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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우표] 미국 2006 - 미트볼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레이디와 트램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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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우표] 미국 2006 - 미트볼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레이디와 트램프

단 단 2015. 11. 19. 00:00

 

 

30×40mm. 스티커 방식.

 

 

 

아, 참 오랜만에 보는 레이디와 트램프.
아, 참 맛있는 미트볼 스파게티.

 

그런데 저 미트볼 들어간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가 말예요, 미국식이라면서요?


영국에는 볼로냐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볼로녜제 스파게티'라는 게 있습니다. 영국음식 책에 떡 하니 소개가 되는 영국음식입니다.  둘 다 맛있죠. 한국에는 또 한국식으로 변형된 국물 흥건한 파스타들이 있죠.

 

이태리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가디언 기사를 하나 걸어 봅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뉴욕의 변형된 이태리 음식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What do real Italians think about New York's Italian food?

 

기사를 우리말로 요약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이태리 음식에는 마늘이 생각만큼 많이 쓰이지 않는다

 

일단, 이태리에서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늘을 많이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외국의 이태리 음식점들이 풍기는 마늘 냄새에 넌더리를 낸다는군요. "아, 제발 마늘 좀 그만 써!" 

 

엥? 
이태리 음식 하면 우리는 으레 마늘 냄새부터 떠올리잖아요? 이태리 가정의 주방 하면 저는 늘 바깥과 바로 연결돼 있는 공간 어딘가에 땋은 머리처럼 매달려 있는 마늘을 생각했는데, 제 상상이 틀린 모양입니다. (이웃나라 스페인에서는 마늘을 많이 씁니다.)

 

 

양파도 생각보다 많이 안 쓴다

 

게다가, 양파도 생각보다 많이 안 쓴다는군요. 한 음식에 마늘과 양파를 같이 쓰는 일은 더더욱 드물다고 합니다. 

 

뭣? 
우리 집에서 자주 해먹는 이름 모를 스파게티는 마늘과 양파를 둘 다 볶아서 만드는데?! 볼로녜제 스파게티에도 마늘과 양파가 모두 들어가고요. 마늘과 양파 넣고 만드는 이태리 음식, 이거 영미식 이태리 음식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카푸치노는 오전에만 마신다 

 

외국인들이 하루 아무 때나 카푸치노를 찾는 것을 이태리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어 한답니다. (영국에서는 마말레이드를 아침에 먹는 식품으로 여기는데, 그와 비슷한가 보죠?) 심지어 카푸치노를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 음식과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이태리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짓까지 써가며 의아해 한다는군요. 이태리의 많은 도시들에서는 때에 맞지 않는 음료를 주문하면 웨이터가 거절하기도 한답니다. 카푸치노는 정오 이전에만 시켜 마시는 음료랍니다. 그 자체가 식사로 여겨지기 때문에 웬만해선 다른 음식을 곁들이지 않는데, 크화썽croissant 한 개까지는 봐준답니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페투치네 알프레도는 이태리 파스타가 아니다

 

그와 가장 비슷한 것을 이태리에서 굳이 찾자면 'pasta burro e parmigiano'(pasta with butter and parmesan cheese)쯤 되는데, 이것도 이태리 사람들은 집에서 해먹는 가정식으로 여기지, 밖에 나가 식당에서 주문해 먹는 음식으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그것도 정신이 딴 남자한테 팔려 있는 부정한 아내가 남편한테 시간과 정성 들이지 않고 대충 만들어 줄 법한 파스타라는 인식이 있다네요. 그래서 별명이 "pasta del cornuto (cuckold's pasta)"랍니다.

 

 

파스타는 고기와 섞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이 알프레도 파스타 위에 닭고기를 얹기도 하는데, 이태리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합니다. 닭고기뿐 아니라 고기를 파스타에 넣어서 내는 일 자체가 매우 드물다네요. 아, 이건 저도 책에서 읽은 적 있어요. 파스타는 '프리모primo'로, 고기는 '세콘도secondo'로, 둘을 분리해서 각각의 코스로 즐긴다는 사실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나라 사람들이 그래서 이태리 여행 가서 고기 코스 주문하면 탄수화물이나 채소 없이 정말 고기만 덜렁 나와 뜨악해한다는 일화 많이 듣습니다. 우리도 양식 먹을 때 고기 옆에 곁들임 채소나 기타 다른 것들이 같이 나올 것을 기대하잖아요? 심지어 돈카츠 먹을 때조차 수북이 쌓은 양배추 채와 밥을 기대하고요. 그러니 '큰 고기공'이 들어간 미트볼 스파게티 역시 이태리 사람들에게는 의아한 음식이라는 거죠. 이태리 남부 뿔리아Puglia 지역에 작게 만든 미트볼을 토마토 소스 파스타에 넣어 먹는 곳이 있다지만 이태리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며, 어쨌거나 파스타와 고기는 별개의 코스랍니다.

