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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보드 구성하는 법 Guide to creating a cheeseboard 본문

세계 치즈

치즈보드 구성하는 법 Guide to creating a cheeseboard

단 단 2015. 1. 2. 00:00

 

 

 

 

 

단단: 치즈보드 구성하는 "법"? 그딴 건 없어. 그냥 능력 닿는 한 자기가 좋아하는 치즈 모조리 사다가 올리면 돼.

 

기웃이: 에이, 그럴 리가 있나요. 그래도 뭔가 원칙이라든가, 그런 게 있을 것 같은데?


단단: 없어.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치즈 사다가 올리면 돼.


기웃이: 에이, 그러지 말고, 비법 같은 거 있으면 살짝 귀띔 좀 해 줘요.


단단: 아, 그런 건 없어! 정 '법칙'스러운 뭔가를 억지로 만들어 지키고 싶으면 그럼 이렇게 해보라고.


기웃이: 거 봐, 뭔가 있지.


단단: 법칙 아니야. 치즈 잘 모르는 사람이 하도 막막해하고 지침 비슷한 걸 듣고 싶어하니 그냥 쉬운 '팁' 하나 주는 거야. 일단, 치즈의 세계는 담론 편의상 몇 가지 범주로 나뉘는데, 그 범주에 드는 것들 중 하나씩 사다가 놓기만 하면 돼. 가령,

 

1. 단단한 경성 치즈 하나  위의 치즈보드에서는 체다


2. 덜 단단한 반경성 치즈나 반연성 치즈 하나  아펜젤러


3. 표면에 흰곰팡이가 덮인 수분 많고 말랑말랑한 연성 치즈 하나  브리 드 모


4. 껍질을 술이나 소금물로 닦아 표면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수분 많고 말랑말랑한 (주황색) 연성 치즈 하나  이푸아스


5.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푸른곰팡이 치즈 하나  스틸튼


6. 염소젖이나 양젖 치즈 하나. 혹은 각각 하나씩  키더튼 애쉬(염소젖 치즈)

 

7. 과일이나 채소, 캬라멜, 향초, 향신료 등의 부재료를 넣어 맛낸 맛치즈 하나  웬즐리데일 맛치즈 2종


여기까지가 기본이고, 다음 두 개는 옵션.


8. 지금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계절 특별 치즈seasonal cheese 하나  크리스마스 푸딩 맛을 낸 웬즐리데일 맛치즈

9. 위의 범주와는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해서 보드 위에 꼭 놓고 싶은 치즈 하나  흰곰팡이와 푸른곰팡이가 동시에 있는 몬타뇰로 아피네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고. 위 치즈보드에 간택돼 올려진 것들은 순 내 취향에 맞춘 것들이니 따라할 필요는 전혀 없고, 각자가 자기 취향에 맞는 것으로 고르면 돼. 부재료를 넣어 맛낸 치즈는 진정한 치즈가 아니라고 허세 떠는 인간snob이 간혹 있는데, 연말연시 파티에는 뭐 어른들만 모이나? 모인 사람 모두가 각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치즈가 적어도 하나씩은 있어야 진정한 파티. 그러니 애들도 생각해서 달콤하고 맛있는 치즈는 꼭 올려야 한다고. 하지만 가공 치즈를 올리는 건 안 돼. 그건 격이 너무 떨어져. 가공 치즈는 파티에 내지 말고 혼자서 몰래 즐기라고. 부재료 넣어 맛낸 맛치즈랑 가공 치즈를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은데, 치즈 자체의 성질이 변하면 가공 치즈, 자연 치즈에 과일이나 향초 같은 걸 그냥 박아 넣기만 한 건 어쨌거나 자연 치즈. 위 치즈보드에 있는 것들은 모두 자연 치즈.

 

8번을 좀 더 설명하자면,
오늘날엔 치즈를 거의 일년 내내 생산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직 계절을 타는 치즈들이 있어. 예를 들어 바슈랭 몽 도 Vacherin Mont d'Or 같은 치즈는 생산돼서 나오는 시기가 일년 중 몇 개월로 한정돼. 위의 치즈보드에서 7시 방향에 올 가 있는 알록달록하면서 보슬보슬 부서져 있는 치즈는 크리스마스때만 내는 맛치즈. 그러니 이것도 계절 한정 생산 치즈인 셈. 이런 건 재미 삼아 올려 보는 것도 괜찮다.

