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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컬런 스킹크 Cullen Skink - 훈향이 일품인 훈제 대구 수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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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컬런 스킹크 Cullen Skink - 훈향이 일품인 훈제 대구 수프

단 단 2015. 3. 28. 00:00

 

 

 우리 집 생선 도감에 있는 해덕haddock (대구의 일종)

 

 


오늘은 영국의 국민 생선 중 하나인 해덕으로 스코틀랜드 전통 수프를 끓여보겠습니다. '컬런 스킹크'라니, 영어치고는 어감이 좀 낯설고 어딘지 악당 이름 같은 사악한 느낌이 들죠. 그런데 맛은 꽤 익숙합니다. '컬런'은 스코틀랜드 북동쪽의 한 어촌 이름이고, '스킹크'는 원래 소 앞다리살shin을 뜻하는 그 고장 말이었는데, 바닷가 마을이다보니 쇠고기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훈제 해덕을 넣은 것 아닌가 추측들을 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수프라서 남쪽으로도 퍼져 이제는 영국 전역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해덕은 흰살 생선입니다. 생물은 다양한 생선 요리나 피쉬 앤 칩스 만들 때 쓰고, 훈제한 것은 영국식 커리 볶음밥인 케저리kedgeree, 피쉬 파이, 아놀드 베넷 오믈렛, 그리고 이 컬런 스킹크를 만들 때 주로 씁니다. 미국인들은 클램 차우더를 먹고 영국인들은 컬런 스킹크를 먹습니다. 둘 다 뽀얀 색의 해산물 크림(밀크) 수프인데, 훈제 생선이 들어가기 때문에 컬런 스킹크는 훈향이 물씬 나서 클램 차우더보다 성격이 좀 더 분명합니다. 프랑스 비스크bisque보다는 좀 더 푸짐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고요.

 

 

 

 

 

 

 



제가 원래 깡통에 든 수프는 깡통 맛이 나서 잘 사 먹지 않는데요, '럭셔리'한 깡통 컬런 스킹크가 다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한번 사 보았습니다. 컬런 스킹크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감을 잡고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시판 제품을 사 먹어 봐야지요. 좋은 재료를 써서 전통 레서피대로 만들었다고 하니 궁금합니다. 허, 깡통 수프 따위에 웬 왕실 인증 마크가 다 붙어 있습니까? 원료인 훈제 해덕이 비싼 탓인지 깡통 제품치고는 값이 꽤 나갔습니다.

 

 

 

 

 

 

 



건더기들은 무거워서 바닥에 가라앉았습니다. 좀 짭짤하긴 한데, 아우, 맛있네요. 유학생들은 집에 이 깡통 몇 개 쟁이고 있다가 바쁠 때 작은 빵roll 하나 곁들여 먹고 학교 가면 든든하겠습니다. 광고에서도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께 우리 제품데워서 내면 참 좋아요!" 합니다. 훈향이 물씬 납니다. 아아, 훈향을 맡으니 또 벽난로 앞에 앉은 것 같은 편안함이...

 

 

 

 

 

 

 



건더기가 실해서 수프 한 그릇만으로도 식사가 충분히 되겠습니다. 저 생선살 좀 보세요. 북대서양 대구 훈제한 게 한국에는 있을 턱이 없으니 레서피를 올려도 한국에서는 이 맛을 재현할 수가 없겠지요.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 대구라도 좋으니 한국에서도 훈제 흰살 생선들을 좀 생산했으면 좋겠습니다. 맛을 보았으니 이제 재료 사다가 제가 직접 만들어 봐야지요.

