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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튼 ① 로얄 파빌리온 Royal Pavilion, Brighton 본문

영국 여행

브라이튼 ① 로얄 파빌리온 Royal Pavilion, Brighton

단 단 2015. 7. 1. 00:00

 

 

 

 

 

오옷, 구름 한 점 없는 날!

"영감, 오늘 날씨 좀 보오. 햇빛 쬐러 바닷가나 다녀옵시다."

 

 

 

 

 

 

 

 


브라이튼은 잉글랜드 남부의 해안 도시입니다.
무엇으로 유명하냐면요,
조지 4세가 '쾌락의 궁' 삼아 세운 이국적인 로얄 파빌리온Royal Pavilion,
배를 대던 원래의 목적을 버리고 이제는 놀이공원으로 변한 선착장Palace Pier,
볼거리가 의외로 많은 박물관Brighton Museum,
몇몇 티룸,
300개가 넘는 펍,
400개가 넘는 레스토랑,
수많은 대중음악 공연장들,
그리고,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들이 많이 살고 많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LGBT'의 도시이지요. '게이 캐피탈'이라고 부릅니다.

 

2001년 영국의 인구조사에서 브라이튼이 동성애자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꼽혔습니다. 2011년 인구조사에서는 'civil partnership' 가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꼽혔는데, 이때는 아직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기 전이라 '씨빌 파트너쉽'이라고 불렀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1822년에 이미 이 동네 동성애 관련한 기록들이 나옵니다. 런던 살면서 눈치 보던 동성애자들이 브라이튼 와서 숨통 트고 즐겼다는 기록들이 많아요.

 

브라이튼은 그간 여러 차례 왔었는데 사진을 제대로 찍어두질 않았네요. 지도교수 댁에 튜토리알 받으러 왔기 때문에 올 때는 떨리는 마음으로, 갈 때는 머릿속으로 튜토리알 내용들 곱씹느라 사진 찍고 관광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단단 님 지도교수님이 브라이튼에 사셨다고요? 혹시 그 분도..."


네에, 제 지도교수님도 동성애자이십니다.

사모님(?)과 30년 넘게 해로하고 계십니다.

두 분 다 교회에도 잘만 다니십니다.

 

 

 

 

 

 

 

 


브라이튼 역사 천장.
역사 특유의 저 철골 구조물, 멋있죠.
다쓰 부처는 늘 의아한 것이, 영국에는 이렇게 곡선으로 된 승강장이 많아요. 짓기가 쉽지 않을 텐데 왜 이렇게 곡선 승강장과 역사가 많은지 모르겠어요. 사진이 좀 더 '드라마틱'하게 나와 좋긴 하지만요.

 

 

 

 

 

 

 

 


역사 안에 피아노가 다 놓여 있습니다.
브라이튼에 있는 어느 피아노 판매점에서 홍보차 갖다 놓은 모양입니다. 이 동네가 좀 '노는' 동네인지라 동네 곳곳에 악기점이 많아요. 저도 제 전자 피아노를 브라이튼에 있는 가게에서 샀습니다.

 

반가워서 다쓰 부처도 기념으로 각각 한 곡씩 뽑고 가려고 했는데,

아 글쎄 이 아가씨가

남자친구가 넋 나간 얼굴로 보고 있고

뒤에 동양인 관광객 둘이 사진기 들고 구경하고 있으니

우쭐해져서는 비켜줄 생각도 않고 줄기차게 쳐대는 거예요.

(초급에서 막 중급 올라가려는 취미자 같았음.)

 

어우 야아~

우리, 니 연주 감상하는 게 아니라 피아노 치려고 줄 서 있는 거야~


눈치 없는 것.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 포기.

 

 

 

 

 

 

 

 

 

역사 출구 위에 붙어 있던 환영 간판.
저게 괜히 무지개색이 아닌 게지요.

 

 

 

 

 

 

 

 

 

아, 소실점 부분에 바다가 보입니다. 땅보다 높게 있는 것처럼 보여 볼 때마다 늘 초현실적이라고 느낍니다.

