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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유청 버터를 얹은 핫크로스번 Hot Cross Buns & Whey Butter 본문

영국음식

[영국음식] 유청 버터를 얹은 핫크로스번 Hot Cross Buns & Whey Butter

단 단 2015. 4. 6. 00:00

 

 

 

 

 

홋 크로스 번 이야기
소포요~
소포 모양을 닮은 영국의 전통 빵 홋 크로스 번.
향신료와 꼬들꼬들 말린 과일들이 듬뿍 들어가는 고급 빵입니다. 빵 위에 십자가가 그어져 있어 누구든지 대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향신료와 말린 과일 따위는 흔한 것이 되었지만 옛 시절엔 마치 오늘날의 트러플, 사프론, 캐비아와 같은 귀한 재료였지요. 그러니 서민들은 명절에나 겨우 먹어볼 수 있었던 음식입니다. 영국에서는 부활절 직전 금요일인 성 금요일Good Friday에 이 홋 크로스 번을 먹습니다. 이 시장이 아주 큽니다. 수퍼마켓들마다 심혈을 기울여 구워 내고, 신문과 잡지들은 성 금요일이 되기 한참 전부터 올해는 어느 수퍼마켓, 어느 티룸의 홋 크로스 번이 가장 맛있는지 일일이 맛을 보고 점수를 매겨 적나라하게 공개를 합니다. 가차없어요. (영국에서는 A사, B사, 이딴 이니셜 처리는 블라인드 테스트 할 때나 합니다.)

 

쵸콜렛이나 퍼지fudge를 박은 변종들도 맛있게 잘 나오기는 하는데, 그래도 홋 크로스 번 하면 뭐니뭐니 해도 건과일과 향신료가 든 원조가 으뜸이지요. 다쓰 부처 입맛엔 원조가 가장 맛있습니다. 저 십자가 때문에 기독교 색채가 짙은 빵으로 인식들을 하는데요, 십자 표시는 영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쓰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십자를 그어 생긴 네 개의 구획이 사계절을 뜻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기독교적 상징으로 점차 변했다고 하지요.

 

 

 

 

 

 

 



영국에서는 대개 이렇게 네 개 한 묶음으로 팔고 낱개로는 여간해서 팔지 않습니다. 네 개가 서로 붙어 있어 하나씩 떼면 부드럽고 촉촉한 옆면을 볼 수 있는데, 영국인들은 이 촉촉한 옆면을 좋아해서 번을 낱개로 굽지 않고 이렇게 다닥다닥 붙여서 굽는 습관이 있습니다. 첼시 번도 이렇게 굽지요.
☞ 첼시 번의 모습

 

올해는 <막스 앤 스펜서Marks & Spencer> 제품으로 샀습니다. 아니?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다는 <웨이트로즈Waitrose>에 안 가고? 영국인들이 영국 최고의 수퍼마켓으로 여기는 웨이트로즈. 웨이트로즈가 들어서면 그 동네 집값이 다 오를 정도죠. 그래도 간편식ready meal이나 티푸드 등 간식거리는 막스 앤 스펜서 제품들이 월등히 낫습니다. 그래서 일년에 단 한 번 먹는 절기 음식인 홋 크로스 번을 사러 다쓰베이더가 고생을 마다않고 버스 타고 막스 앤 스펜서까지 다녀왔습니다. (치즈는 그래도 웨이트로즈가 으뜸.)

 

 

 

 

 

 

 



이 제품입니다. 신문사들이 최고로 꼽은 제품은 아니었지만 다쓰 부처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신문사들이나 전문가들이 꼽은 최고가 저희 입맛에 꼭 최고로 맛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막스 앤 스펜서> 것말고도 <세인즈버리즈>와 <웨이트로즈> 것도 여러 개 맛보았는데 <세인즈버리즈>의 최고급 제품군인 'Taste the Difference' 번도 맛 괜찮았습니다.

 

 

 

 

 

 

 



홋 크로스 번 맛있게 먹는 법
번을 반으로 갈라 토스터에 굽거나 오븐의 그릴 기능을 이용해 살짝 구우세요. 그런 다음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갑고 단단한 버터를 최소 3mm 두께로 두껍게 저며 척 얹으세요. 바삭한 표면과 탄력 있는 속살의 뜨거운 번, 그리고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차가운 버터. 식감 대비와 온도 대비를 한껏 즐기면서 먹는 거지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버터를 슥슥 얇게 펴바르거나 뜨거운 번 위에서 녹게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맛이 완전히 달라요.

