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까수엘라와 테라코타 타파스 그릇에 대하여 Cazuela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까수엘라와 테라코타 타파스 그릇에 대하여 Cazuela

단 단 2014. 8. 12. 00:00

 

 

 

 

 

영국 TV에서는 음식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내로라 하는 요리사들이 나와 요리를 시연하고, 타국 음식 기행도 보여주고, 요리 경연 대회도 많이 엽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도 영국 프로그램을 가져다 각색해 쓰는 거죠?

 

자국 음식뿐 아니라 남의 나라 음식 이야기도 참 많이 하는데, 역사와 엮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대개는 영국의 이름난 요리사들이 타국으로 음식 기행을 떠나는 형식으로 제작하곤 합니다. 요즘은 여름 휴가철이라서 영국인들이 즐겨 찾는 휴가지 음식들을 많이 보여줍니다. 지중해 쪽과 동남아시아 쪽으로 많이들 갑니다.

 

지중해 음식 기행 하면 반드시 나오는 그릇이 있죠. 바로 까수엘라입니다. 낮은 온도에서 구운 테라코타 막그릇인데, 음식이 닿는 면에는 유약을 발라 그릇과 음식을 동시에 보호하고, 음식이 닿지 않는 밑바닥은 그냥 두어 그릇이 숨을 쉴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밑바닥은 마치 마당에 있는 토기 화분 같은 색과 질감이 납니다. 우리나라 뚝배기 같다고 보면 되려나요? 사진에 있는 것 같은 소테팬saute pan 형태의 귀달이 그릇은 대개 직불에 올려 쓰는 냄비 역할을 하는데, 채소와 고기를 넣고 장시간 푸욱 끓이는 스튜를 조리하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우리나라 곰솥 같은 우묵한 그릇도 물론 있고요. 형태와 크기가 다양합니다.

 

 

 

 

 

 

 



제가 이 까수엘라를 참 좋아해서 잘 만들어진 질 좋은 것을 발견하면 하나만 사질 않고 여러 개를 사 두는 습관이 있습니다. 야외에서 기분 내며 지중해 요리나 남미 요리 좀 즐겨보고 싶어서 여러 개 샀어요. 꼭 조리를 하지 않더라도 음식을 그저 담아 내기만 해도 근사할 것 같죠. 지중해 샐러드를 수북이 담아도 잘 어울릴 것 같고요. 까수엘라도 좀 더 보기 좋게 잘 만든 것과 질 좋은 것들이 있으니 믿을 만한 판매처에서 사시는 게 좋습니다. 저는 백화점에서 여름 지나 떨이할 때 사 두었습니다.

 

 

 

 

 

 

 

 

 



까수엘라는 스페인과 남미 쪽에서 특히 많이 쓰는 그릇입니다. 우리나라 뚝배기처럼 그릇 이름이 될 수도 있고 음식 이름이 될 수도 있지요. 남미의 까수엘라를 소재로 한 이런 매력적인 동화도 다 있습니다. 농가의 처녀가 농장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까수엘라에다 맛난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로, 아름다운 일러스트에 참으로 흐뭇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TV로 스페인 음식기행 보고 까수엘라를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 동화책을 보고는 바로 돈 들고 뛰쳐나갔습니다.

 

 

 

 

 

 

 



테라코타 그릇에는 조리용 까수엘라 외에 타파스(따빠스)용 그릇도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스페인의 만체고 치즈 이야기를 하면서 타파스 소개를 했었지요. 양쪽에 귀가 달리지 않은 작은 테라코타 그릇들인데, 한국의 반찬 그릇이나 안주 그릇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완성된 요리를 담아 그냥 낼 수도 있고, 오븐에 넣어 간단하게 굽거나 그릴을 한 뒤 낼 수도 있습니다. 테라코타 그릇은 크게 열을 가할 수 있는 조리용과 단순히 음식을 담아 내기만 할 수 있는 그릇,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뉘고, 조리용은 또 직불용과 오븐용, 이렇게 두 가지로 다시 나뉩니다. 살 때 잘 알아보고 사셔야 합니다. 이런 타파스용 작은 그릇들 중에는 불에 못 올리게 하는 것들이 많거든요. 저는 전열판hot plate에 올리거나 낮은 온도의 오븐에 넣어 잘 쓰고 있긴 하지만요.

 

조리용은 원래 오븐과 직불 둘 다 가능한 제품이 많은데, 판매자들이 깨지거나 금 갔을 경우 무상보증 해주기가 싫어 어느 한 쪽만 선택해 사용하도록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옷 회사들이 의류 세탁 표시를 과하게 하는 것과 같은 전략이죠. 세탁 후 변형 문제로 소비자 항의가 들어올까봐 굳이 드라이 클리닝 하지 않아도 되는 옷들까지도 무조건 비싼 드라이 클리닝을 하도록 유도한다잖아요. 저는 오븐에서만 쓰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전열판에도 올려 잘 쓰고 있으니 잘 판단하셔서 자유롭게, 그러나 조심히 잘 사용해보세요. 깨졌다고 제 탓 하지 마시고요.

