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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튼 ③ 블랙버드 티룸 아프터눈 티 Blackbird Tea Rooms, Brighton 본문

영국 여행

브라이튼 ③ 블랙버드 티룸 아프터눈 티 Blackbird Tea Rooms, Brighton

단 단 2015. 7. 1. 01:00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브라이튼에는 식당도 많고 펍도 많고 티룸도 많습니다. 가까운 데 경쟁 업소가 많으면 음식 질이 좀 올라가게 돼 있지요. 그래서 브라이튼의 티룸들은 대체로 가성비가 좋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브라이튼에 놀러 오실 때는 배를 많이 비우고 오셔야 합니다. 바닷가니 피쉬 앤 칩스도 먹어줘야 하죠, 펍 천국이니 펍에 들러 영국 에일도 마셔줘야 하죠, 티룸에 들러 크림 티나 아프터눈 티도 즐겨줘야 하죠, 볼 것도 많고 먹어줘야 할 것도 많아 하루 관광으로는 좀 벅차고, 적어도 이틀쯤은 머물러야 이것저것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어요. 하루도 아니고 한 나절 관광으로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다쓰 부처는 하얀 석회암 절벽인 '세븐 시스터즈'에는 못 갔습니다.


<블랙버드> 티룸입니다. 블랙버드는 제가 로빈 다음으로 좋아하는 영국의 '가든 버드'입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영국을 대표할 나라새國鳥 뽑기 전국 투표에서도 블랙버드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1위  Robin 
2위  Barn Owl → <해리 포터>의 영향으로 아이들 표가 결정적 역할을 함. 
3위  Blackbird
4위  Wren
5위  Red Kite
6위  King Fisher
7위  Mute Swan
8위  Blue Tit
9위  Hen Harrier
10위 Puffin

 

 

 

 

 

 

 

 

 

비틀즈 노래 중에도 <블랙버드>가 있지요. 영국의 가든 버드들 중 노래를 가장 잘하는 녀석입니다. 명가수예요. 레파토리도 다양하고, 달리기는 또 얼마나 잘하는데요. 머리 납작 숙이고 순식간에 도도독 도도도도독.


독일에서도 블랙버드를 흔히 볼 수 있다는데, 블로그 이웃이신 빈티지 매니아 님은 블랙버드 녀석들이 늘 "죄송해요" 하면서 도망치듯 달린다고 재미있게 묘사를 해주셨어요. 아, 글 쓰고 있는 지금도 밖에서 블랙버드 소리가 들립니다. 한국 돌아가면 이 소리 그리워 앓게 될 것 같아요.


위 사진에서 이 집 간판을 잘 보세요. 블랙버드 색인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돼 있지요.

 

 

 

 

 

 

 

 

 

 



2층에 앉고 싶었는데 1층이 다 차야만 2층을 개방한다고 하네요. 티룸을 정오 뜬금없는 시간에 갔더니 사람이 없어서 1층에 앉게 되었습니다. 1층은 빈티지 깡통들과 액자가 있어 예스런 분위기가 있고, 2층은 예쁜 새 벽지가 있어 아기자기하고 예쁩니다. 깡통들은 죄 영국의 오래된 유명 브랜드 상품들 깡통입니다.

 

 

 

 

 

 

 



이건 블랙버드 티룸 누리집에서 가져온 2층의 모습. 사진을 눌러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티룸 분위기가 어떤지 감 잡으셨죠.

 

 

 

 

 

 

 

 

 



호텔 티룸에서는 반드시 인원 수대로 아프터눈 티를 시켜야 하지만, 이런 동네 티룸에서는 먹고 싶은 대로 시키시면 됩니다. 이 집은 아침 식사도 제공을 합니다. 둘이 가서 아프터눈 티 2인분을 시키는 것보다는 아프터눈 티 1인에 다른 음식을 시키는 게 더 좋아요. 아프터눈 티는 양이 많아 절대 혼자서 다 못 먹습니다. 저희는 아프터눈 티 1인분에 웰쉬 래어빗Welsh Rarebit을 시켰습니다. 웰쉬 래어빗은 제가 바쓰 방문 때 ☞ <샐리 런>에서도 시켜 먹었던 음식입니다.

 

 

 

 

 

 

 

 

 



차는 대신 2인분을 시켰습니다. 다질링으로 주문했습니다.

