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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세계 음식

물려받은 요리책

단 단 2018. 3. 25. 21:39

 

 



1969년에 결혼한 우리 권 새댁.
풍류를 즐기며 주지육림 세상을 꿈꾸던 '파티 애니멀' 남편 탓에 살면서 손님상을 수도 없이 차렸다는데.


 

 

 

 

 

 

 

책 함부로 다루는 분 아닌데 요리책이 이렇게 너덜너덜 성한 곳 없는 까닭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삼한 애새끼를 무려 네 마리나 둔 엄마요, 실제로 부엌에 책 펼쳐놓고 부지런히 요리를 해댔기 때문이다. 사글세 살며 하도 이사 다니는 통에 앞 172개 쪽은 떨어져 나간 지 오래, 앞뒤 표지도 온데간데. 

 

 

 

 

 

 

 


습기 많은 부엌에 두어 책장도 우글우글 얼룩얼룩.

그런데, 
저 시절에 요즘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주방 가전들과 도구들이 한국에 있었다고? 오오...
겉모습이 크게 달라진 것이라곤 주방저울뿐이네.

 

 

 

 

 

 

 


요즘 주부인 단단은 닦기 편하고 수납하기 좋은 납작하고 매끈한 디자인의 유리 전자 저울을 쓴다.

 

 

 

 

 

 

 


초판 1965년. 2판 1971년.
결혼한 뒤 샀다고 하시니 아마 2판 나오자마자 사셨던 게 아닌가 싶다. 저 시절의 4,800원을 통계청 들어가 요즘 돈으로 환산해 보니 무려 90,580원. 와아, 어린 권 새댁, 큰 돈 썼네.

 

 

 

 

 

 

 


다루고 있는 음식 목록.
영국 가서 처음 본 '계란 피클' 레서피가 여기 있네.
'구기 샤워', '구기 콜라'가 궁금.

 

 

 

 

 

 

 


이 장에서는 '꽃밭 샐러드', '꿩 커틀릿', '노란 소오스'가 궁금. 
'데미글라스 소오스', '데블드 롭스터', '데블드 에그'에, 이야, '도우넛'까지?

 

엄마가 도우넛 만들어 주실 때 반죽 찍는 작업을 종종 거들곤 했다. 

 

 

 

 

 

 

 


저 시절엔 양파를 '둥근파'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비린내 안 나는 생선 조림'. 
끌끌... 그놈의 생선 비린내.  
생강술을 쓰라는둥, 우유에 담갔다 꺼내라는둥,
한국에서는 생선 비린내 없애는 데 참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는 것 같다. 신선한 생선 얻기가 힘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신선한 생선에서는 향긋한 바다 내음이 나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유럽인들이 생선 요리할 때 비린내 잡는 선작업하는 거 못 봤다.

 

 

 

 

 

 

 

 

단단이 좋아하는 동남아식 '참깨 새우 식빵 튀김'. 
영국식 'double crust' 애플 파이,

'오월의 비'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콕테일,  
'오이 베샤멜 소오스 튀김'.

한식, 중식, 일식, 동남아식에 '양식'까지, 다루는 음식 문화권cuisine의 범위가 실로 광대하다. 나라별 요리책은 흔해도 이런 요리책은 요즘 찾기 힘들지 않나.

 

 

 

 

 

 

 


'이이스트 샐러드', '이탈리아식 무우 조림', '장미 샐러드'... 
희한한 음식 많다.

자,잠깐, 
가정요리에 '참새구이', '참새 프라이'라고?
껍질 벗긴 참새를 식재료로 살 수 있었단 말인가?
서,설마 집 마당에서 잡은 걸로?;;
   

 

 

 

 

 

 

 


'에그녹'이 다 있네.
옛날 사람들의 외국어 한글 표기가 재밌어서 볼 때마다 키득거리게 된다.

포오크, 코오피, 파아티, 폿 로우스트 오브 비이프, 호트 카스타아드 크리임.

한식도 요즘 나오는 요리책들보다 다루는 종류가 훨씬 많다.

 

 

 

 

 

 

 


단단이 옛날 요리책을 접할 때 가장 먼저 찾아 보는 항목은 '떡볶이'인데, 옛날 떡볶이들이 재료도 훨씬 고급이고 맛도 우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쇠고기, 표고버섯, 석이버섯에, 당근, 미나리, 황백 지단, 실백(잣)까지. 

요즘 떡볶이들은 맛이 하도 사납고 우악스러워 밖에 나가서는 이제 떡볶이 못(안) 사 먹는다. "이 요리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것으로서 영양가도 상당히 높은 음식입니다." 요즘 떡볶이가 어디 그런가.