 

자, 다음은 각론.

 

 

 

 

 

 

 



다쓰 부처가 가장 좋아하는 경성 치즈 - 영국의 체다.
사진에 있는 건 전통 체다가 아니고 모던 체다인데, 내 입맛엔 모던 체다가 더 맛있더라고. 3년 숙성.

 

 

 

 

 

 

 



단단이 가장 좋아하는 스위스 치즈 - 아펜젤러Appenzeller.
반경성 치즈인데, 이것 대신 네덜란드의 하우다Gouda도 반경성 치즈로 괜찮다.

 

 

 

 

 

 

 



다쓰 부처가 프랑스 치즈 중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 - 브리 드 모Brie de Meaux. '흰곰팡이 연성 치즈'에 속한다. 사진에 있는 건 크리스마스에 맞춰 잔뜩 만들어 낸 것들이라 숙성이 좀 덜 돼 보인다. 숙성돼서 속살이 용암처럼 흘러내려야 맛있고, 실온에 좀 더 두면 지금보다 더 흐르기는 하는데, 이건 프랑스 생산자 쪽에서 너무 안 익은 걸 납품한 것 같아. 속성 출하시켜 시큼하고 까실거리기만 하는 흰곰팡이 연성 치즈만큼 짜증 나는 것도 또 없다.

 

 

 

 

 

 

 

 


다쓰 부처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치즈 - 이푸아스Epoisses.
'껍질을 닦은 연성 치즈'에 속한다. 나는 시판 제품 중에서는 베르또Berthaut 사 제품이 가장 맛있더라고. 막걸리에 꿀 탄 것 같은 맛이 나면서 껍질은 꼭 부드러운 불고기 씹는 것 같은 질감이 난다.

 

 

 

 

 

 

 



다쓰 부처가 가장 좋아하는 블루 치즈 - 영국의 스틸튼.
소위 세계 3대 블루 치즈[록포르, 고르곤졸라, 스틸튼] 중에서는 스틸튼이 우리 한국의 된장, 청국장과 맛이 가장 많이 닮았다. 다른 블루 치즈들에는 없는 '구수한 맛'이 있다.

 

 

 

 

 

 

 



다쓰 부처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 치즈 - 몬타뇰로 아피네Montagnolo Affine.
흰곰팡이와 푸른곰팡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3중 크림 치즈triple cream cheese. 아무나 이런 흰곰팡이 푸른곰팡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3중 크림 치즈를 잘 만들지 못 한다. 프랑스도 흉내를 잘 못 내더라고.

 

 

 

 

 

 

 



염소젖 치즈인 영국의 키더튼 애쉬Kidderton Ash.
테두리의 까만선은 숯가루. 고트 치즈는 사실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는 게 이만저만 고민이 아닌데, 이보다 더 맛있는 것도 많지만 동그란 모양과 독특한 질감, 순한 맛 때문에 그냥 이걸로 골라 봤다. 고트 치즈 못 먹는 사람이 많으니 여럿이 모이는 파티일 때는 가능하면 순한 맛으로 고르는 게 좋다. 사진을 잘 봐라. 뽀얘야 할 속살이 분홍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과숙했다는 소리다. 떨이 하는 걸 사 왔더니 저렇다. 포장에 꽁꽁 싸여 있으니 살 때는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을 위한 맛치즈 ① - 웬즐리데일 망고 & 당절임 생강stem ginger.
다쓰 부처는 티타임에 케이크 대신 이 치즈를 먹기도 한다. 지나치게 맛있어서 한 조각 사 오면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치울 때도 있다.

 

 

 

 

 

 

 



아이들을 위한 맛치즈 ② - 웬즐리데일 솔티드 캬라멜.
불후의 명작.
아이스크림 사 먹을 필요 없이 이거 먹으면 된다. 디저트 내기 고민되면 이거 내면 된다.

