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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프랑스 르블로숑 Reblochon 본문

세계 치즈

치즈 ◆ 프랑스 르블로숑 Reblochon

단 단 2014. 5. 26. 00:30

 

 

 오트-사부와Haute-Savoie [빨간색]

- 사부와Savoie [연보랏빛]

 

 

 

 

 

 

 

 

 

 

르블로숑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는 13세기부터였으나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 와서였습니다. 뒤늦게 알려진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14세기에 새로 도입된 조세법 때문입니다.

 

"오트-사부와Haute-Savoie의 알프스 목초지에서 풀을 뜯는 소들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축유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겠노라."


세금 징수원이 보는 앞에서 젖을 짜 무게를 재게 돼 있었으니 젖을 열심히 짤 턱이 있나요. 세금 징수원이 간 뒤 남은 젖을 한 번 더 쥐어짜 치즈를 만든 데서 이 르블로숑이 시작되었습니다. '탈세 치즈'인 거죠. 치즈 이름도 그래서 르블로숑re-milk. 이렇게 만든 치즈는 당연히 집에서 몰래 소비할 수밖에 없었으니 외부에 알려지지가 않았던 겁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방목세가 폐지되자 비로소 르블로숑을 밖에 내다 팔 수가 있었고 이때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르블로숑은 1976년부터 AOC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보호를 받는 대신 생산 지역, 원료 수급, 제조법을 엄격히 지켜야 하죠. 오트-사부와 지역과 사부와Sovoie 북동쪽에서만 만들고 숙성시켜야 하는데, 소규모 농가fermier, 마을 협동조합의 농장fruitiere, 공장industirel 제품 모두 가능합니다. 그 지역 고유 품종 젖소의 젖으로만 만들어야 합니다[Abondance, Tarine, Montbeliarde].

 

여름철에는 소들을 끌고 산으로 올라가 알프스의 목초를 뜯겨야 하고 겨울철에는 여름에 만들어둔 건초를 먹여야 합니다. 에멘탈 생산할 때와 마찬가지로 소에게 '사일리지silage'나 '콘센트레이트concentrates'는 먹일 수 없습니다. 이건 전문용어라서 뭔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이해하기로는, 겨울에는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말린 건초만 먹일 수 있다는 소리인 것 같았습니다. 가공한 건초를 먹이면 그 고장 젖소의 특장점인 단맛이 줄기 때문이라는군요. 살균하지 않은 생유로만 만들 수 있는 치즈이니 임산부와 노약자는 염두에 두시고요.

 

 

 

 

 

 

 

 


포장을 풀어보니 동그란 나무 판이 하나 덧대어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숙성을 제대로 마쳤다는 표시라고 합니다. 농가fermier, alpine cahlet 제품에는 포장에 녹색 도장이, 공장 제품이나 여러 떼의 젖소로부터 얻은 우유로 만든 제품에는 적색 도장이 있다고 하는데, 이 제품은 크기가 작은 개인 소비용 제품이라 그런지 도장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포장에 "협동조합fruitiere" 제품이라는 표시는 있었습니다. ☞ 르블로숑의 다양한 모습

 

 

 

 

 

 

 


    
돌덩이처럼 생겼죠? 겉은 단단해 보여도 손가락으로 꼭꼭 찌르니 쿠션처럼 푹신하게 들어갔다 나옵니다. 반연성semi-hard 치즈로 분류가 됩니다. 4주에서 12주 정도 숙성을 시킨다는데 이건 얼마나 숙성시킨 건지 모르겠네요. 숙성 초기에는 회색과 흰색의 곰팡이가 핀 분홍색과 노란색의 중간쯤 되는 연한 색 껍질이었다가 숙성할수록 테라코타 색으로 짙어진다고 하니 이건 숙성이 제법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소금물로 겉을 씻고 문질러 주는 작업을 해 곰팡이를 억제시킨다고 하나, 그렇다고 이푸아스Epoisses처럼 겉이 끈적이거나 축축하면 안 되고 말라 있어야 한답니다. 만졌을 때 말랑말랑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어야 하며 갈라지거나 쪼개져 있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원통에 천을 대고 응유curd를 담아 누르기 때문에 간혹 천이 말려들어가 옆구리에 깊은 주름이 패이기도 합니다.

