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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스웨덴 붸스테보텐소스트 Västerbottensost 본문
▲ Burträsk, Sweden
영국에서 스웨덴 치즈를 다 맛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영국에는 정말 유럽의 맛있다는 치즈는 다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치즈 전문점도 아닌 수퍼마켓에서 이런 생소한 이름의 스웨덴 치즈를 다 살 수가 있다니요. 자국 수요를 감당 못해 수출은커녕 스웨덴 사람들조차도 쉽게 구하기 힘든 치즈라고 들었는데 영국 수퍼마켓에 이렇게 떡 하니 놓여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좋다는 식재료 죄 구해다 갖다 놓는 영국 수퍼마켓들의 바지런함은 미슐랑 스타 셰프들도 다 치하를 할 정도입니다.
이 치즈를 만드는 회사의 마케팅 전략으로 다음과 같은 탄생 비화가 떠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사모하는 한 청년의 끈질긴 구애로 정신이 산란해진 농가의 처녀가 치즈 만드는 솥을 불 위에 올려두고 자꾸만 깜빡 잊게 되어 불을 계속해서 꺼뜨리게 됩니다. 반복해서 불을 새로 지펴 데워야 하니 치즈 만드는 시간이 보통 때보다 더 걸리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치즈가 풍미가 꽤 강하고 맛이 좋았더랍니다. 입소문이 나게 되어 그 이후부터는 계속 이렇게 만들게 되었다는 거죠. 어째 록포르나 고르곤졸라 이야기와 비슷하죠.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사랑에 눈먼 젊은 청춘들이 사고 쳐서 만들었다는 치즈가 왜 이렇게 많은지 식상해 죽겄어요, 아주.
생긴 게 꼭 파인애플 썰어 놓은 것 같죠? 맛도 딱 파인애플 맛이 납니다. 그간 소개해드렸던 치즈들 중 파마산이나 영국의 올드 윈체스터old winchester, 서섹스 차머sussex charmer 같은 것들이 모두 파인애플 맛이 강하게 나는 치즈였는데, 이 붸스테보텐소스트한테는 다들 명함도 못 내밀겠습니다. 이 치즈는 마치 농축 파인애플 시럽에 어린 체다를 담가 오래 묵혔다가 꺼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파인애플 맛과 향이 강하게 납니다.
칼로 썰면 숭숭 난 작은 구멍들 사이에서 즙이 배어나와 칼을 적십니다. 확대한 치즈 사진에서 옆면을 자세히 보세요. 물기가 촉촉하죠? 처음엔 어디서 자꾸 물이 묻는 건지 한참을 의아해했죠. 질감도 좀 특이합니다. 단단한 듯하면서도 잘 바스라지는데 씹으면 또 꼬득꼬득한 느낌이 납니다. 쫄깃한 느낌과는 달라요. 질감이 특이하고 맛있어서 자꾸 먹고 싶어집니다. 사 오자마자 썰어서 맛을 보고 나서는 한국 가면 내 평생 두 번 다시 맛볼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가서 한 조각을 더 사 왔습니다. 떨이로 팔고 있었거든요. 스웨덴에서도 구하기가 힘들어 값이 매우 비싸다고 하는데 운 좋게 떨이로 두 조각이나 샀습니다. 한 조각은 그냥 먹고 나머지 조각으로는 파이를 만들었습니다. 스웨덴 사람들이 이 치즈로 파이를 만들어 즐겨 먹는다길래 호기심에 한번 만들어보았죠.
이건 붸스테보텐소스트 회사 누리집에 있던 붸스테보텐소스트 파이 사진이고요,
이건 제가 구운 붸스테보텐소스트 파이입니다. 어이구, 혀 꼬여.
노릇노릇 좀더 균일하게 구워졌네요.
한 조각 잘라봅니다. 참, 파이의 나라 영국에서는 통계에 쓰이는 원 그래프를 '파이 차트pie chart'라고 부르잖아요? 모국어가 영어에 오염될까 극도로 경계하는 프랑스인들은 이를 '꺄몽베흐le camembert'라고 부른다는군요. 캬핫, 꺄몽베흐. 이태리에서는 '또르따 그래프grafico a torta'라 부른다 하고요. 캬핫, 또르따. 이거 저만 모르고 있던 사실인가요? 저 이거 알고 나서 혼자 얼마나 신기해했는지 몰라요. 그럼 우리도 '원 그래프'라 멋없게 부를 게 아니라 '빈대떡'이라 불러야 마땅하지 않겠어요? 어느 나라든 동그랗게 부치거나 구운 음식은 꼭 있으니 각국이 자국 음식으로 파이 차트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록달록 세상.
겉은 구운 갈색이 나지만 속은 뽀얗습니다. 크림과 달걀과 치즈를 섞은 부드러운 혼합물이라 보들보들 부드러운 달걀찜 질감이 납니다. 프랑스의 키쉬 로렌quiche lorraine이나 영국의 랭카셔 치즈 어니언 파이처럼 진한 맛은 안 나지만 대신 촉촉하고 섬세하고 가벼워서 우아한 느낌이 좀 납니다. 이 파이의 조리법을 포함해 이 붸스테보텐소스트 치즈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 ☞ 붸스테보텐소스트 누리집에 많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누리집을 아주 잘 만들어 놓았네요. '스칸디나비안 쉬크'가 줄줄 흐릅니다. 아, 정말이지, 이 글 쓰면서 치즈 이름 발음하기 참 힘들었습니다. 수출을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요리에 넣어도 맛있었지만 다쓰 부처는 그냥 먹을 때가 훨씬 더 맛있었습니다. 생으로 먹었을 때 물씬 나는 그 기분 좋은 파인애플 향이 요리에서는 반감되는 느낌이 있거든요. 어쨌거나 치즈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겨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
▲ 으응? 하루 묵혔다 그 다음날 먹으니 더 맛있잖아?
(삼일째는 더 맛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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