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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치즈 스트로 Cheese Straw 본문

영국음식

[영국음식] 치즈 스트로 Cheese Straw

단 단 2015. 11. 12. 00:00

 

 

 

 

 

11월 11일.
오늘 빼빼로 데이죠?
일본 과자 베낀 과자 팔아먹느라 만든 날인데,

하필 오늘이 한국에서는 농업인의 날이랍니다.

그래서 빼빼로 대신 우리쌀로 만든 가래떡 홍보하느라 재미있는 만화가 한 편 떴습니다. ☞ 달콤 쌀쌀한 신혼 부부
오늘 하루동안 우리쌀 홍보하느라 여기저기서 가래떡 레서피가 막 쏟아졌는데, 그 중 압권은 이것. ☞ 떡빼로
그,그냥 떡볶이나 떡꼬치 양념해 먹는 게 낫지 않을까;;
맛있는 음식 놔 두고 왜;;

 

 

 

 

 

 

 

 


저는 영국에 있으니 빼빼로나 가래떡 대신 치즈 스트로를 사 먹기로 했습니다. 이 치즈 스트로가 아무리 늦어도 1870년대 이전부터 존재하던 영국 전통 음식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어느 나라든 콕테일 파티에 빼놓지 않고 꼭 내는 거잖아요? 영국의 고급 수퍼마켓인 <웨이트로즈Waitrose>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까나페가 이 치즈 스트로라는군요. 치즈 스트로 맛있죠. 이건 아이들도 좋아하잖아요.

 

 

 

 

 

 

 



오백 쪽에 달하는 영국음식 백과사전을 꺼내 봅니다. 제가 영국음식 글 쓸 때 자주 참고하는 책입니다. 이 책말고도 영국음식에 관한 인문서적이나 백과사전, 요리책이 집에 많아요. 채리티 숍에서 보기만 하면 집어 옵니다. 심지어 영국의 중요한 국가 행사나 외교 만찬에 썼던 메뉴판, 호화 유람선에서 썼던 메뉴판들만 모아 소개하는 책도 있어요. 메뉴판 수집가가 영국에는 많습니다. 메뉴판도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지요.

 

 

 

 

 

 

 

 


어? 있다 있어!
치즈 스트로!

 

 

 

 

 

 

 



치즈 스트로의 규격과 외형 묘사가 돼 있습니다. 사진을 누르면 큰 글씨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쓰지 않고 글로 구구절절 묘사해 놓은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을 다른 이들이 인용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진으로 실어 놓으면 후대의 연구자들이 자기 글에 인용할 때 사진 저작권자를 따로 찾아 연락을 취해야 하므로 매우 번거롭죠. 그림이나 사진은 그 사이에 원본이 유실될 수도 있고요. 게다가 이미지만 봐서는 정확한 크기나 성상을 오히려 가늠하기 힘들 때도 많잖아요. 식품 묘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글이 최곱니다.

 

 

 

 

 

 

 



치즈 스트로의 역사와 만드는 법technique도 소개가 돼 있습니다. 이것도 사진을 누르면 큰 글씨로 보실 수 있어요. 요리책이 아니므로 재료 양까지 구체적으로 적어 놓지는 않습니다. 고장마다, 집집마다, 사람마다, 조리법이 다를테니 변주가 심한 음식인 경우에는 어느 한 가지 조리법으로 적어 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치즈 스트로는 쓰이는 페이스트리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뉩니다:
(1) 깨물면 딱 소리가 나면서 부서지는 단단한 쇼트브레드 치즈 스트로
(2) 층과 결이 있어 깨물면 파사삭 부서지는 퍼프 페이스트리 치즈 스트로

 

쇼트브레드로 만든 단단한 치즈 스트로가 퍼프 페이스트리 치즈 스트로보다 먼저 존재했습니다. 치즈는 두 가지가 쓰입니다: 체다파마산. 둘 다 맛이 분명하면서 강한 치즈들이죠. 현대에 와서는 그뤼예르를 쓰기도 하는데, 치즈 스트로는 술안주이므로 좀 짭짤하고 맛이 강해야 좋습니다. 그뤼예르도 맛있는 치즈이긴 하나 체다나 파마산만큼 강한 맛을 못 내줍니다. 어느 나라든 술안주는 식사보다 적은 양을 내는 대신 짭짤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것들로 즐기는 경향이 있지요. 그뤼예르는 그냥 드시거나 퐁듀 만들 때 쓰세요. 체다와 파마산은 서양인들에겐 조미료나 마찬가지인 치즈입니다.


