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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세계 음식

신간 "집에서 프랑스 가정식" 표지를 보고

단 단 2015. 1. 18. 00:00

 

 

 

 

 

한국인 아내와 프랑스인 남편이 쓴 프랑스 가정식 요리책이 새로 나왔다. 따끈따끈한 신간인가 보다. 다음daum 대문에 올라왔길래 궁금해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요리책 표지를 보자마자 다쓰 부처 둘 다 고개를 갸우뚱. 어? 프랑스 가정식이라는데 저기 왜 영국음식이 들어가 있어?

 

빵을 썰어 토스트 한 뒤 길죽하게 잘라 반숙 달걀에 찍어 먹는 것을 영국에서는 'Soft boiled egg with soldiers'라고 부른다. 로스트 비프나 피쉬 앤 칩스만큼이나 영국적인 음식이다. 아침에 토스트나 달걀을 먹는 것은 영국의 오랜 전통으로, 저 달걀 노른자를 뒤집어쓴 가엾은 병사는 영국인들의 아침 상에 단골로 오르는 메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음식이 왜 저기 들어가 있는 것인가.


영국인들의 지극한 토스트 사랑을 이야기하자면 -
'토스트 = 영국'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도 있을 정도다. 프랑스인들이 영국에 와서 빵을 벽난로에 바싹 구워toast 먹는 영국인들 보고 기겁을 했다는 기록도 다 있다. 심지어 토스터기도 영국의 발명품이다. 특히, 저 가늘게 썬 토스트를 영국에서는 마치 꼿꼿이 서 있는 병정 같다고 해서 'soldiers'라고 부르는데, 이를 반숙 달걀에 찍어 먹는 행위는 영국인들한테는 지극히 영국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 미국인들도 이렇게는 잘 안 해먹는다고 한다.

 

반숙 달걀로 치자면 -
반숙 달걀을 뾰족한 쪽으로 깰 것이냐, 둥근 쪽으로 깰 것이냐를 놓고 <걸리버 여행기>(1726)에 두 나라가 전쟁하는 이야기도 다 나올 정도. 오래 전부터 영국인들이 반숙 달걀을 깨서 토스트로 찍어 먹었다는 소리다.

 

고로, 단단은 양국 중 어느 쪽이 먼저 이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일단 영국인들은 이를 영국음식으로 여긴다. 나도 이 요리책 표지를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원조가 어느 쪽이건 간에, 가정식으로 뿌리를 내려 백년 이상 먹은 음식이라면 그 나라 음식으로 봐주는 것이 맞다. 고로, 영국음식이지만 동시에 프랑스 음식일 수도 있다.


그 앞에 있는 건 뭘까? 얼핏 봐서는 꼭 영국의 파운드 케이크 비슷하게 생겼는데, 사진만 봐서는 정확하게 어떤 음식인지 모르겠다.

 

음식 사진은 볼 수가 없어 목차만 대략 훓어봤는데, 거기 영국음식이 또 하나 들어가 있었다. '애플 크럼블apple crumble'이다. 프렌치 셰프 레이몽 블랑이 TV에 나와 "프랑스는 지금 전역이 영국의 크럼블에 푹 빠져 있어요." 한다. 파리에 있는 영국 <막스 & 스펜서> 매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국 디저트 중 하나가 바로 과일 크럼블이라는 신문 기사도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다. 크럼블이 영국음식인 것은 분명하다. 이 요리책에 프랑스 가정식으로 소개가 된 것으로 보아 저자는 영국의 과일 크럼블을 아마도 자국 음식으로 잘못 알고 먹고 있는 듯하다. 이 책 사서 애플 크럼블 해먹은 한국의 요리 블로거들 중에 조만간 애플 크럼블이 프랑스 음식이라고 우기는 이가 분명 나올 것이다. 목차에 표기된 음식 이름이 '크럼블 오 뽐므Crumble aux pommes'인데, '크럼블'이라는 단어 자체가 영어 단어다. 불어 단어가 아니다.

 

하긴, "프랑스 가정식"이라고 했지, "프랑스 음식"이라고는 안 했으니까... 영국인들도 '영국인의 아침 식사'를 소개할 때 종종 미국음식인 '에그스 베네딕트eggs benedict'를 넣기도 하니. 그런데 또 에그스 베네딕트의 주재료는 영국[English muffin]과 프랑스[Hollandaise sauce]에서 각각 온 것이니 이것도 흥미롭지 않나.

 

요리책에는 키쉬 로랭quiche Lorraine도 들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음식 역사 책에 의하면 이 키쉬 로랭이 또 독일의 영향이 아주 짙은 음식이라고 한다.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한 지역을 놓고 찌그락째그락한 역사가 있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로랭이라는 지명 자체가 중세 독일의 왕국 로트링엔Lothringen에서 유래되었고, 키쉬라는 단어도 독일어에서 왔다. 케이크나 타트를 뜻하는 독일어의 쿠흔Kuchen이 키셔Kische로, 그 뒤 키쉬quiche로 변천되었다고 한다. 키쉬 껍질을 구웠던 옛 주철 용기도 독일인들이 타트 구울 때 쓰던 것이라고 한다. 재료에서도 독일식 커스타드 타트와 공통점이 보인다.

 

참고로, 표지에 있는 저 프랑스의 크렘 브륄레와 똑같은 음식이 영국에도 있는데, 영국에서는 '트리니티 크림Trinity cream' 혹은 '캐임브리지 번트 크림Cambridge burnt cream'으로 불린다. 프랑스인들은 자기네가 원조라고 우기고, 영국인들은 영국이 원조라고 우기고 있는 음식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크렘 브륄레의 주 재료가 영국의 커스타드 크림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프랑스 옛날 요리책에서는 "crème brûlée"로 쓰이기도 하고 "crème anglaise"로 쓰이기도 하고 왔다갔다 한다. 현대에 와서는 무조건 크렘 브륄레로 쓰고 있지만. 두 나라가 이를 놓고 물밑 전쟁이라도 하는지, 위키피디아 같은 덜 믿음직스러운 백과사전을 보면 내용이 수시로 엎치락뒤치락 바뀐다. 그러니 한국에서 외국 음식 글을 쓰거나 출판하는 이들은 행여 위키피디아 보고 글을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낭패를 볼 수 있다. 학위논문 쓰는 학생들은 위키피디아를 절대 참고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양국이 오래 전부터 각자 즐겨오던 음식이니 이 노란색의 부드럽고 달콤한 디저트는 양국 모두의 음식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 프랑스와 독일은 이웃한 나라이니 음식이 전파되거나 섞이는 일은 빈번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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