 

 

 

 

 

 

 


영국 유학생 단단, 은제 다구와 홍차 찻상에 눈이 번쩍.
흐음... 저 시절에 한국인이 홍차를 즐겼을 리 만무한데...  
아무래도 일본책을 많이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네.

권여사님으로부터 뒤늦게 전해 들은 이야기:
지금도 보기 힘든 홍차를 옛 사람들이 즐겼을 리 만무하다 생각하고 쓴 건데, 권여사님 왈, 오히려 저 시절엔 다방들이 코오피뿐 아니라 홍차도 기본으로 제공했었다고. 우리나라에 홍차가 유행한 적 있다니 놀랄 노 자字로세. 하긴, '다방'인데.

 

 

 

 

 

 

 

 

외국 나가 본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이니 서양식 파티는 어린 새댁들에게 몹시 신기한 세계였을 것이다. <티이 파아티>의 설명에서 '호스테스'와 '애시스턴트'를 언급하는 게 흥미롭다. <바아베큐> 항목의 '후식' 설명도 재미있다. "후식으로는 샐러드, 복숭아 통조림 등이 적합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요즘 아이들은 "손님한테 누가 통조림 과일을 내요?" 하겠지만 우리 어릴 때 '후르츠 칵테일'과 복숭아 통조림은 호사스러운 식품이었다우. 복숭아 통조림은 사실 지금도 맛있지 않나. (스페인산 <알쿠니아> 강추. 마트에서 판다.)

 

 

 

 

 

 

 

 

호트 카스타아드 크리임.
영국식 '호트' 발음은 마음에 든다만 거기 '크리임'은 왜 붙여. 

 

그런데 재료와 조리법을 보니 디저트용 소스인 영국식 묽은 커스타드custard, crème Anglaise가 아니라 페이스트리 충전용 크림인 크렘 빠띠씨에crème pâtissière다.

 

 

 

 

 

 

 

 

식재료 설명도 중간중간 삽입해 놓았다.
잘 고르는 법, 선도 구분법, 보관법, 다루는 법 등이 소개돼 있다. 

 

 

 

 

 

 

 


털썩.
스코치 에그를 50년 다 돼 가는 엄마의 옛 요리책에서 보게 될 줄이야. 심지어 '스카치' 에그도 아니고 '스코치' 에그로, 제대로 영국 발음이다. 펜으로 표시가 된 걸 보니 실제로 만들어도 보셨던 모양. 재료가 튀어 책에 자국도 다 남았다. 단단이 적었던 주의사항이 똑같이 적혀 있어 놀랐다.

☞ 스코치 에그 집에서 만들기 

 

 

 

 

 

 

 


재료 손질법도 간간이 삽입돼 있는데,

닭 손질법 보고 꽥;;
다행히 권 새댁은 대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털 뽑아 가며 닭 손질해 본 적은 없었다고.
 
제아무리 호기심 많은 단단도 어릴 적 엄마 따라 재래시장 가는 것만은 아주 질색을 했는데, 이유인즉슨, 시장 입구에 있는 생닭집에 들러 "닭 한 마리 주세요." 하면 아저씨가 퍼드덕 퍼드덕 살아 있는 닭을 그 자리에서 털 뽑고 목 쳐서 손질해 주는 게 보기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 또, 어물전 지날 때마다 바닥에 마구 버린 생선도마 씻은 물이 신발에 묻는 것도 그렇게 싫을 수가 없는 거라. "엄마 따라오면 장 다 보고 나서 핫도그 사 줄게." 권여사님의 약속을 듣고서야 겨우 따라 나섰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핫도그란 것도 얼마나 조악했는지 내 새끼손가락 길이와 굵기밖에 안 되는 딱딱한 소세지(는 맞나?)에, 소다 잔뜩 넣어 부풀린 쓴맛 나는 밀가루 반죽에, 산패된 기름에. 그래도 그 시절엔 간식거리가 많지 않아 그것도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아, 하물며 갓 튀겨 파는데. 기름기 잦아들기 전 설탕에 한 번 굴리고 케첩 휘리릭. 크으... 

 

 

 

 

 

 

 


단단 아기와 그 일당의 만행.
우리 권여사님, 책 아끼는 분인데, 크흡 엄마 미얀~
내 새끼가 저 짓 했으면 3일 동안 쓰디쓴 ☞ 라디끼오를 갈아서 멕였을 것이다.


엄마, 우리 어릴 때 맛난 거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먹는 시간이 참 행복했어요.
내 이번 목요일에 한일관 가서 좋아하시는 불고기 사 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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