Q: 그런데 영국 전통 음식에 왜 이태리 치즈가 같이 쓰였나요?
A: 영국이 파마산Parmigiano Reggiano을 수입해다 먹은 지가 30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1666년 런던 대화재 때 애지중지 아껴 먹던 파마산 덩이를 땅에 꽁꽁 묻어 두고 피신했다는 사람 일기도 다 발견되고 있어요[Samuel Pepys]. 영국 전통 음식에 그래서 파마산이 들어가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자국에서 늘 볼 수 있었던 체다보다는 비싼 수입품이었던 파마산에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가졌을 거라는 짐작도 해볼 수 있겠고요.

 

 

 

 

 

 

 

 

 


비교 시식하느라 모두 세 종을 사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사다 먹은 치즈 스트로 중 하나가 좀 특이합니다. 먹을 때는 분명 쇼트브레드의 단단한 질감이 났는데, 단면을 보니 지층처럼 결이 나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 '엄마손 파이'처럼 결대로 쪼개지기도 하고요. 신기해하며 먹었습니다. '하이브리드'일까요?


치즈 스트로는 누리터에 레서피가 이미 수두룩 있을 텐데요, 뚝딱 만들 수 있는 아주 쉬운 레서피로 저도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미리 만들어진 냉동이나 냉장 퍼프 페이스트리를 구하기 힘들 테니 1800년대에 여기 사람들이 먹던 것과 비슷한 쇼트브레드 치즈 스트로 레서피로 찾아서 올려 드립니다. 시간과 힘이 남아 돌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분들은 집에서 직접 퍼프 페이스트리를 만들어 쓰셔도 됩니다. 영국에서는 요리사들도 웬만해서는 집에서 퍼프 페이스트리를 만들지 않고 사다 씁니다. 수퍼마켓들이 싸구려 대체 유지 안 쓰고 버터만 써서 잘 만든 맛있는 것들을 팔기 때문에 집에서 고생해 가며 만들 필요가 없어요.

 

 

 

 

 

 

 



체다 블록과 치즈 그레이터를 준비해 주세요. 코스트코에서 파는 느끼하고 고무 질감 나는 미국산 속성 맹탕 체다들로는 맛이 제대로 안 납니다. 복잡하고 진한 맛이 나면서 쨍한 산미onion tang가 있는 미색의 영국산 장기 숙성 체다로 쓰세요. 한국에 영국산 체다가 어떤 것들이 들어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마트 자사 상표인 피코크Peacock 체다나 온라인 치즈 전문점들이 취급하는 라이크로스 팜 체다Lye Cross Farm Cheddar처럼 PDO 마크가 있는 영국산 체다면 일단 합격입니다. 아무리 짧아도 9개월은 숙성시켰다는 증표가 됩니다. 지금도 팔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커씨드랄 씨티 엑스트라 머추어 체다Cathedral City Extra Mature Cheddar도 추천합니다. PDO 마크는 안 붙었지만 숙성 기간이 14개월로 더 길고 가성비 좋은 맛있는 체다입니다. 본 것들 중에서만 추천해 봅니다. 이것들말고도 영국 체다 들어가 있는 것 있으면 저 좀 알려 주세요. 영국 체다들은 타국 모방 체다들과 맛이 정말 많이 다르므로 결과물의 느낌도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영국안에서도 생산자별로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 요리사들마다 각자 선호하는 체다 브랜드나 장인이 따로 있고, 레서피에 종종 생산자나 브랜드 이름을 같이 적어 주기도 합니다.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이 취급하는 체다를 오늘 검색해 보니 체다만 자그마치 103개 제품에 달합니다.

