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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우표] 벨기에 2002 - 와플 Waffles, Wafels, Gaufres 본문
▲ 리에쥬Liège식 와플.
격자무늬에 하얗게 까진 듯 보이는 부분들은
펄 슈가pearl sugar.
얌냠냠.
차 한 잔 우려 와플과 함께 먹고 있습니다. 와플 잘한다는 여의도의 <빠뜨릭스 와플Patrick's Waffle>에서 사 왔어요. 권여사님 댁 근처에 있어 여의도 가면 꼭 사 먹거나 사 옵니다. 벨기에 사람이 벨기에에서 공수한 재료로 만든다는데, '본고장 삘'이 충만해서 사 먹는다기보다는 (현지 와플을 맛본 적이 없어 비교 불가.) 그냥 이 집 와플이 제 취향에 잘 맞아서 사 먹습니다. 리에쥬식이거든요. 리에쥬식 와플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 가장자리가 둥글게 굴려 있고 불규칙하게 마무리돼 있다.
• 브뤼셀식에 비해 두께가 얇고 크기가 작지만 포만감은 더 있다.
• 이스트yeast 넣고 제대로 발효시킨 끈끈하고 말랑말랑한 반죽soft dough이라 씹는 맛이 더 있고 더 깊은 맛이 난다.
• 가장자리가 불규칙한 이유는 바로 이 소프트 도우를 손으로 꾹꾹 눌러 아래틀에 붙인 뒤 위틀을 내려 압착해 굽기 때문이다. (굽는 모습 직접 관찰)
• 브뤼셀식 와플보다 맛이 진하고 더 달아 소스나 토핑 없이 와플만 단독으로 먹어도 만족감이 있다.
• 반죽에 펄 슈가를 넣어 서걱서걱 경쾌한 식감을 낸다.
▲ 와플 확대. 군데군데 펄 슈가가 박혀 있다.
이 때문에 매끄러운 선이 나오지 않고 울퉁불퉁 얼룩덜룩.
펄 슈가가 눌어 캬라멜화한 부분도 보인다.
제가 이스트 풍미를 좋아해 도우넛도 이스트 반죽 쓴 것을 선호하고, 페이스트리도 버터만 쓴 '퍼프puff' 페이스트리보다는 이스트까지 넣은 덴마크식 페이스트리Danish pastry를 더 좋아합니다. 와플도 이스트 넣은 것이 더 깊은 맛이 납니다.
▲ 벨기에 국민 만화가 마르크 슬린의
8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우표 그림.
그림은 <네로의 모험> (1947-2002) 등장인물들.
브뤼셀식 직사각형 와플을 눈여겨보자.
▲ 시판된 실제 우표.
작가와 만화 주인공 주변에 천공perforation이 보인다.
전체 125×90mm, 우표 한 장 48.75×38.15mm.
이건 브뤼셀식 와플입니다. 벨기에는 작은 나라이지만 그 안에서도 지역별로 와플의 모양, 크기, 두께, 질감, 식감, 맛 등이 달라진다고 하죠. 크게 브뤼셀파와 리에쥬파가 갈린다고 하는데, 관광지에서는 리에쥬식 와플이 흔하다고 합니다. 브뤼셀식 와플의 특징은 이렇습니다:
• 가장자리가 각져 있고 직사각형 모양이다.
• 묽은 반죽pouring batter을 부어 구으므로 반듯하고 깔끔한 모양이 나온다.
• 리에쥬식에 비해 두껍고 홈이 더 깊게 파여 있다.
• 이스트를 넣기는 하나 묽은 반죽이라서 좀 더 가볍고 바삭한 식감이 난다.
• 리에쥬식 와플보다는 맛이 덜 진하고 덜 달다.
• 그래서 와플 위에 추가로 무언가를 올려 먹기 좋다.
▲ 2012년 <브뤼셀 음식 축제Brusselicious> 행사 기념으로
<마르크 슬린 박물관>에서 열린 만화전 포스터.
"네로와 함께 브뤼셀의 진미인 와플, 감자튀김, 맥주를 즐겨 보세요." <네로의 모험> 작가가 자기 만화 주인공인 네로와 함께 또 등장했습니다. 오른쪽의 앞치마 두른 남성은 벨기에의 유명 요리사Albert Verdeyen라고 합니다. 수도인 브뤼셀의 음식을 홍보하는 포스터이므로 와플 역시 브뤼셀식 각진 와플입니다. 북미에서는 이 브뤼셀식 와플에 이스트 대신 베이킹 파우더를 넣고 속성으로 구워 아침 식사로 먹곤 하지요. 베이킹 파우더를 쓰면 맛과 식감이 가벼워져 쵸콜렛 소스나 휘핑 크림, 과일 등의 토핑을 올리기 좋아요. 벨기에 밖에서는 그냥 "벨지안 와플"이라 통칭해 부르는데, 벨기에 사람들은 지역별 이름을 꼬박꼬박 붙여 구분해 즐기기 때문에 이 표현을 탐탁치 않아한다고 합니다. ㅋ
▲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c. 1525-1569)의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결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1559).
오늘 글의 핵심이 될 브뤼겔의 유명한 '티격태격 회화'입니다. 이 그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와플 사진도 찍고 우표 책에서 와플 우표도 꺼냈어요. 며칠 전 ☞ 김홍도의 <춘절 야유도>를 소개했었죠. 그 그림 보자마자 이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만만찮게 재미있는 그림이죠. 와플이 수두룩 담겨 있으니 마우스로 그림을 '꼭' 눌러 큰 그림으로 띄워 놓고 와플이 모두 몇 개 나오는지 세어 보세요. 무려 1500년대의 그림인데 와플이 보입니다. 이 그림 처음 보았을 때 와플을 발견하고는 몹시 흥분했었습니다. (현대인이 먹는 음식이 옛 그림에 나오면 흥분함.) 와플만 보이는 게 아니라 프레츨pretzel도 보입니다. 와플과 프레츨이 이렇게 오래된 음식이었다니요.
