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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오레오, 왜 그토록 까만가

단 단 2014. 5. 30. 00:00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과자, 오레오. 이게 미국 과자이지만 역사가 제법 오래됐죠. 1912년생입니다. 백살이 넘었어요. 시판 비스킷 중 가장 까맣지 않나 싶은데, 너무 까매서 초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과자 표면에 선명하게 돋을새김된 화환wreath이 섬세하고 아름다워 제가 좋아합니다. 바로크 문양의 영국 '커스타드 크림 비스킷'과 함께 가장 정교하고 예쁜 공장 과자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이 오레오는 보는 것만 기분 좋지 사 먹고 싶은 생각은 또 들지가 않습니다. 어릴 적엔 이런 양과자는 정말 귀한 것이었죠. 그런데도 오레오만큼은 썩 즐기지를 않았는데, 쌉쌀한 맛의 까만 과자는 맛있었으나 하얀 크림을 싫어했었습니다. 크림이란 자고로 기름지고 부드러워야 하거늘, 설탕 입자 같은 무언가가 지근지근 씹히는 게 어린 마음에도 영 못마땅했던 거죠. 과자가 바삭거리고 지근거리는 건 괜찮은데 실크처럼 부드러워야 할 크림에서 모래알 같은 입자가 느껴지는 건 참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요즘은 어떤가요? 오레오의 하얀 크림에서 아직도 모래 같은 게 씹히나요?


각설,
오레오 쿠키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 -
어떻게 그토록 까말 수가 있는가.

 

집에서 베이킹 하시는 분들은 한 번쯤 궁금해하셨을 겁니다. 일단 영국에서 판매되는 오레오의 상품 설명과 성분표를 한번 보시죠.

 

포장의 광고 문구:
Suitable for vegetarians.
Chocolate flavour sandwich biscuits with a vanilla flavour filling (29%).


성분:
Wheat flour, sugar, vegetable fat and vegetable oil, fat-reduced cocoa powder 4.6%, wheat starch, glucose-fructose syrup, raising agents (potassium bicarbonate, ammonium bicarbonate, sodium bicarbonate), salt, emulsifiers (soya lecithin, sunflower lecithin), flavouring (vanillin). 끝.

 

놀라운 발견 - 색소가 안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까만색이 날 정도로 코코cocoa 분말을 많이 넣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홈베이킹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쵸콜렛이나 코코 분말을 듬뿍 넣어도 저런 까만색은 낼 수가 없지요. 설탕을 끓이면 갈색이 나긴 하지만 과자를 저토록 까맣게 보이게 할 정도는 아니고요. 어떻게 하면 저런 까만색이 나는 걸까요?

 

 

 

 

 

비밀은 코코 분말의 '양'이 아니라 코코 분말의 '종류'에 있습니다. 가정에서 쓰는 코코 분말은 대개 우리가 생각하는 그 붉은 갈색 나는, 그야말로 '코코아색'의 분말이죠. 카카오 빈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분말색이 원래 그래요. 오레오에 쓰는 코코 분말은 'Dutch-process'로 특별 가공한 제품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맨 왼쪽에 있는 가장 짙은 색 가루입니다. 카카오cacao 빈을 알칼리액에 담가 산acid을 낮추면 저런 색이 난다는군요. 신맛이 줄어드는 대신 쌉쌀한 맛이 나게 되는데, 맛을 내는 용도로 쓴다기보다 주로 색을 내는 용도로 소량 씁니다. 색소를 넣지 않고도, 코코 분말을 잔뜩 넣지 않고도 오레오에 짙은 색을 내고 매력적인 쓴맛을 더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이 더치 프로세스 코코 분말 덕분이었던 겁니다.

 

기웃이: 훗, 우린 다 알고 있었소. 댁만 모르고 있었지.
단   단: 그,그런가요? 저는 대단한 걸 알았다며 흥분하고 있었는데요.;;

 

 

 

 

 

 

 

 

더치 프로세스 코코 분말은 베이킹 소다를 쓰는 레서피에는 넣을 수 없고, 베이킹 파우더를 쓰거나 팽창제를 아예 안 쓰는 곳에만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맛과 색을 모두 생각해 두 종류의 코코 분말을 섞어 쓰는 사람도 있으니 참고하셔서 멋진 쵸콜렛 간식을 만들어 보세요. 저는 이 글 쓴 김에 아주 오랜만에 오레오를 다시 사 먹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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