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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페스토 In Search of Perfect Pesto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바질 페스토 In Search of Perfect Pesto

단 단 2015. 1. 29. 00:00

 

 

 

 

 

같은 재료를 써서 소스를 만든다 쳤을 때 집에서 소량의 재료로 찔끔 만든 것보다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것들이 깊고 진한 맛이 나서 더 맛있지요. 국도 집에서 소량 끓이는 것보다는 급식소에서 대용량 솥에 대량으로 재료를 넣고 끓인 것이 더 진한 맛이 나듯이요. 그래서 저는 시판 소스를 사서 쓰는 것에 별 거리낌이 없습니다. 재료만 좋다면 시판 소스도 나쁠 것 없지요.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것보다 더 맛있으면서 비용도, 시간도 덜 드는 경우가 많아 이런저런 소스들을 자주 사 먹곤 합니다.

 

그런데 페스토만큼은 이상하게도 시판 소스가 홈메이드 소스의 맛을 절대 못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간 여러 브랜드 것을 사 먹어 보았는데, 제아무리 고급 제품이라도 집에서 만든 것 같은 생생하고 강렬한 맛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페스토만은 사 먹는 것을 포기하고 늘 집에서 만들어 먹습니다.


페스토는 마늘, 잣, 바질, 소금, 강판에 간 치즈, 올리브 오일을 넣고 만드는 이태리 북서부 리구리아 지역의 전통 소스입니다. (재료는 절구에 넣는 순서대로 열거했습니다.) 리구리아 안에서도 제노바 항 주변이 유명한 모양인지 'Pesto alla Genovese'라는 표현이 많이 눈에 띕니다.



바질
페스토 글 준비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인데, 바질에도 유럽연합이 인증한 PDO 바질이 따로 있습니다. 정통식으로 만들려면 아무 바질이나 쓰면 안 되고 이태리 스윗 바질 중에서도 특별히 더 단 품종인 'basilico genovese'를 써야 한답니다. 리구리아 중앙과 서쪽에서 난다고 합니다. 품종만 중요한 게 아니라 바질의 나이도 중요합니다. 생장 정도에 따라 같은 바질이라도 맛이 달라져 민트맛, 라벤더맛, 레몬맛이 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 2주 이상 자란 건 제맛이 안 난다고 합니다. 늙은 잎은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올리브 오일
리구리아 지역에서 나는 올리브 오일을 씁니다. 순하면서도 완성된 파스타에 버터 같은 진한 맛을 더한다고 합니다. 이태리 다른 지역에서 나는 올리브 오일들은 대개 과일향이 나거나 알싸한 후추 기운이 있는데, 이런 올리브 오일과는 맛과 향이 많이 다르다고 하죠. 저희 집에서 주로 쓰는 이태리산 올리브 오일들도 바로 이런 향긋한 과일향이나 알싸한 후추 기운이 나는 것들인데요. 정통에 가까운 맛을 내려면 바질과 올리브 오일부터가 달라야 한다니, 이태리 밖에서는 본고장 맛을 내기가 좀 어렵겠습니다. (영국에서는 리구리아 PDO 올리브 오일을 팝니다. "
PDO Riviera Ligure Extra Virgin Olive Oil"을 찾으시면 됩니다.)


마늘
역시 리구리아 지방의 임페리아 베쌀리코Vessalico에서 재배된 마늘이어야 한답니다. 켁.


은 이미 지도까지 곁들여 열심히 ☞ 설명을 해 드렸지요. 리구리아 사람들은 반드시 이태리 잣을 써야 한다고 역설하겠지만 지중해 'Pinus Pinea' 품종 잣이면 어느 나라 산이든 괜찮습니다. 영국의 이태리 레스토랑들 중에는 스페인산 잣을 쓰는 집도 많습니다. 지중해 잣P. Pinea은 한국 잣P. Koraeinsis보다 날씬하고 길면서 표면이 매끈하고 윤이 좀 더 납니다. 한국 잣을 쓰셔도 됩니다. 덖지 않고 쓰면 좀 더 부드러운 질감을 낼 수 있고, 덖어서 쓰면 대신 고소한 맛이 더 납니다. 잣이 비싼 재료라 시판 페스토에는 잣을 생략하거나 다른 싼 견과류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때 성분표를 꼼꼼히 읽어 보세요.
 

소금은 거친 소금이어야 바질 잎을 잘 갈리게 합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 같은 굵은flasky 바다소금을 쓰시면 됩니다. 저는 영국 자염을 씁니다.

 

 

 

 

 

 

 

 

 

치즈

24개월 숙성 ☞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일명 파마산],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소개해 드렸던 ☞ 뻬꼬리노 싸르도를 섞어서 쓰시면 됩니다. 본고장 사람들은 파마산만 쓰지 않고 양젖 치즈인 뻬꼬리노 싸르도를 섞어서 쓰는데, 뻬꼬리노도 지역별로 종류가 다르니 반드시 싸르데냐 지방의 뻬꼬리노 '싸르도'로 쓰셔야 합니다. 뻬꼬리노 로마노는 맛이 너무 강해요. 뻬꼬리노 로마노를 쓸 거면 그냥 파마산만 넣고 만드시는 게 낫습니다.


