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지중해 샐러드 ⑤ 향기로운 모로코 당근 샐러드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지중해 샐러드 ⑤ 향기로운 모로코 당근 샐러드

단 단 2014. 8. 25. 00:00

 

 

 

 

 

지중해 샐러드 5탄입니다. 유럽을 돌고 이제 지중해 남단의 북아프리카로 왔습니다. 북아프리카 샐러드는 서쪽의 모로코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모로코 요리책들을 죽 훑어보니 이 사람들은 샐러드 주재료로 당근을 많이 쓰더라고요. 당근 샐러드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익힌 것도 있고, 생 샐러드도 있는데, 오늘은 당근과 오렌지를 활용한 생 샐러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책에서 본 샐러드인데, 재료 설명을 좀 더 자세히 해볼게요.

 

 

 

 

 

 

 



먼저, 당근.
영국 수퍼마켓에서는 다양한 당근 품종을 볼 수 있습니다. 새끼손가락만 한 미니 당근서부터 저런 꺽다리 당근까지, 모양도, 크기도, 여러 가지입니다. 이 모로코 당근 샐러드를 위해서는 단맛이 특별히 많이 나는 당근을 사 왔는데, 날씬하고 예쁘죠? 영국 당근들은 대체로 당근 비린내가 적고 단맛이 많이 나는데, 이 때문에 영국 요리에 당근이 자주 곁들여지는 모양입니다. 모로코에서도 위 사진에 있는 것과 비슷한 걸 쓰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도 가늘면서 단맛 많이 나는 당근이 이제는 생겼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차피 북북 갈아서 쓸 거라 굵기는 사실 별 상관이 없고요, 맛이 중요합니다. 쓴 맛 적고 단맛이 많이 나는 당근을 구해서 쓰시면 됩니다. 가늘면서 굵기가 비교적 균일한 품종은 동전 모양으로 납작납작 썰어서 쓰기 특히 좋고 가운데 거친 심지가 없어 먹기도 좋습니다. 설탕이 없던 옛 시절 영국에서는 당근을 써서 푸딩이나 케이크에 단맛을 더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브리티쉬 티타임 클래식 케이크인 캐롯 케이크도 그렇게 해서 전해져 오는 것이고요.

 

 

 

 

 

 

 



껍질을 벗겨 고운 강판에 갈아 줍니다.

 

 

 

 

 

 

 

 

 

그 다음, 오렌지를 준비합니다.
남반구에서 온 '제철' 오렌지입니다. 영국에서는 사계절 내내 제철 농산물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남의 나라 농산물 수입해 먹는 걸 꺼려하지 않거든요. 영국은 식량 자급률이 높지 않은 나라라서 타국 농산물에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영국보다 훨씬 낮음.) 영국에서는 주로 햇빛 쨍한 스페인이나 아프리카의 농산물을 많이 수입하는데, 북반구가 겨울로 접어들면 남반구에서 생산한 것들을 갖다 먹습니다. 호주나 뉴질랜드 농산물도 그래서 심심찮게 보이곤 하죠. 이 때문에 요즘 젊은 영국인들은 농산물의 제철을 잘 모릅니다. 같은 농산물을 수퍼마켓에서 일년 내내 볼 수 있으니 그럴 수 밖에요. 원래는 달걀도 제철이 따로 있으나 늘 보다 보니 우리 도시인들의 감각이 많이 무뎌진 것과 같은 이치죠.

 

 

 

 

 

 

 



오렌지 즙을 짜서 당근에 합쳐 줍니다.
제철 오렌지라 즙이 와르르 쏟아져 나옵니다.

 

 

 

 

 

 

 

 


단맛 나는 당근에, 단맛 나는 오렌지도 부족해 설탕까지 넣습니다. 모로코 사람들이 단맛을 좀 즐기는 모양입니다. 영국에는 일반 설탕보다 잘게 분쇄한 '카스터 슈가caster sugar'라는 것이 있는데, 입자가 작아 금방 녹기 때문에 주로 제과제빵에 많이 쓰고, 이렇게 열을 가하지 않는 음식에도 많이들 씁니다. 시간 들여 많이 젓지 않아도 잘 녹죠. 영국에 계신 분들은 카스터 슈가를, 미국에 계신 분들은 '수퍼파인 슈가superfine sugar'를 쓰시면 됩니다. 이런 설탕을 구하기 힘든 분들은 그냥 일반 굵기의 설탕을 푸드 프로세서에 갈아서 쓰셔도 됩니다.