 

 

 

 

 

 

 

 

 

수분이 많고 말랑말랑하나 마냥 힘없이 늘어지지는 않고 제법 단단합니다. 냉장고에서 꺼내 실온에 두면 신기하게도 껍질 바로 아래쪽이 아닌 가운데가 촉촉해지며 흐르기 시작합니다.

 

숙성이 많이 되지 않은 어린 상태일 때는 과일의 단맛이 많이 난다는데 제가 숙성 제품만 먹어 봐서 비교하기가 힘드네요. 숙성 제품에서는 일반적으로 단맛, 호두 피클의 아삭함, 야생화향, 말랑말랑 크림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난다고들 하며, 농가fermier 제품이 더 강하고 복잡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농장의 향이 물씬 나면서 오트-사부와 목초지의 야생화와 야생초 향이 느껴진다는데, 제가 오트 사부와의 목초지와 농가를 가본 적이 없으니 알 길이 있나요.

 

곁들이면 좋다고 하는 것들:


pain de campagne 둥근 사워도우 브레드

jambon de bayonne 공기에 건조한 햄

거킨 피클pickled gherkins이나 꼬니숑cornichon

Apremont 치즈 생산지의 크리습 화이트 와인

light beer

sweet cider

soft red with low tannin, 예를 들어, Merlot 같은 것

 

 

잘 녹는 성질이 있어 요리에 써도 좋다고 합니다. 빵이나 채소 위에 올려 그릴을 하거나, 수프에 올리거나, 감자와 크림과 함께 오븐에 굽거나, 라따뚜이에 넣어도 맛있다는군요. 한 조각 맛을 보겠습니다.

 

 

 

 

 

 

 

 


일단, 맛 자체는 진하고 고소해서 좋은데 소금이 많이 들어 좀 짭니다. 프랑스 치즈들은 수분이 많은 상태에서 숙성시키는 것들이 많아 안전을 위해 소금을 넉넉히 넣는 경향이 있죠. 짠맛을 뒤로 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버섯맛이 강하게 납니다. 마치 쇠고기 다시다 잔뜩 푼 버섯탕 먹는 느낌이랄까요. 버섯 중에서도 과숙해서 몸체 커지고 갓이 많이 벌어진 포토벨로portobello의 우마미와 느끼한 맛이 납니다. 짜기도 하지만 우마미가 강해 한 번에 많이 먹기는 좀 힘든 치즈입니다. 치즈의 1회 제공량을 보통 30g으로 잡는데, 이건 맨입에 30g까지 먹기가 힘듭니다. 먹고 나서 MSG 맛과 흡사한 우마미가 혀 위에 오랫동안 남아 입 안이 개운하지는 않아요.

 

저는 껍질까지 맛있게 먹었는데 간혹 껍질의 풍미가 고르지 못해 부분부분 쓴맛과 잡맛이 날 때가 있긴 합니다. 어떤 치즈들은 먹고 나면 소변뿐 아니라 체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죠. 이 치즈가 그렇습니다. 먹고 나면 숨에서도, 심지어 살에서도 르블로숑의 향이 은은히 꽤 오랫동안 납니다. 껍질을 같이 먹었을 때 특히 더 그런 경향이 있는데, 염려가 된다면 껍질은 도려내고 속살만 드시면 되겠습니다. 치즈에서 곰팡내가 나거나 심하게 꼬릿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좀 짜긴 해도 익숙하면서 순한 맛이 났는데 체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 보니 실제로는 순하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체취에서 풍기는 르블로숑의 냄새는 실제 치즈보다 더 묘하면서 관능적인 느낌을 줍니다. 치즈 속살이 쫀득거리면서도 부드럽고 매끄러운데다 버섯향에 밤꽃향까지 은은히 더해져 더욱 관능적입니다. 부부관계 소원한 분들은 저녁에 같이 앉아 이 치즈 냠냠 먹고 주무세요. 아침에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으음... 멀쩡히 잘 쓰다 또 19금으로 끝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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