 

 

 

 

 

 

 



2단 접시와 스콘 접시가 별도로 나왔습니다.
저는 3단 접시보다는 이렇게 2단 접시와 별도의 접시로 내주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2인이 마주 앉아 먹을 경우 3단 접시는 너무 높아 시야를 많이 가리거든요. 사진 찍기도 힘들고 사진도 예쁘게 안 나오고요. 집에서도 2단 +1단, 이렇게 해서 먹어요.


딸기가 올라왔죠? 원래 아프터눈 티에 생과일을 내는 건 권장하지 않습니다. 생과일은 손쉽게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므로 이 세계에서는 게으른 편법으로 여기고 높이 안 쳐줍니다. 생과일은 집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잖아요? 티룸에 왔으면 페이스트리 셰프의 솜씨를 맛봐야지 이런 생과일을 먹고 있으면 안 되죠. 그런데도 제가 이 집의 생딸기를 '용서'할 수 있는 까닭은, 딸기를 빼고도 접시 위에 '팬시'한 단것들이 무려 여섯 개나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딸기는 가짓수를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일종의 장식이 되죠. 마침 영국 딸기가 제철이기도 하고요. 한국의 호텔 티룸들은 이런 사정도 모르고 계절에 맞지도 않는 생과일을 참 열심히들 올립니다.


호텔 티룸들에 비해 확실히 소박하고 손맛이 좀 더 나지요. 좋네요. 동네 저렴한 티룸이 이 정도 가짓수로 낸다니 훌륭합니다.

 

 

 

 

 

 

 

 


별도로 주문한 웰쉬 래어빗.
알이 좀 더 크고 노른자 맛이 더 고소한 오리알 수란과 버섯이 올라왔습니다. 변형된 웰쉬 래어빗입니다. 치즈 소스를 토스트 위가 아니라 버섯에 올렸어요. 맛있었습니다.

 

 

 

 

 

 

 



이제 아프터눈 티 음식들을 공략합니다.
맨 먼저 샌드위치.
훈제연어, 고트 치즈, 햄 샌드위치가 나왔습니다. 고트 치즈가 제법 '고티'해서 염소젖 치즈 안 먹던 우리 한국인 관광객들 괜찮을까, 걱정이 좀 됩니다.

 

금방 마르기 때문에 항상 샌드위치부터 먼저 먹어야 하는데, 뜨거울 때 맛있게 먹겠다고 웰쉬 래어빗 먼저 먹고 사진까지 찍고 나니 빵이 말라버렸어요. 블로거의 비애죠. 그래서 요리사들 중에는 손님들이 음식 앞에 두고 꼼지락거리며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이가 많아요.


샌드위치들은 그냥 무난합니다. 샌드위치들은 확실히 재료나 맛, 양 등 모든 면에서 호텔 티룸들이 월등히 앞섭니다. 호텔 티룸들은 그 많은 종류의 맛난 샌드위치들을 원하는 만큼 '무제한' 먹게 해주니 결코 비싼 게 아니에요.


질 좋은 연어, 햄, 치즈를 사다 먹던 버릇이 있어 저는 이제 이런 중저가 티룸에서 먹는 티 샌드위치들은 웬만해선 성에 안 찹니다. 호텔 티룸들이 쓰는 재료들도 집에서 쓰는 재료만 못 할 때가 있어요. 특히 훈제연어와 치즈요. 그런데, 영업집 음식과 집밥을 비교하기 버릇하면 나가서 뭘 못 사 먹죠. 적당한 선에서 그러려니 해야죠.

 

 

 

 

 

 

 

 

 

스콘은 딱 한 개만 준다고 해서 야박하다고 툴툴거리려고 했는데, 크기를 보니 어마어마합니다. 호텔 티룸 스콘 세 개를 합친 크기예요. 울퉁불퉁 꺼칠꺼칠 못 생겼죠? 스콘은 모름지기 이래야 합니다. 스콘이 퍽퍽하고 잘 부스러져야 실크처럼 부드러운 클로티드 크림, 촉촉한 잼과 만났을 때 서로 보완하면서 잘 어우러지죠. 이 집은 잼 인심 한번 후합니다. 클로티드 크림은 비싼 크림이라 그런지 양이 적은데 잼은 단지째 갖다 줍니다. 마음껏 퍼먹었어요. 직접 만들어서 쓰는 모양입니다.

 

 

 

 

 

 

 



퍼석퍼석, 질감 제대로네요. 제가 영국 와서 그간 사 먹은 수많은 스콘 중 이 집 스콘이 가장 맛있었습니다. 너무 부드럽고 목 메이게 하는 느끼한 호텔 스콘들보다 맛있어요. 브라이튼 만세.