기독교에서는 부활절 전 40일간을 '사순절Lent'로 이름 붙여 기념하는데, 옛 시절에는 이 기간에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려 금식을 하거나 음식을 가려 먹고 회개하며 금욕적으로 지내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유럽 전역의 식문화에도 영향을 끼쳤죠. 육식을 금하고, 심지어 버터 같은 동물성 유지도 쓰지 못하게 해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는 너도나도 고기와 버터를 소진할 목적으로 진탕 먹곤 했습니다. 이를 '카니발carnival'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말로는 '축제'라고 번역들을 하는데, 어원으로 따지면 '고기여 안녕carne levare'쯤이 됩니다. ㅋㅋ 영국에서는 카니발 마지막 날, 즉,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을 버터와 달걀을 소진하기 위한 '팬케이크 부쳐 먹는 날pancake day'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팬케이크 데이도 꽤 오래된 전통이죠. 유럽 각국의 카니발 음식과 사순절 음식들을 비교해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더불어 부활절 음식과 크리스마스 음식도.)
그림의 왼쪽에는 흥청망청한 카니발을, 오른쪽에는 경건한 사순절을 묘사해 대립시키고 있는데, 그 때문에 오른쪽의 교회 주변에는 장애인과 곤궁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있는 사람들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림 아래쪽에는 이 그림의 핵심이 잘 요약돼 있습니다. 아래 왼쪽에는 거대한 술통에 올라 앉아 고기를 줄줄이 꿴 꼬챙이를 손에 들고 있는 배불뚝이 남자를, 아래 오른쪽에는 못 먹어서 비쩍 마른 '레이디 렌트Lady Lent'를 대비시켜 놓았습니다. 여장을 한 레이디 렌트의 수레에는 청어 두 마리와 홍합, 한 입씩 베어문 듯한 둥글넙적한 빵, 그리고 프레츨을 그려 넣었습니다. 레이디 렌트 위쪽에는 연어 혹은 송어로 보이는 큰 생선도 있고요. 고기와 버터는 '세속적'이어서 금했지만 해산물은 사순절에도 먹을 수 있는 덜 세속적인 음식 취급을 받았습니다. 유럽인들이 매주 금요일에 고기 대신 생선을 먹던 전통도 마찬가지 이유에서고요. 피쉬 앤 칩스도 원래 금요일에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지금도 피쉬 앤 칩스를 아무 때나 사 먹지 않고 금요일에 사 먹는 영국인들 많아요.
버터와 새알egg을 넣은 '리치'한 와플은 왼쪽의 카니발 편에, 이것들을 넣지 않은 담백한 프레츨은 오른쪽의 사순절 편에 그려 넣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 봅니다. 현대인에게 와플과 프레츨은 다 같은 밀가루 간식거리이지만 각각이 지닌 신학적 의미는 정반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프레츨을 기도하는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는 소리, 많이 들어 보았습니다.
▲ 햐, 프레츨에 이런 의미가 있을 줄은.
▲ 와플 굽는 여인 확대. 반죽과 재료가 보이는데,
그 크기로 보아 알은 달걀이 아닌 거위알로 추정.
브뤼겔의 다른 그림들에도 거위나 거위알이 자주 보인다.
이 시절에는 닭보다 거위가 더 흔했던 모양이다.
그림에서 와플 굽는 장면을 확대해 봅니다. 까맣고 반질반질하게 길이 잘 든 직사각형의 주철cast iron 와플 틀과, 틀 밖으로 비어져 나온 반죽을 칼로 깎아 떨어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반죽 그릇에 휘젓는 나무 숟가락이 있는 걸로 보아 묽은 반죽pouring batter인듯 합니다. 그런데, 그 위의 알 좀 보세요. 크기가 심상치 않죠.
▲ 거위알과 달걀 크기 비교.
거위알이라는 소리입니다. 제가 오리알까지는 영국에서 맛을 보고 왔는데, 안타깝게도 거위알은 맛을 못 봤습니다.
▲ 코스트코 갈 때마다 두 상자씩 꼭 집어오는
맛있는 벨기에산 모둠 버터 비스킷.
▲ 그 안에 든 버터 함량 26%의 와플 비스킷.
버터는 단단의 사계절 보양식.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차음식을 케이크로 먹고 싶을 때가 있고, 파사삭 부서져 떨어지는 페이스트리로 먹고 싶을 때도 있고, 비스킷으로 먹고 싶을 때도 있는데요, 비스킷은 대개 버터가 잔뜩 들거나 향신료가 듬뿍 든 특색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귀국 후 백화점에서 영국산 쇼트브레드(버터 함량 32%), 프랑스산 라 메흐 뿔라흐 '몽 생 미셸' 비스킷들(22%), 코스트코에서 벨기에산 맛있는 모둠 버터 비스킷을 발견하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죠. ㅋ 그 벨기에산 모둠 버터 비스킷에 와플을 비스킷화한 게 들어 있는데, 버터 풍미 물씬 나면서 너무 단단하지 않고 우아하게 바삭거립니다. 사려 깊게도 격자 무늬가 얕은 것과 깊은 것 두 종류를 넣었고요. 옛날 그림들을 보면 옛 시절의 와플은 요즘 와플보다 홈이 얕아 보입니다. ■
☞ 벨기에의 또 다른 음식우표 - 쵸콜렛 프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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