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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우표] 북한 2003 - 옥류관 평양냉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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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우표] 북한 2003 - 옥류관 평양냉면

단 단 2018. 4. 25. 18:53


 

 

 

평창 동계 올림픽 직후 우리 가수들이 북한의 음악가들과 함께 평양에서 친선 공연을 했었죠. 공연 후 <옥류관>에서 냉면 먹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혔는데,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의 냉면에 남한의 평양냉면 애호가들과 '면스플레인' 혐오가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었습니다.

남한에는 본디 '우아한 육수에 뻘건 양념장이나 겨자를 풀어 흙탕물을 만드는 것은 근본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거리요' 파(派)와, '걸레 빤 물에 담긴 심심한 면 따위 양념장이나 식초·겨자 없이는 도저히 못 먹어 주겠다, 개취(개인 취향)를 존중하라' 파가 투닥거리고 있었는데, 아, 뻘건 국물의 본고장 평양냉면 모습에 양쪽 다 깜짝 놀랐단 말이죠. 후자는 "거봐 거봐, 평양에서도 식초 뿌리고 겨자 넣고 다대기까지 넣어 먹잖아?" 기세등등, 의기양양, 득의만면.

단단은 방이동 <봉피양> 냉면을 좋아하는데다, 냉면은 늘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주방에서 내준 그대로 먹는 사람이라 <옥류관> 냉면을 보고 좀 놀라긴 했습니다. 게다가 면도 색이 진하면서 고무줄처럼 질겨 보여 마치 남한에 한때 유행하던 시커면 칡냉면 느낌이 났더랬죠. 맑은 육수에 툭툭 끊어지는 면을 선호하는 '우아한 평냉'파들 중에는 "자극적인 것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의 싸구려 입맛에 맞추느라 북한도 어쩔 수 없이 타락한 것, 예전엔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며 맞섭니다. 그런데, 음식우표 수집가인 단단이 마침 '평양랭면'을 담은 15년 전 북한 우표를 한 장 가지고 있으니 같이 한번 보시죠. 사진을 누르면 큰 사진이 뜹니다.  

 

 

 

 

 

 

 

전체 100×83mm, 우표 한 장 50×40mm.

 

 

어따, 면 많이도 담았네. 방이동 <봉피양> 냉면도 면이 하도 많아 다 못 먹고 늘 남기는데 <옥류관> 냉면은 더 많네요. 한 끼에 탄수화물을 이토록 많이 먹게 하다뇨. 그건 그렇고, 2003년에 발행한 이 우표에도 국수 위 양념장이 보입니다. 이 우표에서도 면이 좀 질겨 보이네요. 색도 짙고요.


북한을 여행한 어느 서양인이 찍은 냉면 실물 사진도 한번 보세요. 어느 집 냉면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거기에도 양념장이 올라가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낯선 음식이라 많이 못 먹을 것 같았는지 면을 적게 담았습니다. 사실 면을 이토록 차갑게 해서 먹는 건 전세계적으로 볼 때 좀 특이한 관습 같기는 합니다. 
☞ Jimbojack - D.P.R.K.

제가 영국에 있을 때 소개해 드렸던 북한의 <조선료리> 누리집도 다시 소개해 드립니다. 정권이 바뀌어 이제는 남한에서도 접속이 가능해졌습니다.

☞ 영국 언론이 화제로 다룬 북한의 '료리' 사이트 

한식 요리사, 요리 연구가, 음식 관련 글 쓰시는 분들께 중요한 자료가 될 것 같으니 혹 정권이 또 바뀌어 또다시 닫히기 전에 실컷 봐 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접속이 불가능해질 경우를 대비해 북한 측의 냉면 설명을 긁어다 붙여 봅니다. 철자뿐 아니라 띄어쓰기도 우리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양랭면은 예로부터 평양사람들이 자랑하는 음식으로서 여러 지방들에서 만든 랭면가운데서 제일로 손꼽히였다. 평양랭면이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난 것은 국수감, 국수물, 꾸미, 양념, 국수그릇, 국수말기 등에서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랭면이 유명해진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몸에 좋은 영양성분이 많이 들어있어 옛날부터 장수식품으로 일러온 메밀을 국수감으로 쓴다는 데 있었다. 메밀국수는 국수오리가 지나치게 질기지도 않고 먹기에 알맞춤하며 메밀의 고유한 성분은 국수의 향기와 맛을 더욱 돋구어준다. 평양랭면이 유명해진것은 또한 국수국물맛이 독특하고 겉보기와 차림새가 특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랭면의 국물은 구수한 고기국물과 쩡한 동치미국물을 섞어 만들므로 맛이 시원하고 새큼달달하다. 그리고 시원한 국물맛에 잘 어울리게 상쾌한 감을 주는 놋대접을 써서 국수사리를 수북이 담고 우에 꾸미를 보기 좋게 얹는다. 이와 같이 평양랭면은 독특한 맛으로 하여 말그대로 찬 음식이지만 무더운 여름날에는 물론 추운 겨울날에도 누구나 즐겨먹는 음식으로 되였다. 대사때에도 평양랭면은 손님접대용으로 빠져서는 안될 음식으로 간주되여왔다. 오늘 평양랭면은 우리 나라 지경을 벗어나 세계에 널리 알려져 조선 국수의 대명사로, 조선민족음식의 대표작의 하나로 세상사람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있다. 평양랭면은 순 메밀로 만들어야 하며 양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양념을 하면 마늘과 파냄새가 나면서 메밀의 고유한 맛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먹을 때 식초를 잘 쳐야 한다. 평양랭면은 식초를 국물에 치지 말고 국수사리에 쳐서 말아먹어야 제맛을 느낄수 있다."

"평양랭면은 순 메밀로 만들어야 하며"라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꾸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 궁금한데, 위의 백지영씨 냉면 먹는 영상과 서양인의 북한 여행기 속 냉면을 자세히 보시고, <옥류관> 냉면을 실제로 먹어 본 기자의 다음 글도 한번 읽어 보세요. 
 ☞ 옥류관서 평양냉면 먹어 보니 

 

이 2015년 기사에서는 신기하게도 꾸미로 양배추 김치를 언급합니다. 제가 올린 2018년 영상과 다른 이들의 사진에서는 무절임이 올라갔는데요. 아마 철에 따라, 혹은 재료 수급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먹는 방법도 흥미롭습니다.

"수령님이 교지 해주신 방법"이랍니다.

그러니까,
평양 사람들이 육수에 양념장과 겨자를 풀고 면에 식초까지 뿌려 먹는 이유는, 그렇게 먹는 것이 맛있어서라기보다는, 하늘 같으신 수령님이 그렇게 먹으라고 지시를 하셨기 때문이라는 거죠. 즉, 본고장 먹는 법이란 결국 '수령님 개취'라는 것.

 

그런데, 냉면은 이야기만 꺼내도 먹고 싶어진단 말이죠. 
내일 냉면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다쓰 부처가 좋아하는 방이동 <봉피양> 냉면들.

꼭 방이동이어야 한다. 용산 것은 값 똑같이 받으면서도

4배쯤 희석된 맛을 낸다.

 

 

 

귀국해서 그간 못 먹었던 냉면 열심히 찾아 먹은 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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