 

 

 

 

 

 

 

 

 

로얄 파빌리온을 세운 쾌락의 왕 조지 4세[재위 1820~30]와 머리 위의 무엄한 갈매기.
조지 4세는 어떻게 생겼냐면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 양반이 영국인들에게 인기가 좀 없어요.
제가 이튼 컬리지 가는 길에 소개해드렸던 찰스 2세도 쾌락의 왕이었는데, 같은 쾌락의 왕인데도 찰스 2세는 인기가 좋고 이 조지 4세는 인기가 없어요.
왜냐?


찰스 2세는 크롬웰의 공포정치 밑에서 무서워 놀지 못했던 국민들을 마음껏 놀게 해주면서 자기도 잘 논 왕이지만 조지 4세는 자기 혼자 돈 풍풍 쓰면서 잘 놀았거든요. 나폴레옹과의 전쟁 탓에 세금은 늘고 수출은 안 되고 물가는 치솟고 국민들은 힘들어 죽겠는데 로얄 파빌리온을 짓고 있으니 인기 있을 턱이 없죠. 이게 순전히 놀려고 지은 궁이라서 조지 4세 이후의 군주들은 체면과 여론을 생각해 이 궁을 차츰 멀리하다가 결국에는 브라이튼 시에 팔아치웠습니다. 그래서 궁이지만 국가나 왕실 소유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로얄 파빌리온.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엥?
전면을 멋지게 담아보려 했는데 보수중이라서 비계scaffolding가 설치돼 있어요.
아아, 김빠집니다.

 

 

 

 

 

 

 

 


비계 없는 쪽으로 살짝 비껴서 찍어봅니다.

 

 

 

 

 

 

 

 


입구가 있는 반대편으로 가다가 본 북문North Gate.
런던 건축물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포틀랜드 스톤으로 지어졌고 구리로 된 양파 모양의 지붕을 얹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지붕을 '어니언 돔'이라고 부릅니다. 1832년에 인도풍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로얄 파빌리온 앞 잔디밭.
돗자리도 없이 잔디에 막 앉거나 눕는 털털한 유럽인들.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브라 차림의 여인도 많았습니다.
이게 다 태양신을 숭배하느라 이러는 겁니다.
태양신 숭배 안 하면 영국인들 뼈 다 삭아 늙어서 큰일납니다.
저도 이 날 햇빛 쬐려고 브라이튼에 갔어요.

 

 

 

 

 

 

 

 

 

나무 사이로 보이는 로얄 파빌리온의 어니언 돔과 미너렛minarets.
예쁘죠?

 

 

 

 

 

 

 

 


철도 회사에서 자기네 기차표를 사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2 for 1' 제도를 이용하면 반값에 로얄 파빌리온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성인 한 사람 입장료인 11.50파운드를 내고 둘이 관람했어요.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로얄 파빌리온에 입장할 때 기차표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승강장에서 나올 때 기차표를 기계에 넣어버리면 안 됩니다. 기계가 표를 먹고 안 줘요. 개찰구에서 있는 역무원한테 "We need these tickets."라 말하고 비상 문으로 그냥 나오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역무원이 무슨 뜻인지 다 알고 그냥 내보내줍니다. 꼭 이렇게 나오셔서 표를 건지셔야 합니다. 민영화 탓에 영국은 기차 요금이 비싸기로 악명 높지만 이런 서비스가 의외로 많아 잘 알아보고 이용하면 알뜰하게 여행 다닐 수도 있어요.

 

 

 

 

 

 

 

 


이곳도 윈저성과 마찬가지로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입니다.
대신 브라이튼 시에서 올린 로얄 파빌리온 홍보 영상을 걸어드립니다.