 


재료

 영국산 장기 숙성extra mature or vintage 체다 150g, 치즈 그레이터에 갈기
중력분plain flour 200g + 작업대에 뿌릴 것 소량
훈향 씌운 고춧가루smoked paprika, 양은 취향껏. 없으면 카이옌 페퍼로 쓰셔도 됩니다. 원래는 카이옌 페퍼를 쓰는 게 정석인데 변주를 주느라 훈향 나는 고춧가루를 쓰는 겁니다. 넉넉히 넣으세요.
후춧가루, 즉석에서 간 것, 양은 취향껏
버터 100g, 깍둑 썰어 온도 차갑게 유지해 둘 것
달걀 노른자 1개
양귀비 씨앗poppy seeds, 치즈 스트로 겉에 묻힐 정도의 양. 고소한 맛과 식감, 재미있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요즘 양귀비 씨앗을 제과제빵에 쓰는 분들이 많지요. 제가 반은 양귀비 씨앗 묻혀서, 반은 안 묻히고 그냥 구워 봤는데요, 묻힌 쪽이 훨씬 맛있습니다. '쩐내' 안 나는 신선한 것으로 쓰세요.


만들기

1. 오븐을 220˚C로 예열한다. 팬 오븐은 200˚C.


2. 넓은 베이킹 트레이에 유산지를 깔든, 실리콘 매트를 깔든, 버터칠을 하든, 하여간 달라붙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3. 보슬보슬 간 체다에 체친 밀가루, 고춧가루, 후춧가루를 합쳐 준다.


4. 깍둑 썬 찬 버터를 넣고 빵가루처럼 될 때까지 양 손으로 비벼 준다.


5. 달걀 노른자를 풀어서 넣고 버터 나이프 같은 것으로 잘 섞는다.


6. 가볍게 주물러 뭉친 뒤 밀가루 도포한 작업대 위에서 밀대로 5mm 두께의 직사각형이 되도록 민다.


7. 날카로운 칼로 치즈 스트로 모양이 되도록 길게 썬다.


8. 평평한 그릇에 양귀비 씨를 깔고 치즈 스트로 한 면에만 꾹 묻혀 준다.


9. 양 쪽을 잡고 몇 번 꼬아 양귀비 씨가 나선형으로 보이도록 한다. 부서질 것 같으면 꼬지 않고 그냥 일자로 구워도 된다.


10. 베이킹 판에 띄엄띄엄 배치한 뒤 오븐에 넣어 10~15분 정도 구워 준다. 각 오븐마다 성격과 성능이 다르므로 굽는 시간은 알아서 판단한다. 충분히 구워야 안 부서지고 단단하다. 양귀비 씨가 타면 쓴 맛이 나니 주의한다.


11. 오븐에서 막 나왔을 때는 연약해서 잘 부서지니 판 위에 그대로 몇 분 두었다가 좀 식으면 식힘망으로 옮겨 완전히 식힌다. 끝.

 

 

 

 

 

 

 



치즈 스트로는 삐뚤빼뚤 못생기고 투박할수록 맛있어 보이니 공장제 제품처럼 너무 완벽하고 예뻐 보이게 만드느라 스
트레스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못난이 치즈 스트로가 이래봬도 미슐랑 2-스타 셰프가 만든 겁니다. ㅋㅋ

 

 

 

 

 

 

 

 


같은 레서피로 이번에는 제가 만들어 본 것.
아, 자기 몸이 짧다고 치즈 스트로도 짧게 만들었어요. 꼬다가 부서질까봐 소심하게 그냥 일자로 구웠습니다. 노른자 쓰고 남겨 두었던 흰자를 붓에 묻혀 바른 뒤 양귀비 씨앗을 묻혀 주면 훨씬 잘 붙습니다. (어따, 인심 좋네, 많이도 붙였어.) 집에서 만든 것들은 확실히 시판 제품들보다는 덜 단단합니다. 시판 제품들은 운송중 파손을 염려해서인지 단단하게 굽는 경향이 있지요. 이 쇼트브레드 타입 레서피로 만들면 치즈 스트로에서 그야말로 쇼트브레드 식감이 납니다. 빨간 타탄tartan 포장의 <워커스Walkers> 쇼트브레드 아시죠? 시판 치즈 스트로들은 깨물면 '딱' 소리가 나고 이건 '둑' 소리가 납니다.

 

 

 

 

 

 

 

 


참, 체다 블록을 사서 다 못 쓰고 남았을 땐?
치즈 그레이터로 전부 갈아 냉동 보관하면 좀 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체다는 얼려도 맛을 잘 간직하고 있는 '착한' 치즈입니다. 버리지 마시고 끝까지 알뜰하게 사용해 보세요.



☞ 체다 잘 고르기
☞ 영국음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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