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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케저리 Kedgeree 본문
영국은 쌀 한톨 안 나는 나라이지만 쌀을 꽤 많이 소비합니다. 차는 그래도 잉글랜드 남부와 스코틀랜드에서 찔끔 재배하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쌀은 전량 수입입니다. 주로 인도, 파키스탄, 태국, 이태리, 스페인 등지에서 수입을 하는데, 인도와 파키스탄의 바스마티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질 좋은 바스마티를 수퍼마켓에서 쉽게 살 수 있습니다.
☞ 한국인보다 더 다양한 쌀을 먹는 영국인
오늘은 영국의 쌀요리를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침 식사로 먹는 음식이라 이것도 훈제 생선과 달걀을 씁니다. 영국이 인도를 직접 통치하던 시기(British Raj, 1858-1947)에 전해져서 변형된 'Anglo-Indian food' 중 하나인데, 원형인 인도 ☞ 키차리와는 겉모습만 얼핏 비슷해 보일 뿐 맛과 향과 식감이 많이 다릅니다. 재료도 다르고 조리법도 다르거든요. 인도의 키차리는 쌀과 렌틸이 주재료이면서 수분이 많아 다소 질고, 영국의 케저리는 렌틸 대신 달걀과 훈제 해덕을 쓰고 물기 없이 고슬고슬 만듭니다. 빅토리안들이 이 케저리를 아침 식사로 매우 즐겼다는데, 전업 주부가 거의 없는 현대 영국의 가정에서 평일 아침에 이걸 만들어 먹는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주말에 브런치로나 겨우 해먹을 수 있죠. 호텔에서 조식으로 먹든가요. 훈제 해덕을 구할 수 있는 분들께 브런치로 추천합니다. 은은한 커리향과 훈향, 버터향이 나는 고소한 쌀요리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기품이 있어요.
커리 파우더는 일본식 한국식 끈끈한 카레 분말을 쓰면 안 되고 소금, 전분, 조미료가 일절 안 든 영국식 커리 파우더로 써야 합니다. 바스마티는 최대한 전분이 덜 생기도록 고슬고슬 지어야 하는데 전분 든 일본식 한국식 소스용 카레 가루를 쓰면 밥을 망칩니다. 영국식 커리 파우더는 인도 것에 가까워 맛도 향도 좀 더 순수합니다. 향신료 회사마다 배합이 조금씩 달라 뉘앙스에 차이가 나며, 영국의 이름난 셰프들은 자기만의 배합 비법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여염집에서도 인도 향신료 사다가 취향에 맞게 직접 배합할 수 있습니다.
▲ 여러 가지 인도 향신료가 미리 배합돼 담긴
영국 커리 파우더.
일본이 이걸 가져다 전분, 조미료, 소금 넣고 '카레'로 재창조.
▲ 리지 콜링엄의 인문서 <커리>에 담긴
인도 키차리 조리법.
영국 케저리의 원형이라고는 하나
훈제 생선과 유럽 파슬리가 빠져 있어 맛이 완전히 다르다.
▲ 우리 집 생선 도감에 있는 해덕haddock (대구의 일종).
정 들겄네 정 들겄어.
▲ 훈제 해덕 실물. 유럽연합이 PGI로 보호하고 있는
그림스비Grimsby 트러디셔날 스모크트 해덕.
▲ 향이 일품인 바스마티. 비싼 쌀이라 가짜가 많음.
포장에 "우리 건 인증을 거친 진짜 바스마티"라며 자랑자랑.
깨진 쌀이 거의 없다.
▲ 전분이 나오지 않도록 쌀을 살살 씻고
밥도 조심조심 지어야 한다.
밥 짓고 나서도 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포크로 살금살금 섞어야 한다.
▲ 밥을 따로 지은 뒤 삶은 달걀과 훈제 생선살을 합쳐준다.
저는 뚜껑 있는 지름 20cm 소테 팬saute pan에 밥을 지은 뒤 밥그릇에 바로 덜어 먹었는데, 케저리는 원래 근사한 그릇에 담아 내는 관습이 있습니다. 옛 시절 영국의 귀족 저택에서는 아침 식사를 대개 간단한 부페식으로 먹었다죠? 뚜껑 덮은 은제 그릇들silver chafing dish 밑에 열기구를 두어 음식이 식지 않도록 하고 각자 알아서 덜어 먹도록 했는데, 아래의 <다운튼 애비> 화면 갈무리한 것들을 보세요. 그랜썸 백작이 뚜껑 열어서 보는 음식이 바로 케저리입니다. 노오란 밥이 소복이 쌓여 있죠.
▲ 짠! 이게 바로 케저리.
▲ 식탁 위에 바로 올릴 때는
뚜껑 있는 도자기 그릇도 많이 씀.
좌우간 케저리는 폼 나게 담아 내야 함.
영국 가정요리의 대모 딜리아 스미쓰Delia Smith의 레서피로 소개해드립니다. 위 사진에 있는 <다운튼 애비> 책의 레서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재료
[아주 넉넉한 2인분]
• 훈제 해덕 350g
• 양파 2개, 잘게 깍둑 썰 것
• 바스마티, 계량컵 부피로 재서 110ml 높이가 되도록
• 버터 75g
• 영국식 커리 파우더 1작은술 봉긋 또는 그 이상 취향껏 [1작은술 = 5ml]
• 노른자를 꾸덕꾸덕하게 삶은 달걀 2개, 껍질 까서 4등분하기
• 납작한 유럽 파슬리 다진 것 2큰술 [1큰술 = 15ml]
• 레몬 즙 1큰술
• 소금 후추 취향껏
만들기
1. 평평하고 얕은 냄비에 훈제 해덕을 깔고 찬물 275ml를 부어 강불에 올린다.
2.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덮고 약불로 줄여 익힌다. 요리책에는 약 8분을 익히라고 써 있으나 생선살이 너무 질겨지지 않도록 시간은 알아서 정한다.
3. 해덕이 알맞게 익었으면 해덕 데친 물은 계량컵에 잘 받아두고 생선은 다른 그릇에 옮겨 식지 않도록 잘 싸둔다.
4. 지름 20cm 정도 되는 평평하고 얕은 프라잉 팬이나 소테 팬에 버터를 50g만 넣어 녹이고 양파를 부드러워질 때까지 약 5분간 볶는다.
5. 커리 파우더를 넣고 1분 더 볶는다.
6. 쌀을 넣고 한 번 뒤적인 뒤 해덕 데친 물 225ml를 붓는다.
7.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꼭 맞는 뚜껑을 덮고 약불에서 약 15분간, 혹은 쌀알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익힌다.
8. 10분쯤 지났을 때 따로 두었던 훈제 해덕 살을 발라 결대로 떼어 둔다. 껍질과 뼈가 들어가지 않도록 세심히 골라낸다.
9. 밥이 다 됐으면 불에서 내리고 뚜껑을 열어 삶은 달걀, 해덕, 파슬리, 레몬 즙, 나머지 버터 25g을 넣고 포크로 살살 섞는다.
10. 여러 겹으로 접은 티타월을 냄비에 얹고 뚜껑을 닫아 약불에 5분간 올려 김을 뺀다. 밥이 더 고슬고슬해진다.
11. 소금 후추로 간 한다.
12. 완성된 케저리는 뜨겁게 데운 그릇에 담아 바로 제공한다. 끝.
☞ 영국음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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