 

 

 

 

 

 

 

 

 유럽연합이 PGI로 보호하고 있는

그림스비Grimsby 트러디셔날 스모크트 해덕

 


이 컬런 스킹크에 쓰일 해덕은 열훈이 아니라 냉훈법을 써서 훈제합니다. 본고장에서는 이 냉훈한 해덕을 '피난 해디Finnan Haddie'라고 부릅니다. 열훈한 해덕은 '아브로쓰 스모키Arbroath Smokies'라 부릅니다. 해덕은 코드cod와 달라서 염장이 잘 안 됩니다. 건조를 시키거나 훈제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요. 우리말로는 해덕도 대구, 코드도 대구로 번역이 돼서 헷갈리기 딱 좋은데, 둘 다 흰살 생선에 둘 다 피쉬 앤 칩스 재료로 많이 쓰니 더 헷갈립니다. 북쪽에서는 해덕 튀긴 것을, 남쪽에서는 코드 튀긴 것을 선호합니다. 저는 두 생선을 나란히 놓고 먹어 본 적이 없어 맛 구별을 아직도 잘 못합니다. 둘 다 제 형편에는 비싼 생선이라 한 번에 두 마리를 다 사기가 벅찹니다. 해덕은 코드에 비해 덩치가 작으면서 살이 좀 덜 희고 코드만큼 살이 결대로 예쁘게 톡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대신 코드보다는 단맛이 좀 더 돈다고 합니다. 작년 컬런 스킹크 만들기 대회에서 1등한 조리법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통 음식이라 조리법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재료 [3~4인분]


 훈제 해덕 250g
노오란 크림 더께가 뜬 무균질 전지유 unhomogenised
 full fat milk 500ml

버터 25g
유채씨유rapeseed oil 10ml 
양파 중간 크기 1알, 잘게 다질 것
소금·후추
감자 250g, 1cm 크기로 깍둑 썰 것 Duke of York 품종으로 추천

물 300ml 

파슬리·차이브chive, 양은 취향껏, 잘게 다질 것

 

 

만들기

1. 편평한 냄비에 훈제 해덕을 깔고 우유를 붓는다. 불에 올려 끓기 시작하면 곧바로 불에서 내려 5분간 그대로 둔다. 오래 끓이면 생선살이 질겨지니 주의한다. 5분이 지나면 생선 살은 건져서 따로 둔다.


2. 또다른 냄비에 버터, 유채유, 양파를 넣고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만 볶는다. 소금·후추로 간한다. 소금은 나중에 더 넣을 수 있으니 우선 한 꼬집만 넣어 본다.


3. 2에 감자를 넣고 으깨지지 않도록 볶는다. 구운 색이 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4. 양파와 감자 볶은 것에 물과 생선 향이 우러난 우유를 붓는다. 불 세기를 올려 얌전하게 보글보글 끓게 둔다simmer.

5. 좀 더 걸죽한 수프를 원한다면 4에서 감자 위주로 두 국자 정도를 덜어 절구에 으깬 뒤 다시 넣어주면 된다. 으깨진 감자의 전분이 국물을 걸죽하게 만들 것이다.


6. 깍둑 썬 감자들이 씹기 편할 정도로 익었으면 따로 건져 두었던 생선살을 큼직하게 부숴 수프에 넣어준다. 생선 껍질이나 가시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생선살을 넣은 뒤에는 오래 끓이지 않도록 한다. 생선살을 데우는 정도면 된다.


7. 그릇에 담고 잘게 썬 파슬리와 차이브를 넉넉히 올려 낸다. 끝.

 

 

 

 

 

 

 



앞서 맛보았던 깡통 수프보다는 확실히 더 맛있습니다. 전분기가 적어 가벼운 느낌이 나면서 훈향도 더 섬세하고 맛도 더 고소합니다. 소금양을 조절할 수 있으니 덜 짜게 만들 수 있고요. 깡통 수프는 따로 넣은 전분과 감자에서 나온 전분 때문에 걸죽했는데 이건 묽고 산뜻합니다. 크림도 별도로 넣지 않았습니다. 사실 크림 없이 우유만 써서 만들었으니 '크림 수프'가 아니라 '밀크 수프'라 해야 정확할 텐데, 유지방 때문에 어쨌거나 고소한 맛이 많이 납니다. 집에서 이렇게 만들면 깡통 수프 사 먹는 것보다 비용도, 시간도, 노동도 더 들지만 노고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반을 남겨 두었다가 다음 날 데워 먹었는데, 하루 묵은 것은 더 맛있었습니다. 훈제 해덕 구할 수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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