를 만들곤 하죠. 이 랭커셔 방식으로 2~3일에 걸쳐 단계적으로 굳힌 응유를 갖고 치즈를 만들면 독특한 맛이 난다는군요. 물량이 풍부하고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랭커셔 치즈는 여전히 이렇게 만듭니다.

 

랭커셔 치즈는 다음과 같이 세분할 수 있습니다. 모두 소젖으로 만들고 경성 치즈hard cheese로 분류됩니다.

 

① Creamy Lancashire
저온살균 우유 사용. 4~12주 숙성.
크림 같은 부드러운 질감에 신선한 우유맛. 잘 녹기로 소문난 치즈. 토스트에 올려 먹거나 파스타에 넣어 먹으면 좋음.

 

② Tasty Lancashire
저온살균 우유 사용.
위의 '크리미 랭커셔'를 12개월까지 숙성시켜 좀더 단단한 질감에 농후한 맛. 그냥 먹어도 맛있고, 맛의 변화 없이 부드럽게 잘 녹기 때문에 요리에도 많이 쓰임. 아래 영상에서 소개하는 <랭커셔 치즈 어니언 파이>에 넣으면 좋음.

 

③ Lancashire Bomb 또는 Lancashire Black Bomb
'테이스티 랭커셔'를 무려 2년까지 더 숙성시켜 만든 농후한 맛의 부드러운 치즈. 동그랗게 성형한 뒤 검은 왁스를 두껍게 입혀 숙성시킴. 모양이 꼭 폭탄 같다고 해서 이름이 'Lancashire Bomb'. 한 랭커셔 치즈 제조업자가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를 위해 꽁꽁 잘 싸서 준답시고 검은 왁스를 두껍게 입힌 것이 시초가 되어 랭커셔 지역 관광 상품이 되었음. 홍고추나 후추 등 부재료를 이것저것 넣어 제품의 다양화를 꾀하기도 함.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진짜 폭탄 모양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자

 

④ Crumbly Lancashire
저온살균 우유 사용. 6~8주 숙성.
1960년대에 대량생산을 위해 전통 제조법을 날림으로 적용, 2~3일치 응유 대신 하루치 응유만 쓰고 숙성 기간도 단축시켜 만든 속성 치즈라 깊이가 없고 별로 권할 만한 맛이 못 됨. 신맛, 짠맛, 쓴맛만 강하고 단맛과 감칠맛이 부족해 균형감이 떨어짐. 입 안에서 기분 좋게 녹지를 않고 모래처럼 까슬거리다 넘어감. '크럼블리'라는 용어에 충실하기는 함. 잘 바스러져 녹여 쓰는 용도보다는 샐러드에 부숴 넣기 좋음. 묵직한 영국식 과일 케이크, 그래니 스미스 사과와도 잘 어울린다 함. 이 속성 버전은 랭커셔 지역 밖에서도 만들 수 있음.

⑤ Beacon Fell Traditional Lancashire PDO
저온살균 우유 사용. 6개월 숙성.
유럽연합에서 '보호해야 할 유럽의 지역 특산품PDO'으로 지정한 특별한 치즈. '크리미 랭커셔'나 '테이스티 랭커셔'와 같은 계열이나, 원료 수급지와 제조법을 생산자 임의로 변경할 수 없고 ☞ 정해진 전통 레서피를 엄격히 고수해야 함. 신선하고 고소한 우유맛이 나면서 기분 좋은 약간의 산미가 느껴짐. 식감도 부드러움. 서울우유 <앙팡아기치즈> 맛이 이 치즈와 약간 비슷함. 차이브chive 맛과 유사한 뒷맛이 남음. 다쓰 부처 입맛엔 아주 맛있었음. 그냥 먹어도 맛있으나, 부드럽게 잘 녹기 때문에 그라탕이나 리조또에 넣거나 영국식 훈제 생선smoked haddock에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함.

 

Mrs Kirkham's Farmhouse Lancashire
전통 방식으로 만듦. 천으로 감싸 버터를 바른 뒤 3개월간 숙성. 살균 안 한 생유로 만드나 수분이 적은 경성 치즈이므로 안전함. 커크엄 집안에서 3대째 집안 고유의 레서피로 만들어 독점 공급하는 치즈임. 공장creamery 제품이 아닌 소규모 농가farmhouse의 수제 치즈라 수퍼마켓에서 파는 랭커셔 치즈 중에서는 값이 가장 비쌈. 허나, 다쓰 부처 입맛에는 비싼 돈 값을 좀 못하는 듯함. 신맛, 짠맛이 많이 나고 우마미가 너무 강해 마치 식초에 소금과 미원을 푼 듯한 맛이 남. 향은 아주 좋음. 신선한 우유 향, 젖산lactic acid 향, 버터스코치 향이 남. 그냥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우나 파이나 요리에 넣으면 풍미가 잘 삶.