 

 

 

 

 

 

 



유청 버터 이야기
첫 사진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이번에는 뒤에 있는 버터를 유심히 보세요. 저게 치즈 생산이 활발한 잉글랜드 남서부와 북서부에서 주로 생산되는 '유청 버터whey butter'라는 건데요, 우리가 아는 일반 버터와는 좀 다릅니다. 우리가 아는 버터는 신맛이 안 난다고 해서 소위 '스윗 버터sweet butter'라 부르고, 공장에서 기계 설비를 이용해 살균 우유에서 크림을 단시간에 분리한 뒤 고속 회전시켜 만들지요. 집에서도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어요. 생크림을 사다가 푸드 프로세서에 넣고 한참 돌려주면 즉석 버터가 돼서 나오는 거,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요리사들도 종종 가정 요리 레서피에 소개를 하곤 하는데, "내가 만든 버터야." 손님들에게 으스댈 수 있어 좋지요. 공장제 스윗 버터는 우유 풍미가 고스란히 나면서 질감이 매끄럽고 기름집니다. 발효 버터나 유청 버터처럼 독특한 풍미가 가미되지 않고 맛이 중립적이라 무난하게 쓸 수 있습니다.

 

팜하우스 버터
장시간에 걸쳐 발효한 크림을 가지고 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량씩 천천히 저어churn 만든 '팜하우스farmhouse 버터'는 값을 좀 더 쳐줍니다. 전통식이죠. 프랑스 에쉬레Echiré 버터도 비록 까다로운 조건 아래 더 신경 써서 만들긴 하나 기본적으로는 이 범주에 듭니다.

 

사진에 있는 유청 버터는 치즈 만들 때 생기는 유청whey을 가지고 소량씩 수작업해 만듭니다. 치즈 만드는 초기 단계에 이런저런 미생물과 응고 효소를 우유에 넣고 기다리면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응유curd가 생기고 멀건 물인 유청과 분리가 되는데, 그 유청을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 유청에 있는 지방 성분으로 버터를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만든 버터는 사진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 일반 버터에 비해 윤기가 좀 덜 돌긴 하나 치즈 풍미가 살짝 돌고 산미가 나서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값은 일반 버터보다 좀 비싸긴 한데, 저는 베이킹에 쓰는 버터말고 그냥 먹는 테이블 버터는 꼭 이 유청 버터로 씁니다. 어떤 치즈를 만들 때 나온 유청이냐에 따라 버터 풍미도 달라진다는 것이 애호가들한테는 큰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구운 빵 위에 얹어 먹는 버터로 이 유청 버터만 고집한다고 하지요.

 

 

 

 

 

 

 



웨이 버터 ⊂팜하우스 버터, 팜하우스 버터 ≠ 웨이 버터 
영국에서는 이 유청 버터를 '웨이 버터' 혹은 '팜하우스 버터'라고 부르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네요. 주의할 것은, 웨이 버터라 써 있는 것들은 웨이 버터가 맞지만, 팜하우스 버터라 써 있는 것들에는 유청이 아닌 일반 유크림을 갖고 만드는 것들이 더 많아서 포장의 문구를 좀 더 꼼꼼히 읽어 봐야 한다는 겁니다. 웨이 버터는 팜하우스 버터에 속하지만 팜하우스 버터에 웨이 버터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요. 일단 'farmhouse butter'라 써 있는 것을 고른 뒤 포장 어딘가에 'whey'라는 단어가 있는지 잘 찾아 보시면 됩니다.

 

치즈 농가라고 해서 다 이 유청 버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치즈 장인이 곁다리로 유청 버터도 손쉽게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유청 버터도 별도의 장인을 필요로 합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고 손이 많이 가는데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장인 수도 많지 않고 생산량이 적어 시장에서 흔히 볼 수도 없어요. 전통 방식으로 치즈를 생산하는 농가에서나 가능하지 대량생산하는 치즈 공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무염일 경우는 유통기한이 너무 짧기 때문에 대개는 가염된 것으로 수퍼마켓 선반에 극소량 놓여 있습니다. 영국에 계신 분들은 장볼 때 버터 선반을 눈여겨보셨다가 이 유청버터를 발견하시면 한 번쯤은 사서 맛보실 것을 권합니다. 전통 방식으로 작업하는 치즈 농가들이 많은 나라에서나 겨우 맛볼 수 있는 버터입니다.

 

홋 크로스 번에 단맛이 돌기 때문에 저는 가염 유청 버터로 얹어 먹습니다. 소금기가 단맛과 향신료 기운을 더욱 북돋아 정말 맛있어집니다. 테이블 버터로 추천합니다. 영국 버터 중 저지Jersey 버터, 건지Guernsey 버터, 염소젖 버터는 따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작년과 재작년의 홋 크로스 번 사진.

반 가른 것은 헤스톤 블루멘쏠 제품.

역시 유청 버터를 얹었음.

 

 

 

 

 

 

 

 


 쫀득한 크럼핏crumpet에 얹어 먹어도 기가 막혀.

 

 

 

 

 

 

 


 오리 모양 버터 접시 본 김에,

며칠 전에 찍은 오리 사진 한 장.

꼬맹이 표정과 손 모양, 정말 귀여워.

 

 

 

 

 

 

 


 영국의 부활절 꽃 수선화daffodill. 온 동네가 수선화 천지.

 




☞ 잉글리쉬 머핀
크럼핏

영국음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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