 

그 외 간 쇠고기를 써서 만드는 영국의 볼로녜제 스파게티Spag Bol와 비슷한 것으로 라구ragù 파스타들이 있는데, 어떻게 다른지는 제가 예전에 다룬 적이 있어요. (☞ 영국음식 열전) 영국식 볼로녜제 스파게티 만들어 놓고 이태리 음식이라고 하면 이태리 사람들, 특히 볼로냐 사람들은 "우리 것 아냐!" 하고 불같이 화낼지 모릅니다. 일단 면부터 다릅니다.

 

정리하자면, 이태리에서도 파스타에 고기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나 고기 먹소" 할 만큼 실하고 큼직한 덩어리를 쓰는 게 아니라 간 고기나 작은 크기의 고기로 쓴다는 거죠. 

 

 

결코 타협될 수 없는 '파스타 룰'

 

이태리 사람들에게는 위에 언급한 것들말고도 결코 타협될 수 없는 '파스타 룰'이란 게 있답니다. 

 

1. 파스타 삶을 때 물에 오일을 풀어서는 절대 안 된다. 달라붙지 않도록 그저 가끔씩 저어 주기만 하면 된다. 파스타 표면에 오일이 코팅 되면 소스가 붙질 못 하고 미끄러진다.  

 

2. 해산물 파스타에는 치즈를 절대 갈아 넣지 않는다.  

 

3. 각각의 파스타 모양에 맞는 소스가 다 따로 있다. 예를 들어, 포르치니 머쉬룸은 빠빠르델레나 딸리아뗄레와 함께 내지 둥근 단면의 스파게티 면에는 절대 내지 않는다. 라구도 마찬가지. 리구리아에서는 페스토를 도르륵 말린 트로피에trofie나 손수건처럼 넙적한 파스타mandilli di seta와 함께 낸다. (☞ 전통 페스토 절구 써서 트로피에 먹은 이야기)

 

4. 파스타 가운데 아직 덜 익은 심이 남아 있는 '알 덴테'로 삶아야 한다.

 

5. 물에서 건져낸 파스타는 소스에 넣고 반드시 한 번 조리를 해서 내야지, 면 따로 그릇에 담고 위에 소스 끼얹어 내면 안 된다. 즉, 짜장면처럼 내면 안 된다.

 

6. 소스를 흥건하게 해서 내면 안 된다. 파스타 면도 그 자체가 엄연히 요리사나 장인의 솜씨가 깃든 요리이므로 면 맛과 질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소스가 많으면 이를 방해한다.

 

 

단단이 몇 가지 추가

 

재미있는 내용이 많죠? '법칙'까지는 아니고 제가 몇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요, 

 

(1) 파스타에 샐러드를 같이 내는 것도 이태리식은 아니라는군요.

 

(2) 파스타 먹을 때 저 <본 마망> 잼 뚜껑에 인쇄돼 있는 것 같은 프랑스 시골풍 빨간 깅엄 체크 식탁보 까는 것도 언짢아하는 이태리 요리사들 있어요.  

 

(3) 올리브 오일에 마늘 볶을 때 마늘 태우는 분들 많은데, 기름을 데운 뒤 마늘을 넣지 마시고 기름과 마늘을 처음부터 함께 넣고 불을 올리면 좀 낫습니다. 

 

(4) 마늘 가운데 있는 심은 제거해야 쓴 맛이 덜 납니다.

 

(5) 파스타 담을 그릇은  꼭 데우세요. 파스타가 완성되기 직전에 파스타 삶았던 끓는 물 몇 국자를 떠서 담으면 쉽게 해결됩니다. 살균도 되고요.

 

(6) 고로, 파스타 냄비를 개수대로 가져가 거름망에 대고 쏟아버리는 방식보다는 파스타 집게를 써서 면만 건져 내는 방식이 낫습니다. 소스 농도를 조절하기 위해 파스타 삶은 면수를 써야 할 때도 있어요.

 

(7) 면을 맛있게 삶으려면 소금:면:물의 비율을 1:10:100으로 잡으셔야 합니다. 즉, 1리터의 물에 소금 10g을 넣어 녹인 뒤 면 100g을 넣고 삶으시면 됩니다. 

 

 

맛있으면 장땡이다

 

제가 가디언 지에서 보고 번역해 옮긴 위의 내용들은 도그마로 삼지 마시고 그저 상식 차원으로만 알아 두세요. 이태리 밖에는 위의 법칙을 깬 맛있는 파스타나 음식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태리에서는 고기와 파스타를 함께 먹지 않는다지만 닭고기 얹은 미국식 알프레도 파스타나 미국식 미트볼 스파게티, 솔직히 맛있잖아요? 직장인들, 바쁜 점심 시간에 언제 프리모 따로 먹고 세콘도 따로 먹고 있습니까? 파스타에 실한 고기 올려 같이 먹어야죠. 마늘과 양파 둘 다 넣고 토마토까지 잔뜩 넣는데다 소스를 면 위에 따로 끼얹어 내기까지하는 저 '무법천지' 영국식 볼로녜제 스파게티도 맛있죠. 요리할 줄 모르던 신혼 때 단단은 한 달에 한 번 이 영국식 볼로녜제 스파게티 소스 잔뜩 만들어 소분해 냉동실에 두고 덕 많이 봤는걸요.   