 

 

 

 

 

 

 

 

 

단맛을 돋우려면 소금도 미량이나마 넣어 줘야지요. 손가락으로 비벼 으깬 뒤 넣어 주세요. 피라미드 결정이 마치 보석 같죠?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식재료로 많이 쓰는 '오렌지 블로썸 워터'입니다. '오렌지 플라워 워터'라고도 합니다. 아까시나무 꽃과 프리지아와 엘더플라워와 자스민을 섞어 놓은 듯한 매혹적인 꽃향과 꿀향이 나는데, 향수로 쓰고 싶은 충동이 다 일 정도로 향기로워요. 로즈 워터와 함께 가장 로맨틱한 식재료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의할 점은, 알콜이 들어 있지 않은 걸로 잘 골라서 사셔야 한다는 겁니다. 알콜이 든 것들은 주세법 때문에 일단 값이 비싸죠. 아프리카나 중동의 무슬림 국가들 중에는 율법에 따라 술을 금하는 데가 많은데, 요리에 쓰는 것까지도 금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콜이 든 제과제빵용 오렌지 플라워 워터를 잘못 넣으면 쓴맛과 알콜향 때문에 요리를 망칩니다. 포장의 문구를 잘 보고 사세요. 당근 샐러드에 취향껏 양을 조절해 뿌려 주시면 되는데, 중동 식재료나 이런 향 나는 재료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일단 찔끔 뿌려 맛을 본 뒤 더 넣으시면 좋겠습니다.


위의 재료들을 잘 합쳐 섞은 뒤 마르지 않게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 주세요. 만들어서 바로 먹어도 좋지만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혔다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냉장고에서 꺼내 접시에 옮겨 담은 모습입니다.

 

 

 

 

 

 

 

 


접시에 담았으면 이제 마지막으로 계핏가루를 솔솔 뿌려 줍니다. 계핏가루는 한국에서 흔히 쓰는 맵고 기운이 센 카시아 계피 대신 은은하고 우아한 실론 시나몬을 쓰시면 좋아요. 계피에 관해서는 예전에 쓴 글을 참조하십시오.
☞ 커피와 홍차의 친구, 계피에 관하여

 

 

 

 

 

 

 



완성되었습니다. 재료와 공정을 다시 정리해 드립니다.
아래 재료로 만들면 대략 3~4인분이 나옵니다.
[1큰술 = 15ml, 1작은술 = 5ml]

 

당근
양끝을 쳐내고 껍질 벗긴 당근 110g.
고운 강판에 갈 것.


오렌지
중간 크기 한 알.
즙을 짜서 위의 당근에 합쳐 줄 것.


설탕
1/2큰술. 위의 당근 오렌지 혼합물에 뿌려서 잘 녹여 줄 것.


소금
굵은 바다 소금 한 꼬집pinch.
단맛을 돋우기 위한 것임.


오렌지 블로썸 워터
1/2큰술.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일단 1작은술만 넣어서 맛을 본 뒤 추가해도 좋음. 양을 줄이는 건 상관이 없으나 안 넣으면 본고장 맛이 안 나고 그냥 평범한 당근·오렌지 샐러드가 되는 것임. 소량이라도 반드시 넣어야 함.


계핏가루
냉장고에서 샐러드를 꺼내 그릇에 담은 뒤 계핏가루를 솔솔 뿌려 낼 것.

 

 

-

 


당근 밑에 향기로운 샐러드 즙이 있으니 잘 섞어서 숟가락으로 떠 먹으면 됩니다. 이게 곤죽이지 무슨 샐러드냐, 하실 분 많을 것 같네요. 북아프리카나 중동 음식에 이렇게 곤죽 형상을 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보기와는 달리 이국의 향이 물씬 나면서 맛있습니다. 오렌지 블로썸 워터 향이 가히 환상적입니다. 1/2큰술을 넣으라고 했지만 향수 같은 꽃향을 꺼리시는 분들은 일단 티스푼으로 양을 줄여 넣어 보시고 맛을 보아 부족하면 더 넣으시는 게 좋습니다. 아프리카나 중동 식재료를 처음 접하는 분들한테는 이 플라워 워터가 향수 같아서 좀 낯설 수도 있겠으나 핵심 재료이니 생략하면 안 됩니다.

 

재료를 보니 절대채식 하는 분vegan들도 먹을 수 있겠습니다.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혀 먹는 샐러드로, 향기롭고 단맛이 많이 나면서 아주 청량합니다. 향신료 듬뿍 넣고 만든 진한 고기 요리에 곁들이면 입을 식히는 데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독으로 먹어도 좋고요. 마치 과일과 샐러드와 주스와 디저트를 동시에 먹는 느낌이랄까요? 오렌지 즙과 꽃 향기가 참 꿈같이 달콤합니다. 제가 지금껏 살면서 먹어 본 샐러드 중 가장 로맨틱합니다. 음식을 통해 이런 향을 즐기고 있었다니, 모로코 사람들, 다시 봐야겠습니다.

 

 

 

 

 

 

 


 모로코의 어느 호텔.

참으로 낭만적인 세팅이지 않나.

영국에서는 볼 수 없는 저 부연 오렌지빛 대기.

 

 



☞ 지중해 샐러드 ① 그리스
☞ 지중해 샐러드 ② 이태리
☞ 지중해 샐러드 ③ 프랑스
☞ 지중해 샐러드 ④ 스페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