 

 

 

 

 

 

 



이건 얼마 전에 제가 집에서 간단하게 즐겨본 타파스이고요,

 

 

 

 

 

 

 

 

 


여럿이 모여 파티를 할 때는 이렇게 잔뜩 늘어놓고 즐기면 좋지요.

 

 

 

 

 

 

 

 


꿈과 환상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끔찍하게 까다로운 주의사항과 관리법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일단, 사진에 있는 올리브 그릇을 잘 보세요. 이 테라코타 그릇들은 저온에 구운 막그릇입니다. 고급 그릇이 아녜요. 고온에 구워 소결화가 진행된 여느 그릇들과 달리 조직이 치밀하지가 못하고 성깁니다. 살 때는 멀쩡해 보이는데 오래 쓰다 보면 충격을 가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금이 생깁니다. 담았던 음식의 기름기가 틈으로 스며 저런 그물 무늬가 나타나게 되죠. 세월의 흔적이라 생각하고 멋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음식물이 스민 거니 아주 위생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까수엘라를 사 와서 처음 사용하기 전에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루 정도 물에 담가 그릇을 흠뻑 적셔 주셔야 합니다.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그릇은 수분이 거의 없이 바싹 말라 있는데, 이 상태에서 불 위에 올려놓고 조리를 하면 너무 건조해 그릇이 터집니다. 반드시 물을 먹여줘야 해요. 기공이 많은 그릇이라 물을 잘 먹습니다. 이 물 먹이는 작업을 거치게 되면 장점과 단점이 둘 다 생기게 되는데요, 그릇과 그릇 안에 있는 수분이 같이 달궈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음식을 타지 않게 조리할 수 있습니다. 그릇이 두툼한 데다 뜨거운 수분을 머금고 있어 열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뚝배기 써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조리를 마친 음식을 까수엘라째 식탁에 올리면 정말 오랫동안 뜨거운 음식을 즐길 수 있지요.


단점은 훨씬 많습니다. (꽈당) 조리하는 동안 유약이 발리지 않은 아래 쪽에서 계속해서 수분이 빠져나갑니다. 직불에서는 별 문제가 안 되는데 전열판에서는 문제가 됩니다. 조리하는 내내 전열판에 물이 묻고 치익치익 물이 끓어 증발하는 소리가 나서 시끄러워요. 그릇 아래에서 계속 수분이 증발해 나오기 때문에 식탁에 올렸을 경우 식탁 위에도 송글송글 물방울을 남깁니다.

 

열전도율이 너무 떨어져 그릇을 달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조리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일단 달궈지면 위에서 말씀 드렸듯 열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요. 열 반응이 느려 몇 시간씩 걸려 방치하듯 조리하는 시골풍 스튜에나 적합하지 빠릿빠릿하게 불조절 해가며 만드는 요리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숨구멍이 많기 때문에 세척 시 세제를 쓸 수 없는 것도 단점입니다. 기름기를 물로만 한참 씻어내야 하죠. 갑작스런 온도 차에 의한 파손도 주의하시고요.

 

가장 큰 단점은, 물이 스미듯 음식물도 그릇에 스민다는 것. 이게 정말 문젠데요, 스튜 같은 수분 있는 요리를 하고 나면 그 그릇에는 앞으로 그 음식만 해야 합니다. 다른 음식을 하게 되면 전에 했던 음식 냄새가 남아 새 음식 맛에 영향을 상당히 많이 미칩니다. 스페인이나 남미의 시골집에서는 늘 그 음식이 그 음식인 데다 쓰는 재료들도 항상 비슷하니 문제가 안 되지만 다양한 음식을 해먹는 현대의 도시인들에게는 문제가 됩니다. 자사호라 생각하시고 하나의 까수엘라에는 한 가지 요리, 혹은 비슷한 계열의 요리만 하시는 게 좋아요. 심지어 바싹 말려 그릇장에 넣어 놓아도 음식 냄새가 찹니다.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 같은 기름 많이 두른 요리 뒤에는 기름 냄새가 오랫동안 남게 되고요. 바싹 마른 채로 보관했다가 오랜만에 다시 쓸 때는 또 물에 담가 적셔줘야 합니다.