 

 

변주곡 듣는 재미, 스핀-오프 보는 즐거움

 

영국인들은 이태리 사람들과 달라 자기들 음식이 영국 밖에 나가 그 나라 식으로 변형되는 것을 오히려 즐깁니다. "음식 문화란 원래 그런 거야."라고 생각들을 하죠. 이들은 미국의 프라이드 치킨이 한국에 가서 고추장 양념을 입게 된 것도 흥미로워 합니다. 영국의 샌드위치와 스콘은 사람마다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해서 먹습니까. 저는 누리터에서 남이 만든 샌드위치와 스콘 구경하는 거 좋아합니다. 여기 사람들도 그럴 거예요. 기발한 것들 잔뜩 나오죠. 

 

저는 영국에 오기 전까지는 그 나라 음식은 최대한 '오쎈틱'하게 즐겨 줘야 예의라는 '정통 드립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크림 넣은 국물 흥건한 한국식 까르보나라를 보면 속으로 피식 웃곤 했었죠.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급한 대체 재료를 써서 음식의 질을 떨어뜨리지만 않는다면 변형은 언제든 환영하는 쪽으로 생각이 넉넉해졌습니다. 가장 이상적이기로는 전파된 음식에 그 나라 고유의 음식문화가 덧입혀지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고추장 양념 입힌 프라이드 치킨은 수작이라고 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국 없이는 밥을 잘 못 먹죠. 확실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동양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침 분비가 적다면서요? 이 소리를 듣고 나니 서양 음식을 매사 소스 흥건하게 해서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이 단번에 이해가 되더라고요. 어쩝니까, 국물 없이는 목 메여서 밥 못 먹겠다는데. 음식이란 수용하는 쪽 마음이죠.

 

영국인이 쓴 한식 요리책 보고 요리를 해보니 설탕이 죄 빠져 있어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 납니다. 이들은 후식에는 설탕을 들이부어도 주식에는 여간해서  설탕을 넣지 않기 때문에 주식에서 단맛이 많이 나는 것을 낯설어합니다. 자기들 입맛에 맞추는 거지요. 

 

두툼해진 시카고 피짜? 
맛있죠. 본고장에서 맛보고픈 소망이 있습니다.

 

페퍼로니 피짜? 
자주 사 먹습니다. 

 

물 타서 희석시킨 아메리카노?
오랫동안 커피 향을 즐기며 몸을 녹일 수 있어 좋아요. 

 

마늘 듬뿍 넣은 영미식 '이태리' 갈릭 브레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마늘 민족 우리 한국인들 입맛에도 아주 잘 맞아요.

 

미국식 미트볼 스파게티, 
영국식 볼로녜제 스파게티, 
한국식 소스 흥건한 파스타, 
일본식 명란젓 파스타, 
모두 맛있어요. 

 

일본식 마카로니 사라다, 
지금은 볼 일이 거의 없지만 잔칫상에 올라오는 사라다는 제 어린 시절 별미였습니다. 사과와 건포도와 셀러리와 땅콩을 곁들여 마요네즈에 버무린 이국의 신기하고 쫄깃한 줄무늬 굼벵이!

 

남의 나라 가서 변형된 음식, 또 뭐가 있을까요?

슈니츨과 돈카츠? 
슈니츨은 아직 못 먹어 봤고요, 돈카츠, 아주 맛있지요.  

 

하여간, 음식의 전파와 변화를 추적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영국에는 이런 일을 업으로 하는 음식사학자들이 많아요. 이태리 사람들도 이제는 좀 여유로운 사고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밤낮 "우리 엄마 음식이 최고야", "내 친구가 하는 음식점이 최고야", "우리 음식을 그렇게 바꾸다니 용납할 수 없어!" 소리만 하지 말고요. 제이미 올리버 <이태리>편 영상이나 BBC 이태리 음식 기행 프로그램 보다 보면 사람들이 다들 음식에 관용이 없어 아주 그냥 억 소리가 납니다.

 

 

이태리 음식의 근본 정신

 

진정한 이태리 음식의 정신은, 재료를 하나부터 열까지 이태리에서 공수해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록 적어 갖고 나가 필요한 재료 사 와서 조리하는 게 아니라, 그날그날 가장 신선하고 질 좋아 보이는 제철 '로칼' 재료들을 아침에 시장에서 골라 사 와 주욱 늘어놓고 '가만 있자, 이것들로 오늘은 뭘 해서 낼까...' 궁리해 바로 조리해 내는 것이라고 하죠. 영국에는 메뉴가 고정돼 있지 않고 이런 식으로 음식을 내는 이태리 음식점들이 제법 있습니다. 이태리 음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지식, 내공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맛을 위해서는 변주도 꺼리지 않는 열린 마음과 융통성도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미국식 영국식으로 변형됐다고는 해도 그 역시 이태리 이민자들이 창조해 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태리가 매우 어렵게 살던 시절에 이태리 남부에서 미국과 영국으로 이민을 많이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 이태리 이민자들이 많아요. 이태리 본토 사람들이 생각하듯 "저 외국인들이 우리 음식을 망쳤다"가 아니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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