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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페스토 절구 본문
영국에 와서 수퍼마켓 첫 나들이를 하게 된 단단.
온갖 향초herb 화분들을 큰 것, 작은 것, 크기별로 늘어놓고 파는 것을 보고 흥분. 바질도 이태리 바질, 그리스 바질, 태국 바질이 따로 있질 않나, 심지어 작은 고추 화분까지. 건조 향초는 아예 셀 수도 없을 정도. 이야, 이거, 앞으로 영국에서의 식생활이 무척 기대되누나.
처음에는 푸드 프로세서를 써서 페스토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영국의 푸디들은 공장에서 분쇄한 밀가루를 안 쓰고 전통 방식으로 거대한 맷돌을 써서 천천히 간 스톤그라운드stoneground 밀가루를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공장제 밀가루는 롤러가 고속 회전할 때 발생시키는 열에 의해 표면이 살짝 익어 풍미와 영양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군요. 영국에서는 그래서 스톤그라운드 밀가루로 만든 과자들도 수퍼마켓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도 혀와 목구멍이 꽤 예민한 사람인데, 아직 공장제 밀가루와 스톤그라운드 밀가루 맛 구분은 잘 못 합니다. 비싼 스톤그라운드 밀가루를 쓰는 과자들은 어차피 고급 과자들이기 때문에 맛도 신경 써서 잘 냅니다.
▲ 스톤그라운드 통밀로 만든 영국 아티잔 비스킷들
스톤그라운드 밀가루 얘기를 듣고 나니 '그럼 페스토도 혹시?'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본고장 페스토의 모습이 궁금해 찾아 보았더니 역시나 페스토의 고향 리구리아 제노바에서도 번거롭지만 절구와 공이를 써서 페스토를 만들고 있었더군요. 그럼 그렇지. 그렇다면 나도 집에 있는 돌절구에.
※ 힘이 부치거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그냥 푸드 프로세서를 쓰셔도 됩니다. 워낙 맛있는 소스라서 푸드 프로세서로 갈아 만든 것도 흠잡을 데 없이 맛있습니다. 푸드 프로세서 용기와 회전 날개를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혔다 쓰면 고속 회전 시 발생하는 열을 약간은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고요. 'on' 버튼을 눌러 연속으로 갈지 않고 'pulse' 버튼을 이용해 간헐적으로 갈아도 열을 덜 발생시킬 수 있다 하고요. 현지인들도 귀찮을 땐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구라고 다 같은 절구가 아니라는 사실.
절구에 관해서는 명필도 붓을 가리겠구나, 절구도 꼭 필요한 것들은 용도별로 갖출 필요가 있겠구나, 생각이 곧 들기 시작했습니다. (태국에서 커리 페이스트 만들 때 쓰는 절구는 좁고 깊지요. 일본에서는 또 절구 안쪽에 빗금이 많이 그어진 도기 깨절구를 쓰고요. 어릴 때 우리 집에도 있었어요.)
사진에 있는 화강암 절구는 얕아서 내용물이 수시로 튀어나가고 표면이 너무 매끄럽게 다듬어져 페스토를 만들 때 잘 갈리지가 않고 계속 겉돕니다. 향신료를 갈기에는 훌륭한데 페스토를 만들기엔 썩 적합하지가 않더란 말이죠.
게다가 가장 큰 단점은 굉음을 낸다는 것.
낮이라 해도 아랫집 눈치가 보여 절구질을 어디 마음껏 할 수가 있어야죠.
절구도 돌, 공이도 돌이다 보니,
땅! 땅! 땅! 땅! 땅! 땅! 땅! 땅! 땅! 땅! 땅!
으악, 귀 아파.
그래서 견디다 못 해 페스토용 절구를 샀습니다. 이태리 리구리아 지역에서 페스토 만들 때 쓰는 전통 절구입니다. 절구는 대리석으로 만들고 공이는 나무로 만듭니다. 아, 이게 이래봬도 이태리 까라라Carrara산 마블입니다. 손잡이가 달린 것이 특이하죠. 작업할 때 절구를 계속 돌려줘야 하므로 손잡이가 있으면 편합니다. 페스토를 만들 때는 절구질을 상당히 오래 해야 하기 때문에 공이의 재질과 형태도 중요합니다. 올록볼록 부드럽게 깎은 나무 공이가 손에 착 감기는 것이 얼마나 따뜻하고 좋던지요.
집에 있는 화강암 절구보다 우묵한데다 표면이 까슬까슬 마감돼 내용물이 정말 잘 갈립니다. 사진상으로도 표면의 질감이 느껴지죠? 페스토 만드느라 처음에 마늘과 잣을 넣고 공이를 몇 번 돌렸더니, 엥? 벌써 다 갈렸어? 아주 그냥 마늘 크림이 되었네? 성능이 끝내줍니다. 대리석이라 화강암에 비해 무른데다 공이마저 나무 재질이다보니 절구질을 하면 땅땅 거리지가 않고 둑! 둑! 둑! 둑! 둑! 둑! 적! 적!
진작 좀 사서 쓸걸.
평생을 잘 쓰다가 죽기 직전 조카들 중 요리에 가장 소질 있는 녀석한테 물려주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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