 

 

 

 

 

 

 



그릇을 쓰고 나서는 바로 씻어주는 것이 좋은데, 세제는 쓸 수 없고, 씻고 나서는 물기를 잘 말려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월로 물기만 닦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사진에서처럼 약한 불에 올려 살짝 구워서 말려줘야 해요. 설거지 마친 빈 그릇을 불에 올리면 신기하게도 그릇에서 물이 스며 나와 저렇게 끓으면서 마릅니다. 불에 구워 말리고 나면 그릇도 가벼워지죠. 이 작업을 생략하고 그냥 그릇장에 꽁꽁 넣어 두면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됩니다. 이게 뭡니까? 네에, 곰팡이죠. 으악입니다. 아무리 물로 빡빡 잘 씻어도 불에 구워 말려주지 않으면 숨구멍으로 스민 음식물과 수분이 결합해 이렇게 곰팡이가 피기도 합니다. 뚝배기도 잘못 보관하면 곰팡이 필 때가 있죠. 곰팡이가 피었어도 말끔히 씻어 팔팔 끓여준 뒤 구워주면 다시 쓸 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고요. 까수엘라를 많이 쓰는 지중해나 페루 칠레 같은 남미 국가는 비교적 건조하죠. 영국도 의외로 건조한 나라라서 약간만 신경 써서 관리해주면 곰팡이 문제는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블로그 글 쓰려고 일부로 피워봤어요. 게다가 매일 쓰는 집에서는 까수엘라에 곰팡이가 필 틈이 없지요. 장마철이라는 무시무시한 시공간이 있는 한국에서는 여름철엔 주의를 좀 해야 할 겁니다. 이쯤 되면 그릇이 아니라 상전이죠. 뚝배기와 까수엘라를 둘 다 써 본 경험에 의하면, 까수엘라가 좀 더 예민한 것 같아요.

 

 

 

 

 

 

 



문제는 또 있습니다. 테라코타 색만 보니 지겨워서 가끔은 알록달록 선명한 색 입힌 그릇들에 눈이 갈 때가 있지요. 그런데 이때는 또 유약의 납 성분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선진국에서는 규정과 검사가 까다로워 이런 염려가 적지만 터키의 바자르나 모로코 마라케시 등에서 알록달록 반짝반짝 예쁘다고 출처와 성분을 알 수 없는 그릇이나 타진tagine을 함부로 사 와서 썼다간 큰일 날 수도 있어요. 그런 곳들의 그릇들이 전부 다 문제 있는 건 아니겠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흙과 유약 성분을 알아볼 재간이 없으니 그냥 다 못 믿을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합니다. 저 같은 기우는 모로코에 여행 가서 시장통에 널려 있는 타진을 직접 사 오느니 차라리 이곳 영국 백화점에서 정식으로 통관 절차를 밟아 중금속 검사를 거쳐 들여온 타진을 사겠습니다. 사진에 있는 파란색 그릇은 이곳 <막스 앤드 스펜서>에서 산 타파스 그릇입니다. 확실히 채리티 숍에서 막 집어온 것들과 백화점에서 산 것들이 마감도, 유약 처리도, 질도 달라요. 당부당부 신신당부 - 저개발국에 여행 가셔서 예쁘다고 길거리에서 식기 함부로 사 오시면 안 됩니다. (참, ☞ 이 문제는 그 뒤 어떻게 됐나요? 방송국의 추가 사과 방송이 있든, 회사측의 석고대죄가 있든, 둘 중 하나가 있어야 할 텐데 왜 아무 소식이 없는 걸까요?)

 

 

 

 

 

 

 

 


단단: 자, 어떻습니까? 이래도 테라코타 그릇을 사시렵니까?
기웃이: 이보오, 주인장. 자기 혼자만 기분 내면서 이국 그릇 쓰려고 지금 블로그 이웃들에게 겁 주는 거요?
단단: 우히힉, 들켰네!

 

 

 

 

 

 

 

 


테라코타 그릇을 들이는 건 마치 반려동물을 들이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쁘고, 보면 기분 좋고, 같이 있으면 행복한데,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합니다. 잘 관리할 자신만 있다면 질 좋은 걸로 들이셔서 집에서 이국 정취 한껏 느끼며 식도락을 즐기셔도 좋지요. 조리용 까수엘라는 관리가 너무 까다로우니 일단은 보류하시고 타파스용 작은 그릇이나 대여섯 개 먼저 장만하셔서 시험 삼아 한번 써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용하신 뒤에는 바로바로 씻어서 불에 잘 구워 말려주시고 통풍 잘 되는 곳에 보관하시면 됩니다. 자주 사용하시는 게 가장 좋긴 하지만 여의치 않다면 틈틈이 잘 있나 꺼내 확인이라도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쓴 글 중에 구리 냄비에 관한 글도 있으니 한번 보세요. 아, 이 녀석도 또 만만찮은 녀석이에요.

 



구리 냄비에 관하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