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작 비스킷 앤잭 비스킷 ANZAC biscuits

 

 

 

 

 

명절과 기념일에 맞춰 과자와 케이크 열심히 챙겨 먹는 단단이 올해는 세월호 사고로 혼이 다 빠져 있는 통에 4월 25일 안작 데이를 놓쳤습니다. 영국인들은 '안작'이라고 발음하는 것 같던데 한국에서는 미국 발음인 '앤잭'으로 표기를 하더군요. 당사자인 호주와 뉴질랜드 사람들은 어떻게 발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작 데이에 관해서는 오래 전에 글을 한번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 날을 기념하여 먹는 안작 비스킷 레서피도 같이 올렸으니 참고하세요.
☞ 안작 데이, 안작 비스킷

 

올해는 그냥 시판 비스킷을 사 먹기로 했습니다. '오쎈틱'이라 써 있네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울퉁불퉁 못난이 과자예요. 값도 쌉니다. 80펜스, 우리돈으로는 1,400원 정도, 영국인들 체감 물가로는 800원 정도. 이 정도면 영국에서는 가장 저렴한 티타임 비스킷 군에 속합니다. 수익금의 4%는 참전 용사들의 복지에 쓰인다고 써 있었습니다.

 

 

 

 

 

 

 

대량생산하는 공장 과자이니 성분은 뭐 너무 기대하시지 않는 게 좋아요. 첨가물이 잔뜩 들었는데, 주 재료에 귀리oat와 골든 시럽이 들었다는 게 핵심입니다. 질감은 거칠지만 향은 한국에서 먹던 '빠다코코낫'과 좀 유사합니다. 말린 코코넛 채는 후대에 와서 넣은 재료 같네요. 많이 달아요. 제가 예전에 쓴 글을 참고하셔서 집에서 직접 구워 드시는 것이 맛도 더 낫고 몸에도 덜 나쁠 겁니다.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료라곤 밀가루, 납작 누른 귀리, 골든 시럽이 전부였던 고향의 아낙들이 이 세 가지 재료만 갖고 정성껏 비스킷을 구워 전장의 남정들에게 전했다는 애틋한 이야기. 그리고, 이 비스킷으로 얼마나 많은 뉴질랜드와 호주의 군인들이 위로를 받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짧막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과자의 힘이란 참으로 위대하죠. 제가 얼마 전 영국군의 탱크 속 티타임을 소개하면서 영국에서는 전장의 군인들에게 비스킷을 위문품으로 보내는 풍습이 있다고 했었죠? 다 큰 어른인 우리들도 가끔씩은 과자 한입 베어물고 순식간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로 여행을 떠날 때가 있는데, 하물며 전쟁터에서 베어문 과자의 힘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향 생각, 어머니 생각, 애인 생각, 누이 생각에 겨우 버틸 수 있었겠지요. 군필자인 다쓰베이더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의 군대에서는 초코파이 하나 때문에 종교를 바꾸는 이도 수두룩 하다는데요. ㅋ 과자의 힘이란 그런 겁니다.

 

 

 

 

 

 

 

올해로 1차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연초부터 이를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TV 다큐멘터리와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100주년을 맞았으니 참전 용사들 중 남은 이는 이제 한 명도 없고 그저 기억 속에 자리할 뿐. 우리는 일제에게 한참 수탈을 당할 때였죠. 가만, 1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어떤 것들이 있었죠?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다시 챙겨 봐야겠습니다. <캔디 캔디>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다운튼 애비>도 떠오르고,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워 호스War Horse>도 떠오릅니다. 직접 겪은 전쟁도 아닌데 마치 어제 내가 겪은 일인 양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 다쓰베이더가 요리하다 말고

고추 꼭지로 만들어 준 빠알간 양귀비popp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