외관은 인도풍인데 안은 자기들이 재해석한 중국풍이고, 방 중에는 이집트풍 가구와 소품들을 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주철로 된 계단 손잡이를 중국 대나무처럼 보이도록 주조하고 색을 칠해 놓아 다쓰 부처 둘 다 만져보고 재밌어서 켁켁켁. 중국인을 그린 그림들은 하나같이 사람 눈꼬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조지 4세는 미식을 몹시 즐기던 왕이었기 때문에 주방을 연회장 바로 옆에 두고 매우 아꼈다고 합니다. 당시로선 드문 일이었죠. 옛 시절엔 화재 위험도 있고 음식 냄새가 실내에 풍기는 걸 꺼려 궁이나 대저택들이 주방을 아주 멀리 두는 관습이 있었거든요. <다운튼 애비>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들고 풋맨들이 한참을 나르지요. 미식가 조지 4세는 음식이 잠시라도 식을 틈을 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최신식 설비를 갖춘 첨단 주방이었기 때문에 연회장 가까이에 두고 방문자들에게 그렇게 주방 자랑을 해댔다는데, 저희도 주방 구경이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구리냄비 좋아하는 분들은 눈 돌아갈 겁니다. 옛날 기계식 타이머와 벽난로 앞 자동 로스터 보고 혀를 다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옛 사람들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었습니다. 아래는 러시아에서 온 귀빈 접대를 위한 1817년의 만찬 메뉴입니다.

 

 

 

 

 

 

 



한 식사에 수프만 여덟 가지가 나왔습니다. 
메인 서른 두 가지. 
과연 '플레저 팔레스'란 별명이 붙을 만하죠.

 

 

 

 

 

 

 

 

 

 

 

로얄 파빌리온 누리집에서 악기가 놓여 있던 뮤직 룸들 사진만 가져와 걸어봅니다. 이곳에서 오르간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오르간 파이프에도 나름 중국풍으로 장식을 입혀 놓았습니다. 다쓰 부처 눈에는 인도풍에 더 가까워 보이긴 했지만요. 조명과 장식이 정말 아름답죠? 자기들 식으로 재해석한 중국풍이라고 하는데, 제가 중국은 가본 적이 없어서 중국에 정작 이 '아류' 방보다 아름답게 꾸민 곳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방들의 모습과 설명은 공식 누리집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Royal Pavilion

 

 

 

 

 

 

 

 

 

관람을 마치고 로얄 파빌리온 건물 안에 있는 티룸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여기도 넓고 분위기가 아주 좋더라고요. 나름 중국 모티브들이 보입니다. 브라이튼에는 잘하는 티룸들이 제법 있는데 이곳도 분위기가 꽤 괜찮습니다. 여기서 아프터눈 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다른 곳에서 아프터눈 티를 먹은 터라 여기서는 간단하게 음료만...

 

 

 

 

 

 

 

 

 

노인들 여섯 명이 각자 크림 티를 시켜 먹는 모습이 재밌어서 한 장.
우리 한국인들 같으면 여럿이서 각각 다른 음식을 시킨 뒤 나누어 먹을 텐데 여기 사람들은 우리처럼 식당에서 음식 나눠 먹는 걸 잘 안 합니다. 각자 자기 먹고 싶은 걸 시켜서는 "먹어볼래?" 소리도 않고 자기 혼자 다 먹죠. 그래서 저 여섯 명이 모두 똑같은 크림 티를 시켜 먹고 있더라고요. 재밌죠. 업소쪽에서도 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각자 하나씩 주고요.

 

무엇보다 재밌는 건,
영국에선 아저씨 할아버지들도 밖에 나오면 티타임에 저렇게 단걸 시켜 먹는다는 겁니다. 한국 같으면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노신사가 오후 서너시쯤 아가씨들 바글대는 디저트집에 들어가 음료와 단걸 시켜 먹는 모습을요.
수퍼마켓에서 장볼 때도 냉장 디저트 선반 앞에서 자기 먹을 디저트 한참 서서 신중히 고르고 있는 할아버지들을 많이 봅니다.

재밌어서 속으로 후후후.
문화의 차이이지요.

 

 

 

 

 

 

 

 

 

티룸 발코니에서 본 어니언 돔.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분들이 관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쓰 부처는 둘 다 재미있게 잘 관람했습니다. 아마 영국 어디서도 이런 독특한 인테리어는 못 볼 듯싶네요. 조지 4세의 이국 취향이 한껏 반영된, 키치와 세련이 공존하는 재미있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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