 

 

 

 

 

 

 



웬즐리데일 맛치즈 크리스마스 한정판.
이런저런 크리스마스 과일과 향신료로 맛낸 크리스마스 푸딩 맛 치즈. 이런 건 이때 아니면 맛볼 수 없으니 재미로 넣는다. <알디ALDI> 수퍼마켓 구경 갔다가 살 게 없어서 그냥 이거 하나 집어 왔는데 맛은 없다.

 



퓨리스트Purist
치즈 이야기만 했는데, 와인, 크래커, 빵, 과일, 채소, 처트니, 젤리, 피클 등은 취향껏 알아서 곁들인다. 다쓰 부처는 무알콜 멀드 와인mulled wine과 함께 먹었다. 위의 치즈보드는 약 6인분의 양.

 

단단은 사실 많이 늘어놓고 먹는 것보다는 한 자리에선 하나의 치즈만 집중해서 먹는 걸 좋아한다. 너무 짜서 맨입에 먹기 힘든 치즈가 아니면 크래커나 빵 따위 쓸데없이 배불리는 탄수화물도 잘 안 놓고, 치즈가 가진 미묘한 꽃향이나 과일향을 방해하는 생과일도 안 놓고 달랑 치즈만 먹으려 드는 똥고집이 있다. 어, 먹는 거 설명하는데 똥 얘기해서 미얀.


저 위에 잔뜩 차려놓고 사진 찍은 건 순전히 이 블로그 독자들을 위해 게시물 하나 만들려고 한 것. 아, 돈 많이 들었다고. 저기 올린 것의 네 배 정도 양이 냉장고에 남아 있긴 하지만 이 게시물 만들려고 치즈 10종 사는 데 3만 8천원이나 썼다고.

 



치즈 먹는 순서
보통은 맛이 약한 것에서 점차 센 것으로 옮겨가며 먹으라는 조언들을 하지. 풍미 짙은 치즈 먹다가 순한 치즈 먹으면 맛이 하나도 안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초대 받아 와 치즈를 처음 보는 손님들이 어떤 치즈가 어느 정도의 진한 맛인지, 어느 정도의 짠맛을 내는 치즈인지 어떻게 아냐? 이건 전적으로 파티 호스트가 설명을 해 줘야 할 문제지. 그러니 먹기 전에 사람들한테 귀띔을 해주거나, 치즈 이름, 원산지, 강도 등을 표시해서 치즈 앞에 두는 게 좋지.

 



치즈 코스 후 디저트 vs 디저트 후 치즈 코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만찬 때 치즈를 먹는 순서가 다르다. 프렌치들은 디저트를 먹기 전에 치즈 코스를 넣고, 브릿들은 디저트 후에 치즈 코스를 넣는다. 프렌치들은 "뭬야? 달달한 디저트로 식사를 마치는 게 상식이지. Sucré must follow salé!"라 생각하고, 브릿들은 "뭬야? 앞에서 수프, 샐러드, 전식, 본식을 모두 짭짤할 것으로 먹었는데, 치즈 코스 전에 단 디저트가 잠깐 끼는 것도 괜찮지. 단맛 강한 포트port와 함께 치즈를 먹음으로써 식사 끝. 그리고 나서는 바로 씨가cigar 한 대. 이런 게 바로 럭셔리지, 암." 이렇게 생각한데서 생긴 차이.

 

문화의 차이니까 어느 쪽이 맞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구강 위생 면에서는 치즈 코스를 맨 마지막에 두는 영국식이 조금 낫기는 하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치즈가 디저트의 당분이 치아에 들러붙어 해를 입히는 걸 막는 역할을 한다는군. 그러니 밖에 나가 식후 바로 양치질을 할 수 없는 상황일 땐 작은 치즈 한 조각으로 식사를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다. 치즈는 우유와 달리 입에 그 호러블한 냄새를 전혀 남기지 않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가공치즈는 우유와 마찬가지로 냄새 작렬. 으윽. 자연 치즈로 먹어야 효과 본다. 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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