 

 

 

 

 

 

 



아, 오랜만에 먹는 마카롱. (마꺄홍 ㅋ)

이것도 많이 안 달고 맛있었습니다. 잘 만들었어요. 하나는 바나나 맛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 맛을 까먹었습니다. 어쨌든 둘 다 맛있었어요.

 

 

 

 

 

 

 



살구맛 머랭도 많이 달지 않고 맛있었습니다. 아, 머랭도 맛있을 수가 있구나. 보름달 님, 머랭 좋아하신다는 보름달 님을 변태라고 생각했던 저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알맞게 달면서 맛있는 머랭도 있었네요. ☞ 마지판의 교훈을 그새 잊다니.

 

 

 

 

 

 

 

 


이야, 이것도 맛있었습니다.

쵸콜렛 컵 속에 가나쉬 같은 부드러운 게 들고 위에는 화이트 쵸콜렛 크림이 짜 올려져 있었습니다. 쵸콜렛도 트러플이나 프랄린 같은 걸 사다 그냥 올리면 안 되고 꼭 이렇게 뭔가 변형을 주고 솜씨를 발휘해야 합니다.

 

 

 

 

 

 

 



브라우니.
우습게 여겼는데 속에 촉촉한 소스를 다 짜서 넣었어요. 맛과 색을 봐서는 토피나 버터스코치 소스 같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이것도 맛있었습니다.

허허, 이 집 솜씨 좋네...

식사용 다른 음식들도 내는 집인데 이 많은 걸 언제 다 만들고 있을까요.

 

 

 

 

 

 

 



아직 안 끝났습니다. 헉헉
혼자서는 절대 다 못 먹을 양이니 인원 수 대로 아프터눈 티 시키시면 안 됩니다. 영국 케이크도 한 쪽 올렸습니다. 이름은 뭔지 모르겠는데, 맛을 보니 영국의 클래식 티 케이크인 '레몬 드리즐 케이크' 맛 비슷하게 납니다. 기본은 파운드 케이크이나 레몬 커드를 발라 촉촉하고 맛있었습니다.


호텔처럼 참 알차게 이것저것 많이도 내줍니다. 동네 티룸이 손수 만든 단것 종류를 무려 여섯 가지나 올리다니, 대단하죠. 제가 오래 전에 방문하고 욕을 바가지로 했던 ☞ 옥스포드의 어느 티룸과 비교해보세요. 5년 전인데도 값은 이 블랙버드 티룸보다 더 비싸면서 양과 질, 담음새, 분위기, 모두 형편없습니다. 그러니 영국 오시면 티룸도 아무데나 들어가지 마시고 잘 골라서 가셔야 합니다. 요즘은 누리터에서 정보 얻기가 많이 쉬워졌지요.

 

 

 

 

 

 

 



이 정도면 가성비가 매우 훌륭한 축에 듭니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번 돈 환전해 갖고 와서 쓰려니 뭐든 눈물 나게 비싼 것 같지만 영국인은 급여를 많이 받습니다. 인건비가 비싼 나라예요. 1파운드를 우리돈 1천원 정도로 생각하시면 영국인들 체감 물가와 얼추 맞습니다. 어떤 땐 그보다 더 싼 것 같기도 하고요.


비좁은 자리, 너무 작은 식탁, 그리 완벽하지 못한 매장 청소 상태, 은제 다구 관리 부실 등, 아쉬운 점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음식만 놓고 보면 이 집은 추천할 만한 집입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브라이튼 티룸 중에 <목 터틀Mock Turtle>이라는 집도 있는데, 둘 다 방문할 수는 없으니 고민 끝에 이 집을 선택했습니다. <목 터틀>은 찻잔과 접시, 심지어 티포트까지, 우리 집에 있는 것과 똑같은 걸 쓰고 있어서 신비감이 떨어지더라고요. 크림도 푸석푸석한 게 어째 실크처럼 부드럽고 진한 진짜 클로티드 크림 같지가 않고 라즈베리 잼도 젤리에 가까워 보입니다. 먹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되겠지만요. 오후 티타임에 지나가면서 슬쩍 한번 봤더니 정말 한국인들로만 꽉 찼습니다. 밖에 대기하는 사람도 다 있었어요. 다음에 또 브라이튼 갈 일 있으면 그때 방문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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