절구

절구 이야기는 이미 해 드렸죠. 대리석 재질이어야 하고 공이는 나무 재질이어야 합니다. 둘 다 나무 재질이면 열이 발생해서 안 된답니다.
☞ 전통 페스토 절구

 

정성 들여 꽤 오래 갈아야 합니다. 제노바의 가정집들도 시간이 없거나 몸이 힘들 때는 블렌더를 써서 갈기도 한다는데, 집에서 비교를 해보니 블렌더에 간 것과 절구에 짓이겨 만든 것은 결과가 많이 다릅니다. 절구를 써서 만든 페스토에는 아무리 잘 갈아도 바질 잎이 식별 가능할 정도로 굵직굵직 갈려 있는 것이 눈에 띄고, 블렌더에 간 것은 성능이 지나치게 좋아 일관된 입자의 고운 연두색 소스가 나옵니다. 그래서 맛도 좀 달라요. 절구로 갈아 만든 페스토를 먹을 때는 군데군데 바질잎 뭉친 것이 마치 시금치 나물 먹을 때처럼 미끌거리면서 부드럽게 씹히고 바질향이 강하게 납니다. 재료의 조합이 워낙 훌륭한 소스라서 절구에 갈든 블렌더에 갈든 둘 다 맛은 좋습니다.


페스토에 어울리는 파스타

페스토는 파스타와 함께 먹어야지요. 이태리 다른 지역들과 달리 리구리아에서는 생파스타를 만들 때 달걀 없이 밀가루에 물만 넣고 만듭니다. 이것도 앞에서 설명했었죠. 페스토가 맛이 진하고 기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스타만 먹었을 때는 맛이 밍숭맹숭하지만 페스토와 결합되면 서로를 보완하면서 맛을 내게 됩니다. 어떤 형태의 파스타든 다 가능하고 먹는 사람 마음이지만, 현지인들이 즐기는 보다 클래식한 조합의 파스타가 따로 있기는 합니다. 손으로 비벼서 말아 만든 트로피에trofie, 리구리아의 라자냐 격인 넙적한 만딜리mandilli 등에 버무려 먹는다고 하죠. 만딜리는 마치 실크 손수건처럼 넙적하면서 미끌미끌합니다. 페스토에 버무려서 내야지, 넙적하다고 라자냐처럼 층을 내서 먹으면 또 안 된답니다. 트로피에는 그린 빈, 감자와 함께 삶아 페스토에 버무려 먹습니다. 'Trofie al pesto con fagiolini e patate'라고 부릅니다.

 

 

 

 

 

 

 


건조중인 우리 집 트로피에.

☞ 생트로피에 만들기

 

 

 

 

 

 

 

 

시판 트로피에.

 

 

 

 

 

 

 

 

페스토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페스토가 완성되기 전에 파스타, 감자, 그린 빈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린 빈은 익힌 뒤 양 끝을 쳐내고 먹기 좋은 길이로 썬다.

 

 

 

 

 

 

 


쉬 갈변되므로 타이밍에 주의.

면이 다 삶아질 시점에 맞춰 페스토가 완성되면 금상첨화.

바질잎을 살짝 데쳐서 쓰면 녹색이 좀 더 오래 간다고.

 

 

 

 

 

 

 

 

절구로 갈아 바질잎 입자가 불규칙하지만

신기하게도 기계로 균일하게 간 것보다 맛과 향이 더 진하다.

 



정통에 가까운 페스토 레서피

리구리아 지역에 <일 제노베제Il Genovese>라는, 페스토 소스로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답니다. 그곳 페스토를 근접하게 모방한 레서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영업 비밀인 모양인지 레스토랑은 레서피를 공개하지 않아 한 언론사에서 전문가를 써서 유사 레서피를 신문에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4~6인분이라고는 하지만 바질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2인분으로 줄여 만드는 데도 바질이 꽤 많이 듭니다.



재료 [4~6인분]

 

리구리아 임페리아 베쌀리코 지역에서 재배된 마늘 1~2톨

지중해산 'Pinus pinea' 품종 잣 30g (없으면 한국 잣을 써도 괜찮음)

질 좋은 PDO 제노바 생바질 네 다발. 잎만 따서 약 280g 정도

24개월 숙성 파마산 50-60g, 강판에 갈 것

뻬꼬리노 싸르도 20-40g, 강판에 갈 것

굵은 바다소금flaky sea salt 3g

PDO Riviera Ligure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60~80ml

 


만들기


1. 바질을 찬물에 씻은 뒤 물기를 털고 타월로 살살 눌러 물기를 제거한다.


2. 절구에 마늘과 잣을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간다.


3. 바질과 소금을 넣고 절구 옆면에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간다. 한 번에 다 넣지 말고 여러 차례 나누어 넣으면서 간다. 바질에서 녹즙이 나올 것이다.


4. 치즈와 올리브 오일을 넣고 잘 섞는다. 끝.


 너무 꼼지락대면 바질이 갈변되니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한다.

바질잎을 살짝 데쳐서 쓰면 녹색이 좀 더 오래 보존된다고 한다.
갈고 나서 바로 제공할 수 있도록 파스타나 다른 채소들이 미리 준비돼 있어야 한다.

 

 

 

 

 

 

 



완성.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어휴, 생각보다 복잡한 음식이에요. 생면까지 직접 만들어 쓰면 일이 더 많아집니다. 이 음식 덕에 트로피에 면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았는데, 식감도 좋고 모양도 예쁘고 썩 괜찮네요. 요즘은 집에서 페스토 많이들 만들어 드시죠? 기왕이면 본고장 사람들 하듯 트로피에 면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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