 


*  *  *



치즈 보드에 올려 그냥 먹기에는 ⑤번이 가장 낫습니다. ⑤번에 ①②번 요소가 이미 들어 있으면서 맛이 더 좋거든요. ④번의 크럼블리 랭커셔는 30g 이상 먹기가 힘들 정도로 맛이 많이 시고 씁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⑥번도 시큼하면서 우마미가 강해 그냥 먹기엔 부담스럽습니다. 값도 비싸고요. 폭탄 모양의 ③번은 일반 수퍼마켓에선 구하기 힘들 겁니다.


요리에 쓰실 목적이라면 ②번, ⑤번, ⑥번이 좋겠습니다. ⑥번은 맨입에 먹기에는 맛이 다소 자극적이지만 풍미가 짙어 파이나 오븐 요리에 쓰면 좋습니다. ⑤번이 PDO 지정 치즈라서 ②번보다 비쌀 것 같지만 값은 동일합니다. PDO 치즈들이 반드시 값이 더 비싼 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알아 두시면 좋겠습니다.


아래에 잘 바스러진다는 ④번의 크럼블리 랭커셔, 부드러운 ⑤번 비콘 펠 랭커셔, 그리고 풍미가 짙고 자극적인 ⑥번 '미시즈 커크엄 팜하우스 랭커셔' 사진을 올려 드릴 테니 눈으로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건 크럼블리 랭커셔.
우툴두툴, 잘 바스러지게 생겼죠.

 

 

 

 

 

 

 



자르고 났더니 부스러기가 많이 생겼습니다. 샐러드 같은 데 부숴 넣으면 편하다고는 하나, 다른 랭커셔 치즈에 비해 맛이 많이 떨어지므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대량생산을 위해 현대에 와서 추가시킨 '속성' 어린 치즈입니다. 깊이가 없어요.

 

 

 

 

 

 

 



이건 유럽연합에 의해 보호 받고 있다는 'Beacon Fell Traditional Lancashire'. 표면이 탄력 있고 쫀쫀합니다.

 

 

 

 

 

 

 



서울우유 <앙팡아기치즈>와 비슷한 기분 좋은 산미가 느껴지면서 신선하고 고소한 우유맛이 풍깁니다. 오래된 전통 치즈입니다.

 

 

 

 

 

 

 



탄력이 있고 쫀득거려 치즈를 자르고 나면 이렇게 칼에 떡 붙기도 합니다. 부스러기가 잘 안 생겨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잘 바스러지는 치즈가 쫀득한 치즈에 비해 나쁜 치즈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같은 랭커셔 치즈라 해도 종류와 질감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설명하려는 거지요.

 

 

 

 

 

 

 



이건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미시즈 커크엄 팜하우스 랭커셔'. 생유를 써서 만들고 천으로 감싸 버터 칠을 해준 뒤 3개월간 숙성시키는 프리미엄 제품입니다. 맛이 자극적이고 풍미가 짙어 요리용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잘 부서지면서도 입에서 부드럽게 씹힙니다. 짜고 시고 우마미가 많이 납니다.

 

 

 

 

 

 

 



보슬보슬하죠? 칼로 썰 때 이것도 크럼블리 랭커셔처럼 부스러기가 많이 생깁니다.

 

 

끝으로, 랭커셔 치즈로 만들 수 있는 맛있는 영국음식 하나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단단이 좋아하는 영국 요리사 사이먼 홉킨슨의 ☞ 랭커셔 치즈 앤드 어니언 파이입니다. 랭커셔 지역 전통 음식으로,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 주셔서 즐겨 먹던 추억의 음식이라고 하네요. 달걀이 안 들어가는 파이입니다. 집에 마침 달걀이 똑 떨어졌거나 방사란free-range eggs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이 파이를 만들어 보시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랭커셔 치즈를 구하기 힘들면 약간의 산미와 신선한 우유맛이 풍기는 부드러운 치즈 어떤 것이든 골라 쓰시면 되겠습니다. 치즈와 양파가 든 가정식 파이. 이거 맛없을 리가 없죠. 수퍼마켓에 랭커셔 치즈가 떨이로 나오면 무조건 사다가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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